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체트병이라는 희귀병 때문에 앞을 못 보고 넘어지면서 하반신 마비까지 겪게 된 장정아(41)씨는 7년 전 온 가족이 호된 고통을 치렀다. 치료를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그녀를 간호하느라 어머니가 직장까지 쉬면서 석 달 동안 병원에 붙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병원비 부담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바깥 세계와 단절된 병원 생활이 고통을 더했다. 그러나 지금 장 씨는 자신의 집에서 마치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듯한 기분으로 장기 치료를 받고 있다. 전문 간호사가 수시로 집을 찾아와 전문적인 도움을 주고, 원격진료로 세브란스병원 의사의 치료를 받기 때문이다. 집과 병원은 거의 1시간 거리지만 가정방문 간호사제도 덕분에 집이 바로 병원이다. “따뜻한 대추차 한 잔 드세요. 커피를 싫어하실 수도 있어서 대추차로 준비했어요.” 부쩍 추워진 10월 24일 기자가 그녀의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반갑게 맞아줬다. 혹시나 마음의 아픔을 건드리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찾아갔지만 그녀는 그늘 한 점 없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가 앓는 베체트병은 점막에 생기는 희귀병으로, 여성에 주로 발병하며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것이 증상이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력이 점점 나빠진 그녀는 이런 역경에도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계단에서 심하게 넘어졌는데 하반신 신경이 마비됐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아야 했다. 병원에 입원해 욕창 치료 등을 받던 그녀는 2005년부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간호사업소로부터 가정방문 치료를 받고 있다. “걷지 못해도, 잘 보지 못해도 행복해요” “욕창이 심해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정신을 잃을 정도였어요. 이틀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5분도 잘 엎드려 있지 못하던 제가 2주 정도를 엎드려 있어야 했는데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 몸은 하루 이틀 단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을 방문해야 했지만 가정방문 간호제도가 적용돼 너무 다행이에요.” 현재는 김원숙 간호사가 그녀를 돌봐주고 있다. 장 씨와 만난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 됐다는 김 간호사는 “한 달에 두 번 장정아 씨를 방문하고 있는데 정말 긍정적이고 밝은 소녀 같다”며 “재밌는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내게 들려주고 크리스마스 때는 작은 인형을 챙겨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장 씨 또한 김 간호사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땐 수많은 환자가 함께 있기에 세세한 관리까지 받기 힘들었다. 특히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장 씨는 병원에 가는 것조차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정방문 간호를 받으면서 이런 불편이 없어졌다. 몸 상태의 미세한 변화까지 간호사들이 놓치지 않아 적절한 관리를 집에서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도 장 씨는 혈압을 체크 받고 욕창 부위를 관리 받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부모님도 안심하고 출퇴근을 하고, 장 씨 또한 자신 만의 생활을 가질 수 있어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하반신이 노출되지만 집안이기에 문제가 없다. 병원 입원비도 과거엔 부담이 많이 됐으나 가정간호를 받으면서 의료보험 대상자로서 혜택을 받아 늘 감사할 따름이란다. “향기로 사람을 기억해요“ “그동안 저를 돌봐주신 간호사가 벌써 세 분이나 돼요. 다들 정말 친절하셨어요. 저를 잘 돌봐주고 함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더 좋아요. 가정간호 제도 덕분에 생활에 큰 불편함을 못 느끼고 있어요. 이런 제도가 더 활성화 됐으면 좋겠어요.” 딱딱하게 치료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고, 적절한 관리를 받으면서 장 씨는 마음까지 치료받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김 간호사 역시 “장정아 씨는 올 때마다 밝은 모습을 보이고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장 씨의 세세한 특징까지 꿰고 있었다. 김 간호사의 칭찬에 머쓱해하는 장 씨의 모습이 영락없이 소녀 같다. 질병의 아픈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고, 정말 평범한 가정집을 방문한 것 같다. 이는 장 씨의 긍정적인 사고가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낸 덕분이다. 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장 씨는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소통한다.
“전 향기로 사람을 기억해요.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귀나 코로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요. 예전에 좋은 향기가 났던 의사 선생님이 있었는데 아직도 병원에 근무하고 계시냐고 김 간호사께 물어보기도 했어요. 또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이미지로 별명을 붙이기도 해요. 그동안 만난 간호사 분들에게도 다 별명을 지어줬었죠. 김 간호사는 밝은 색과 같은 느낌이에요(웃음).” 이처럼 장 씨는 자신만의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본다. 다리도 똑같다. 걷지 못한다고 세상과 단절된 것은 아니다. 장 씨는 2002년 다리를 다쳤을 때부터 인터넷에 ‘우리 교회’라는 사이트를 운영해 왔다. ‘우리 목장’으로 이름을 바꾼 이 모임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와 종교적 신념을 나누는 공간이다. 전도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장 씨는 자신에게 부딪힌 시련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새로운 재능을 주셨다고 느꼈다. “전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생각을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래서 제게 글 쓰는 재능을 주신 것 같아요. ‘우리 목장’에서 200여 명의 회원들과 많은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이 행복해요. 올해 ‘우리 목장’이 10주년을 맞았는데, 기념행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써서 올리기도 했어요.” 장 씨는 운영하는 사이트를 직접 보여줬다.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글씨를 소리 나게 읽어주는 컴퓨터 덕에 그녀는 많은 글들을 읽고, 쓰고 있었다. 사이트에는 ‘칭찬 합시다’ ‘편지사서함’ ‘자유게시판’ ‘퀴즈가 좋다’ ‘돋보기 졸보기’ 등 다양한 메뉴가 꾸려져 있다. 장 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회원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같이 찾아보기도 하고, 재밌는 농담을 기억했다가 자유게시판에 올리기도 하고, 가을날 밖을 산책하다가 느낀 감정을 써서 올려놓기도 한다. 장 씨가 쓴 글을 하나하나 함께 읽어가던 도중, 글자 하나하나에 문학적 감성이 한껏 배어들어 있다는 느낌에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선뜻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장 씨에게 “글 솜씨가 좋으시다”고 소감을 밝히자 그녀는 손 사레를 치며 부끄러워했다. “전 원래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학교 다닐 때도 교회에서 회지를 만들면서 짧은 글들을 많이 썼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알게 모르게 인턴과 레지던트 분들 사이에 로맨스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내용을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전문적으로 글 쓰는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느끼는 것들을 그때그때 글로 옮기는 걸 좋아해요.” 젊었을 때부터 ‘문학소녀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장 씨는 책 읽는 것도 글 쓰는 것 못지않게 좋아한다. 시력이 나빠지면서 ‘이제 책을 잘 읽지 못하겠구나’ 생각했지만 자원봉사자들이 책을 읽고 녹음해준 녹음도서와 점자책, 컴퓨터 등을 통해 눈이 잘 보일 때보다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고. 새벽기도로 일과 시작, 컴퓨터로 성경 읽어 10권으로 구성된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는 그녀는 최근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다. 또한 혼자 책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달에 두 번씩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 참석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금은 재미 학자로 시각장애인이었던 고 강영우 박사의 책을 읽고 토론을 준비 중이다. 이밖에 아이폰 사용하는 법도 배우고 복지회관도 나가는 등 배움에 대한 열정이 끝이 없다. “이처럼 바쁜 생활을 이어가다보니 몸은 아프지만 마음까지 아플 새가 없다”며 웃는 모습이 해맑다. 장 씨는 “잘 보이지 않고 걸을 수 없을 뿐이지 그거 외엔 멀쩡하다”며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은 잘못 느낀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소변주머니를 차고 하루의 거의 전부를 엎드려 있어야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동정의 시선도 필요 없다. 그래서 그녀는 주눅 들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다. 소변주머니를 교체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부끄러울 법도 한데 “취재진이 들어와도 상관없다”는 반응에 오히려 김 간호사가 감탄했다고. “밝아지고 싶어도 처음 다리를 다쳤을 땐 어려웠어요. 그런데 말을 하지 않으면 분명히 제가 여기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존재감이 약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을 하다 보니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고 밝아졌어요. 리드하는 입장에 서게 된 거죠. 얼마전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는데 오히려 예전보다 더 밝아졌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사람들은 저를 보고 잘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게 잘 살고 있어요(웃음).” 새벽에 일어나 치료를 받으면서 기도를 하고, 부모님이 출근한 뒤엔 컴퓨터로 성경을 읽는다. 오전 9시, 활동보조사가 오면 식사를 하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다리 마사지를 받는다. 오후 3시 정도에 활동보조사가 돌아가면 방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자신 만의 시간을 갖는다.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사이트 관리를 한다. 오후 5시쯤 어머니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6시에 저녁 기도를 한 뒤 가족과 함께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두 발로 걷고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어도 만족을 몰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장 씨는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느끼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녀의 밝은 에너지가 집 안에 행복의 기운이 넘치게 만들었다. 밝은 표정으로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던 그녀의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가정간호 제도란? 가정간호란 환자가 자신의 집에서 전문 간호사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제도이다. 전문자격증을 가진 간호사가 환자를 찾아가 주치의의 처방 내용에 따라 각종 치료 및 처치, 교육, 상담 등을 하는 입원대체 서비스로, 세브란스병원은 1994년 4월부터 가정간호 시범 사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요 대상은 말기 암환자, 뇌혈관 질환, 욕창 치료, 재활치료와 영양장애, 당뇨, 고혈압, 폐질환 등의 만성질환자다. 가정전문 간호사들은 필요할 때 환자의 상처 부위를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해 외래 의무기록에 부착시키거나 직접 주치의에게 전달해 주치의가 환자의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 증세 변화로 외래 진료가 필요할 경우 외래 진료를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입원비와 병원 왕복 수고를 덜면서도, 병원 치료에 버금가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가정간호를 받고 싶으면 입원이나 외래에서 담당 간호사에게 신청하면 의료진이 가능 여부를 판단해 결정한다. 현재 세브란스병원에는 총 9명의 가정간호사가 있다. 1회 비용은 보험적용이 돼 1만370원 정도에 처치, 치료비, 약품비가 보험 20% 수가로 추가된다. 단, 한 달에 8회 방문까지만 보험이 적용된다. 세브란스병원의 가정간호 서비스는 현재 서울 전지역(강동구, 송파구, 강남 일부지역 제외), 인천, 김포, 일산 등 수도권 일부지역에 적용된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