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와 거울을 소재로 물 또는 그릇의 형상을 부조로 표현하고 있는 조각가 이상민(47)이 물의 파장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 세상의 흐름을 잡을 수 없는 실체의 형태로 표현한 작품들을 6월 4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진화랑에서 선보인다. 깨지기 쉬운 유리를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작가는 "깨지기 쉽지만 아무 냄새가 없는 것이 유리인 것 같다. 실제 보이는 외관과 다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다양한 모양의 그릇을 통해 비유했다"고 설명한다. 유리의 한 면을 곱게 연마해 생긴 오목한 공간은 정면에서는 볼록한 입체적 형상이 되어 나타난다. 하지만 실제로는 편편한 유리에서 느껴지는 볼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만져보고 싶은 촉각적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2006년부터 최근까지 이상민 작가의 일대기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초기 '애프터이미지'(Afterimage)와 '미러 드롭'(Mirror Drop)시리즈는 어린 시절 물수제비 놀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잔잔한 호수에 일었던 물의 파장은 이미 사라졌지만 작가는 파장의 잔상을 유리에 옮기고 그 시간을 영원히 기억한다.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 반복하는 자연, 나아가 세상의 흐름을 파장의 형태, 잡을 수 없는 실체의 형태로 표현해낸다. 프랑스 유학시절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던 작가는 그 해답을 냄새에서 찾았다고 말한다. "냄새는 내 머리 안에 고유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낙엽 타는 냄새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기 때문에 그릇 형태에 그 냄새를 집어넣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실체에 대한 고민은 사발이 연상되는 그릇 시리즈로 발전된다. 내면의 깊이와 성향을 비유할 때 사람의 그릇이 크거나 작다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이상민은 실제 보이는 외관과 다를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다양한 모양의 그릇을 통해 비유한다.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눈이 아닌 귀를 통해 유리의 깊이를 가늠하며 형태를 완결시키는 작업의 과정은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주제가 작업과정에 온전히 녹아들었다.
유리라는 재료를 선택한 것은 운명적이었다. 중학교 시절 유리가루가 눈에 들어가 치료하는데 만 집 한 채 값이 들었다는 작가는 유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고 손에 잡은 것이 유리를 갈아내는 그라인더라고 한다. 이제는 유리 표면을 갈아내는 그라인더의 소리만 듣고도 작업의 완성도를 확인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유리라는 매체가 갖는 독특한 물성인 반사, 각인, 조형화되는 물성을 가지고 마음에 담고 싶은 것을 그려 넣은 작가의 감성이 반영된 작품들이 함께 한다. 소리로 완성하는 조각, 입체감이 만져지지 않는 부조, 형상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조각인 그의 작품에는 묘한 착시로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듯 한 분위기를 만들어 모든 존재에 대한 현물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문의 02-738-7570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