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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가정간호방문 동행 취재]“나와 아들의 친구가 돼 감사”

암 극복, 새 희망 꿈꾸고 있는 모명환 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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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316-317호 김금영⁄ 2013.03.11 14:04:43

“평소보다 말이 별로 없네요. 명환아~! 말 좀 해 봐!” 박로미 세브란스병원 가정전문간호사의 말에 한 소년이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웃는다. 2월 1일,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조금씩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리는 듯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 만난 소년. 명환이는 수줍음이 많아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순간순간 보여주는 미소가 봄빛처럼 싱그러웠다. 마스크로 입 부분을 가리고 있었지만 큰 눈과 오뚝한 코가 ‘고놈 참 잘생겼다’는 생각을 연신 들게 만들었다. “참 밝고 긍정적이면서 예쁘고, 착한 아이에요. 또 꼭 낫기를 바라는 아이죠. 매일 명환이를 위해서 기도해요. 명환이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제가 방문하면 서슴없이 물어보곤 해요. 치료받을 때도 굉장히 협조적이고요. 아이들이 아프면 짜증낼 법도 하잖아요? 그런데 명환이는 의젓하고 너무 예뻐요. 집에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그런데 오늘은 낯선 사람이 와서 쑥스러워서 그런지 입을 잘 안 여네요(박로미 간호사).” 박 간호사의 말처럼 명환이는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날은 가슴에 연결된 튜브를 세척하고 교환하는 치료가 이뤄졌는데, 단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시간에도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사춘기, 한창 예민할 나이라서 그런지 기자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하고 거의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박 간호사에 대해 물으면 “좋다”고 하며 서슴없이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명환이는 2년 전만 해도 밖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개구쟁이 아이였다. 명환이의 어머니 김순옥 씨는 슈퍼를 경영하고 있었고, 바쁜 어머니를 위해 명환이는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알아서 척척 해결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한 아이로 자랐다. 누나도 두 명 있지만 전혀 말썽을 피우거나 어리광부리는 일이 없어 오히려 누나들에게 힘이 되는 ‘의젓한 막내’로 통했다. 명환이를 키우면서 특별히 속 썩을 일이 없었던 김 씨는 평소와 같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일하러 갔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고 명환이의 담임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명환이가 발등이 너무 아파서 조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처음엔 ‘발등에 뾰루지가 생겼나’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아들에게 정형외과를 가보라고 이야기했다. “의젓했던 막내아들에게 갑자기 생긴 종양” “명환이는 평소에도 병원에 혼자 잘 갔었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라고 한 뒤 일을 하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무래도 발등에 난 것이 물혹 같다고, 보호자가 같이 와야 할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물혹에서 물이 나오지 않고 계속해서 피만 나왔어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더 큰 병원에 가서 초음파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MRI를 찍었어요. 처음엔 별다른 게 나타나지 않아서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명환이를 다시 학교에 보내려고 했어요.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안 들었고, 아이 시험도 있고 해서 검사를 미루려고 했죠. 그런데 다급히 피 검사를 다시 해봐야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어머니 김순옥 씨).” 피 검사를 마치고 나서 김 씨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문자를 여러 개 받았다. 피 검사에서 종양이 발견됐고, 양성반응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명환이는 2011년 12월 12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명환이의 아버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들의 상태에 대해 듣고 눈물을 쏟았다. 이렇게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보통 화를 내거나 우는 경우가 많지만 김 씨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평소에 워낙 눈물이 없는 타입이기도 했지만 아들에게 어머니로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 오히려 몇 년 만에 아들의 눈물을 처음으로 보게 됐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지만 아들 앞에서는 웃었다. “애가 눈도 크고 마음도 여리다보니 5~6살 때 조금만 야단쳐도 눈에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했었어요. 그러다 하루는 크게 야단을 쳤는데 그 이후부터는 제 앞에서 잘 울지 못하더라고요. 그런데 병원에 가서 입원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몸이 아프니까 이제 터놓고 우는데 그 모습이 짠했어요. 명환이가 울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던 부분을 터놓으면서 억한 심정을 해소했으면 했어요(어머니 김순옥 씨).”

“위축돼있던 아들에게 친구가 돼준 가정전문간호사” 병원에 입원한 명환이를 간호하기 위해 김 씨는 20여 년 운영하던 슈퍼도 접었다. 그러다보니 아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몰랐던 아들의 속내도 들을 수 있었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힘들어하는 아들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현실적으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집에 있을 때도 좀 더 아들을 잘 보살펴 주고 싶었지만 의학적으로 잘 모르는 부분들이 있었기에 조심스러웠고, 전문적인 간호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다 주치의에게 가정간호에 대해 듣게 됐다. “가정간호에 대해 소개받기 전에는 이 제도에 대해 잘 몰랐는데, 지금은 알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보호자로서 집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웃음). 명환이도 집에서 더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거든요. 특히 명환이가 박 선생님을 정말 잘 따라요. 처음엔 좀 낯설어했지만 2012년 1월부터 선생님이 계속 방문해서 치료를 해주면서 친해졌어요.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잘 나눠요. 아무래도 명환이가 아프면서 친구들도 잘 만나지 못하고 저랑 둘이서만 집에 있다 보니 외로웠는데 박 선생님이 힘이 되는 것 같아요(어머니 김순옥 씨).” 몸이 아프다보니 위축돼 친구들의 연락을 피했던 명환이는 자신을 간호해주는 박 간호사와 계속 만나면서 마음의 문을 열었다. 가만히 옆에 앉아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던 명환이는 “병원에 있을 때 답답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며 “집이 가장 좋다. 또 선생님이 잘 대해줘서 정말 좋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렇듯 명환이에게 집에서 간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운이 나는 일이었다. 명환이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는 박 간호사는 어머니 김 씨에게도 안부를 묻거나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위로를 전했다. 비슷한 연배다보니 김 씨는 박 간호사가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져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아들을 간호하느라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면서 심신이 지친 김 씨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김 씨는 “정말 에너지 넘치는 선생님을 보면 우리도 기운이 난다”며 “너무 도움만 많이 받고 있어서 미안할 정도”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엄마와 산책가고 싶어요” 1년여 동안의 시간동안 명환이는 방사선 치료를 받거나 수술 일정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다시 집에 갔을 때는 가정전문간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몸 상태도 많이 나아졌다. 아직은 입맛이 없어 밥을 잘 먹지 못하고, 건강했을 때 그렇게 좋아했던 해물탕, 생김치도 먹지 못하지만 봄이 되면 밖에서 산책하고 운동도 하면서 더 건강을 되찾을 생각이다. 명환이는 “건강해지면 해물 초밥이 먹고 싶다”며 수줍게 말했다. 이런 명환이와 어머니의 바람이 전해진 것인지 1월 16일에는 기쁜 일이 있었다. 병원에서 명환이의 종양이 깨끗이 없어졌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아들의 병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눈물을 참으며 마음을 다잡았던 어머니 김 씨는 그제야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마음의 평안을 찾은 기분이었다”며 “계속해서 아들과 내게 용기를 준 박 선생님과 치료를 잘 견뎌준 아들 모두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고 말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가정간호제도와 함께였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고 김 씨는 털어놨다. 큰 고비를 넘긴 명환이에게는 이제 새로운 길이 펼쳐졌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1년이라는 공백 기간이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모자(母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씨는 “아들이 옛날에는 사육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며 “맨날 꿈이 바뀌더라. 한창 꿈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할 나이다”라며 웃어보였다. “항암제를 먹고 머리 아프다고 힘들어하던 명환이를 볼 때 가슴이 많이 아팠는데 지금은 가정간호제도의 도움으로 이렇게 많이 건강해져서 정말 감사해요. 명환이가 밥을 잘 먹고 몸도 잘 추스르고, 종양도 없어졌으니 다시 잘 딛고 일어섰으면 좋겠어요. 암이 재발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명환이가 앞으로도 잘 견디기를 바라요. 또 이젠 자신의 인생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정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개척해 나가면서 꿈을 펼쳐나갔으면 하네요. 남한테 보답할 줄 알고 나눠주는 사람, 명환이가 그렇게 자라길 바라요(어머니 김순옥 씨).” 따뜻한 봄날 같이 산책을 나갈 거라며 설렘을 표하던 어머니 김 씨와 명환이. 어서 봄이 와서 두 모자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줬으면 한다.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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