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녀석, 똑똑하고 계획적인 녀석, 야비한 녀석, 야단스럽고 무례한 녀석…. 백인백색의 인간처럼 동물도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여러 동물 가운데 유독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10년 넘게 많은 고양이를 키워가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 박은경(마리캣, 37)이 '경계의 존재' 고양이를 통해 문명과 야생의 경계를 말한다. 박 작가는 고양이 자체의 생태적 아름다움을 충실히 묘사한 작품을 선보인다. 스스로를 동물묘사의 천재화가로 불리는 조선후기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의 추종자라 말하듯, 작가의 그림은 고양이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변상벽의 ‘묘작도’를 패러디한 ‘묘상도(猫桑圖)’와 ‘묘리도(猫梨圖)’가 그 대표적이다. 잔뜩 흥분하거나, 혹은 심술이 난 고양이의 표정과 포즈가 생생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직접 보고 만지고 열매를 따며 관찰해 만든 섬세한 묘사력은 식물도감 못잖다. 아주 귀엽게 애교를 떨다가도 돌연 초연한 표정으로 꼬리만 탁탁 털며 빤히 쳐다만 볼 때는 냉정하다. 사람과의 유대감에서 비롯한 행동일 뿐, 개의 충성심과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고양이 마음속에는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야성의 공간이 숨겨져 있는 것을 느낀다. 고양이 사냥놀이를 처음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꼬리를 솜방망이처럼 부풀리고 잔뜩 흥분해 목표물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모습은 사람에게 비비적대며 애교를 부리를 다정한 고양이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야수 같은 모습이다. 박 작가는 이런 점에서 고양이를 문명과 야성의 경계선상에 있는 존재로 여긴다. 이러한 점은 현재 거주하는 공간과의 연계성에서 비롯된다. 작가가 살고 있는 곳은 농번기가 아니면 종일 사람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깊은 산골이다. 사람들보다는 숲과 바람과 햇빛 그리고 주변의 동식물들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작가 역시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그래서 이 묘한 녀석들을 캔버스에 옮기노라면 스스로가 동물의 마음이 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당돌한 꼬마, 겁 없는 하룻고양이, 때로는 모험을 즐기는 소년의 모습으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한 마리의 동물 고양이…. 작가 스스로 그들의 모습이 되어가는 모습을 반추하며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자신만의 춤을 추는 작은 동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조선후기 천재화가 변상벽 추종자” 깊은 산속에서 작업을 펼치던 작가가 2월 27일부터 3월 5일까지 서울 경운동 장은선갤러리에 '작은 호랑이, 큰 고양이'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마련한다. 이번 전시에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를 패러디한 작품 ‘하룻고양이’는 이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등을 잔뜩 곧추세우고 사납게 눈을 부라린 맹호의 모습은 털 하나하나와 수염까지 원전의 강하고 엄숙한 느낌에 충실하다. 하지만 그 앞에 똑같은 포즈로 꼬리를 잔뜩 부풀리고 선 새끼고양이에게 시선을 옮기는 순간 관객은 무장해제 되고 만다. 그야말로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아니 하룻고양이의 기세에 웃음이 나온다. 지금 이 순간만은 호랑이가 부럽지 않은, 맹수 왕국의 막내다운 모습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사납고 엄숙해 보이는 호랑이조차 그저 위엄 넘치는 큰 고양이처럼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유머가 돋보인다. -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