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작가는 천재적인 화가라고 불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라고 느껴질 만큼 선천적인 그리기의 명수였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동네에 그리기 실력으로 소문난 그를 선생님이 불러 수업에 쓰일 괘도를 그리게 한다. 그는 자연과학, 사회생활과목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개미집의 구조, 동물원, 식물의 성장과정 등을 정확히 그렸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조금의 실력을 갖춘 손재주 있는 친구라면 어릴 적 한 번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이 될 쯤엔 그가 페인트로 그린 그림이 동네 이발소에 걸리고, 이 그림을 본 무당(무속인)이 찾아와 병풍을 부탁해 그림을 그려냈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우며 학원을 운영했던 김재학 작가는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이 학교시험을 치러 학원이 조용해진 시기에 50호 크기 종이에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금(禁)줄’을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아들을 낳은 집 대문에 새끼줄로 걸린 고추와 숯. 이 작품은 1988년 제4회 한국수채화협회 공모전 문공부장관상 대상작이 됐다. 공모전에 참여하게 된 이유도 재미있다. 한 친구가 수채화협회 공모전에 특선을 자랑하는 말을 듣고, “내가 그려서 내면 대상이다”라고 생각한 자신감이 그 이유였다. 우리나라에서 나만큼 그릴 사람이 없다고 자만심을 가진 젊은 김 작가는 1986년 공모전 2회 때 우수상을 받으면서 자존심이 상해 재도전 했지만 다시 87년 우수상을 탔다. 세 번째 도전 끝에 대상을 거머쥔다. 이후 그는 구상작가들과 미술계에서 화제의 작가가 됐고, 수채화협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김재학 작가와 선화랑 고 김창실 대표의 인연 “여기 작품이 팔렸으니 한 점 더 가져와 주십시오.” 선화랑에서 100인으로 구성된 단체전에 냈던 그의 장미작품이 팔리면서 화랑으로부터 김재학 작가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매일 한 점씩 그의 작품이 팔렸던 점을 본 고 김창실 대표는 이름도 몰랐던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둘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김 작가는 선화랑으로 부터 초대전 제의를 받게 된다. 90년대 '숨겨진 자연'이라는 들꽃(야생화)을 주제로 작업한 그의 작품이 삼성그룹에서 달력과 가계부의 이미지로 쓰여 진 것을 본 김 대표는 들꽃(야생화)전으로 선화랑에서의 첫 번째 초대전를 열었고, 작품이 전부 판매된다. 그리고 다음전시로 장미전을 해보자고 김 대표가 제의한다. 그리고 작품전을 열어 또 다시 작품이 매진된다. 김 작가와 김 대표와 서로 비즈니스적인 마음이 잘 맞았다고 김 작가는 회상하며 필자에게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작품제작에 대한 약속을 1년 넘게 미루어 속을 썩였던 김 작가를 김 대표는 그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져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의 혼이 담긴 장미 “장미 그리는 건 언제나 재미있다” “나는 그림은 재미있게 그린다. 우선 내가 즐겁지 않으면 그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가 재미있게 그려야만 좋은 그림이 나온다. 의무적으로 그린 그림은 좋은 그림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김 작가는 주문을 통해 제작하는 작업방식을 꺼린다. 그래서 인물초상을 그리는 주문이 들어오면 1년이 넘도록 완성하지 못했고 여러 차례 약속을 미루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장미를 그리면 언제나 재미있다고 한다. “내가 장미를 그린 작품들이 모두 같은 것 같지만 똑같이 그려진 장미는 없다. 나는 죽어도 똑같은 장미를 못 그린다.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리면 재미가 없어 그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작업 시 손이 자연스럽게 가고 다양한 표현방법을 알아가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가끔 팔린 그림을 더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미술애호가들로부터 팔린 작품과 똑같이 그려달라고 부탁을 받지만 그릴 수가 없을 뿐더러 그려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의 화병의 꽃은 허점이 없다. 아니 허점 없이 그린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이 없고 딱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그는 대상을 단순히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예민한 촉을 곤두세워 꽃잎과 봉우리의 모양을 그림에서 재구성한다. 작품의 예술성을 위해 단순히 관찰력과 손기술이 아닌 고차원적인 예술적 소재를 찾고 만들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그림이 사진 같다는 칭찬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진과 그림의 차이를 설명하며 “그림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그는 말한다. 김재학 작가는 그의 작품으로 사실주의 진수를 보여주지만, 사실적인 묘사에만 치중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는 그만의 심미안으로 작품에 혼을 담는 예술가다. - 김재훈 선화랑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