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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 현장 취재]“아름답게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간호사 딸 극진한 보살핌 받고 떠난 고 고수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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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07-308호( 김금영⁄ 2013.01.02 11:27:35

호스피스에 의뢰된 환자를 처음으로 만나러 가는 길은 긴장될 수밖에 없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많은 상처가 있지는 않을까’ ‘혹시나 그 상처를 건드리는 건 아닐까’ 복잡한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세브란스 호스피스 팀의 임현주 간호사가 고(故) 고수진(가명, 당시 55세) 씨를 만나러 가던 첫 날도 그랬다. “고수진 씨는 2010년 담낭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다가 암세포가 척추로 퍼져 하반신이 마비됐어요. 그러다 담당 교수의 권유로 2012년 3월 호스피스 팀의 관리를 받게 됐죠. ‘암에 걸린 것만도 힘든 일인데, 하반신 마비까지 온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어요.” 그렇게 찾아간 병실에서는 고 씨의 딸 김수미(가명) 씨가 어머니를 극진히 간호하고 있었다.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어서 죽음만 기다린다는 편견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호스피스 팀의 관리를 받는 것을 어려워하는 환자들도 있지만 모녀는 이미 다가오는 죽음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었다. 임 간호사를 맞이한 고 씨는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하기보다 “내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하는데도 잘 안 된다”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아직 걷고 싶고,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묻어 나와 임 간호사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병실에는 눈물보다 웃음이 가득했지만 오래된 투병 생활에 모녀가 모두 지친 상태였다. 특히 배꼽 아래로 아무런 감각도 없고,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2시간마다 어머니의 몸을 움직여 짓무른 부위에 크림을 발랐고, 하반신 마사지는 물론 관절 운동까지 어머니의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있었다. 첫 마디 “내 상황 받아들이고 싶은데 잘 되지 않네요” “하반신 마비가 된 환자를 혼자서 간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30대 초반이었던 수미 씨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간호사인 제가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어머니를 극진히 간호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혼자서 모든 간호를 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어서 미리 연결시켜 드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어요. 호스피스 팀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지원해드리고 싶었죠.” 젊어서 뷔페사업, 목욕탕이며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활동적으로 살았던 고 씨는 담낭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1차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1년이 넘게 치료를 받으면서 희망을 쌓아 갔는데, 갑작스런 통증과 함께 하반신 마비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오며 두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잘 움직이던 자신의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는 상황…. 그 무서운 상황에 고 씨 또한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삶의 의욕을 다 잃어버린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호스피스 팀과 만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고 씨는 임 간호사 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과도 곧잘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수진 씨가 힘들어할 때 자원 봉사자들이 사랑으로 돌봐줬어요. 몸도 닦아주고 마사지도 해주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죠. 수진 씨는 처음엔 ‘대체 내가 뭔데 왜 내게 이렇게 베풀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런 나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됐어요.”

임 간호사도 고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더 충실하게 살지, 평범한 사람들도 고민하는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말을 아껴서 하던 고 씨는 임 간호사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툭툭 던지는 식으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염색하고, 영화보고 싶어요” 하루하루 정했던 목표 말기 암환자의 경우 80% 정도가 섬망을 경험한다고 한다. 섬망은 정신과적인 질환으로 분류되는데,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는 증상을 말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하지 않던 말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환자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옆에 있어준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 물론 가족이 가장 많은 힘이 되지만 임 간호사 또한 고 씨의 손을 잡아주며 옆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고 씨가 임 간호사에게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원래 불교 신자이자 신내림 비슷한 것도 받은 적이 있었던 고 씨는 “염치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이 다시 신앙을 가져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병상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 뒤 마치 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4월 5일 식목일에 세례를 받았는데 새로운 사랑을 느낀 것처럼 환한 미소를 보여줬어요. 그날 호떡이랑 포도주스를 병동 간호사들에게 모두 돌리기도 했고요. 그동안 여러 감정의 기복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랑을 받으면서 점점 밝게 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아직도 그 날이 기억나네요.” 세례를 받은 고 씨는 더 이상 위축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한 번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딸이랑 같이 보려고 예매까지 했었는데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못 봐서 꼭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가 난데없이 ‘부러진 화살’이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라서 좀 더 밝은 영화를 보는 게 어떠냐고 하니 쓰러지기 전 하려고 했던 일이니 꼭 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름대로 본인의 삶을 천천히 마무리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야 했던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목표로 삼아 하루하루 실천하고자 한 거죠. 그래서 DVD를 구해 침대에서 딸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도와드렸어요.” 영화를 본 고 씨는 또 목표가 생겼다. 이번엔 “염색을 하고 싶다”는 것. 그 즈음 하루에 뭔가 꼭 하나씩 실천하던 고 씨는 “죽더라도 예쁘게 죽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이유인즉 한 번 씩 소독을 하러 방문하는 인턴선생님이 자신의 하얀 머리를 보고 연신 ‘할머니’라고 해서 속상하다는 것이다. “호스피스 팀에 감사해요” 전화로 눈물 펑펑 흘려 “아직 젊은데 할머니라니 말이 되냐”고 말하는 그 모습이 괜한 투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을 알기에 임 간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마침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중 헤어디자이너가 있어 병상에서 염색이 이뤄졌다. 염색을 하는 내내 고 씨는 밝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 씨는 또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엔 “예쁜 꽃이불을 사오라”는 것. 딸 수미 씨가 백화점 가서 꽃이불을 사왔다. 처음 사온 게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시 사오라고 할 정도로 고 씨는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임 간호사는 처음엔 그 모습에 살짝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주말이 지난 월요일, 임 간호사는 고 씨의 상태가 괜찮은지 궁금했는데 출근하자마자 고 씨가 임종을 맞이한 것을 알게 됐다. 그것도 딸에게 부탁했던 그 꽃이불을 덮고 말이다. “알록달록한 꽃이불을 덮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그 즈음 큰 딸에게는 ‘교회 열심히 다녀라’, 아들에게는 ‘술 그만 먹어라’ 하고 유언도 미리 했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자신을 많이 속상하게 했던 남편도 용서했다고 하고요. 다가오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던 분이라 유독 기억에 남아요. 염색도 예쁘게 하고, 꽃이불도 덮고, 한 여자로서 자신의 인생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를 원하던 분이었어요. 호스피스 팀에 처음 왔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도 놀라웠고요.” 장례를 위해 고향인 전주로 내려가던 딸 수미 씨는 임 간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간 호스피스 팀에 감사했다”는 것이었다. 수미 씨와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임 간호사는 통화를 하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진정으로 본인의 삶 마지막까지 충실했던 그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고 씨. 그런 고 씨의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임 간호사. 2012년 고 씨와 함께 했던 4월은 임 간호사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듯하다. 호스피스란? 전문 간호사가 규칙적으로 정한 시간에 병실이나 가정으로 방문해 환자를 진찰하고 상담하며, 통증 및 기타 증상 조절을 위해 담당의사와 상의해 간호를 제공하는 제도이다. 가족이 환자를 잘 돌봐줄 수 있도록 간호 방법을 알려주고 상담을 하며, 사회복지사와 가족상담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상담 및 지지를 제공한다. 가정 간호에 필요한 의료기구들을 빌려 주고 사용법에 대해 교육하며, 교육 받은 자원봉사자가 정한 시간에 환자를 방문해 환자와 가족에게 도움을 준다. 모든 도움은 무료로 제공된다. 호스피스 신청방법으로는 주치의가 요청할 수 있고, 환자 및 가족이 주치의에게 요청할 수 있다. 세브란스 호스피스는 1978년 1월 연세대학교 간호대학의 Marian Kingsley(한국명: 왕매련) 교수가 직접 영국 빅토리아 병원, 미국 코네티컷 가정간호 연수를 받은 뒤 호스피스 관련 최신자료를 가지고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1988년 3월부터 호스피스 가정방문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가정형, 산재형, 병동형으로 다양한 형태의 돌봄을 제공해 왔으며, 2003년엔 아동호스피스 운영을 마련했다. 현재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4층에 호스피스 사무실이 마련돼 있어 이곳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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