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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준희 교수의 메디컬 40년 에세이]“지금 골프를 하는 거냐” 미국인 질문에 당황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오늘도 골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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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99호 박현준⁄ 2012.11.05 11:11:36

내가 처음 골프채를 잡은 것은 1984년 미국에 가있을 때였다. 미국에 가서 6개월이 지나 미국 생활에 조금 익숙해질 무렵, 미국에 사는 의대 동기들이 골프를 권유해줬었다. 그 당시 가장 가격이 쌌던 윌슨 골프채 한 세트를 사서 연습장에서 남이 치는 것을 보며 한 4~5번 연습을 하고는 보스턴 근교의 퍼블릭 골프장을 찾았다. 혼자서 나갔더니 미국인 부부와 함께 하라고 한다. 첫 번째 홀, 부부가 치고 나서 내 차례, 드라이버를 잡고 공을 쳤는데 픽 소리를 내면서 한 20미터쯤 나간다. 다음은 3번 우드 또 뒤 땅 그 다음은 4번 우드, 나는 골프는 무조건 작은 번호의 채부터 순서대로 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골프장은 거리는 짧았지만 좁고 물이 매우 많았다. 3번째 홀에 갔을 때 함께 하던 미국인이 “지금 골프를 처음 하는 거냐”고 묻고는 “그렇다면 7번 아이언 하나만 가지고 플레이 하되 항상 티를 꼽고 하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었을까 싶다. 동양인과 골프를 치는데 그냥 땅만 파고 있고 그것도 롱 아이언까지 사용해가면서 옆의 사람은 신경도 안 쓰고 밭을 매고 있으니…. 한 7홀쯤 갔는데 가지고 간 공이 모두 없어졌다. 염치없이 미국인이 준 볼까지 다 없애고는 9홀이 끝나자마자 줄행랑쳤다. 그 후 한참 동안 골프채를 안 잡았는데 마침 대구 병원의 의사가 보스턴에 온 김에 골프를 치러 가자고 한다. 내가 머뭇거리자 “나갑시다. 괜찮아요. 내가 조금 쳤으니까 가르쳐 드릴게요”라고 한다. 우리는 근처 골프장으로 향했다. 이 골프장은 첫 번째 홀에 기다란 통을 놓고 그 속에 각 팀의 공을 한 개씩 넣어둔 후 그 공의 순서에 따라 시작을 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따라서 1번 홀 주위에는 시작을 기다리는 골퍼들이 의자에 모여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우리 차례가 돼 같이 온 친구가 드라이버로 공을 쳤는데 앞으로 나가는 공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친구, “공이 어디 갔노” 하는 와중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공이 옆으로 한 1미터 정도 굴러 간 것이었다. 다시 쳤지만 숲속으로 들어갔고 내가 친 공은 땅으로 한 50미터 굴러갔다. 그때 어찌나 창피했던지 골프채를 남겨두고 앞으로 뛰어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내 골프생활이 시작됐지만 순탄하지가 않았다. 매일 “이제 알았다”를 연발하다가도 다시 모르겠는 골프,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데 바로 날아가면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하던 나의 골프…. 나이 60이 넘어서야 정식으로(미국에서) 배우기 시작해 요즈음은 골프장에서 의식을 갖고 비교적 여유 있는 라운딩을 하게 됐지만 아직도 알다가도 모르는 게 골프라고 생각된다. 우리 인생보다도 더 굴곡이 더 심한지도 모르겠다. 운동 중에서 각 동작마다 치유법이라고 기술되는 운동이 골프 말고 더 있을까? 마치 병든 사람을 치료 하는 것과 유사하다. 의사인 내가 보기에 골프의 기술을 교정하는 것도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같은 병이라도 사람마다 증세 예후치료 결과 등이 다 다르듯이 골프도 같은 방법으로 가르쳐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른 것 같다(물론 모든 운동이 비슷하지만 골프는 더욱 심하다고 한다). 유명한 스님 중에는 절에서 벽만 보고 앉아서 오랜 시기를 보낸 후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분이 있다. 미국에서 골프를 보기 플레이 정도 치던 사람이 죄를 지어 형무소에 들어갔는데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자신이 다니던 골프장을 연상하면서 하루에 수도 없이 많이 눈을 감고 라운딩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출소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의 프로 수준의 실력을 보였다는데, 골프도 생각만으로도 통달이 되는 것일까? 유명한 미국 프로 골퍼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젊은 시절, 밤이 되면 골프장에 나가 더 나은 골프를 칠 기대에 차서 빨리 아침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사는 인생처럼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에 나는 오늘도 골프장으로 향한다. - 설준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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