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명예는 살 수 없다. 세상사 돈으로 되는 건 따로 있다. 돈이 오히려 행복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돈을 떠나 상식에 따른 지혜와 절제가 필요하다. 책은 구입할 수 있지만 지식은 빌릴 수 없다.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은 살 수 없다…. 올해로 우리나라에 명품이 상륙한 지 30년 됐지만 명품시장은 말이 아니다. 매출하락과 매장철수, 시장퇴출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글로벌 불황의 사각지대라는 건 옛말이다. 백화점 정기세일에선 최대 80%까지 할인된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던 악어백 콜롬보, 구두의 대명사 지미추, 수백만 원대 캐시미어 스웨터 브루넬로쿠치넬리도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한다. 소수만의 가치와 명예로 전천후 인기를 끌던 ‘명품의 굴욕’이다. 항공우주연구원 휴직, 美 MBA 중 결혼 ‘모든 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글로벌 명품업체 에르메스의 브랜드전략이다. 아이러니하게 요즘 세태와 딱 들어맞는다. 오로지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이기 때문이다. 명품의 흥망성쇠를 떠올리며 자꾸 우주과학자 이소연씨(35)의 결혼이 오버랩 되는 건 왜 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지난 8월2일 미국에서 결혼했다. 상대는 한국계 미국인 안과 의사 정재훈씨.(39) 결혼 후 미국국적을 취득하건 말건, 한 개인의 혼사에 추호도 왈가불가 하고 싶지 않지만 아쉬운 구석은 떨칠 수 없다. 천문학적 비용이 든 과학인재 육성 프로젝트에 빨간불이 켜진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2008년 러시아 소유즈 로켓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10일간 머물렀다. 260억원 막대한 세금이 들었고 경쟁률은 1만8000대1 이었다. 이씨는 우연한 기회에 신문기사를 보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우주비행사로 뽑힌 고산씨가 정식 비행을 한 달 남겨놓고 관련 보안규정 위반으로 탈락해 이씨가 그 자리를 맡은 것이다. 이씨는 광주과학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국가세금으로 공부했다. 이 대학에서 바이오시스템학 박사학위를 받고 우주인으로 활약한 뒤 방송을 자주 탔다. 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한국형 우주인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해왔다. 자신의 책 ‘열한 번째 도끼질’을 통해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라 했다. 4대악에 ‘도덕적 해이’도 추가 했으면… 이씨는 1년 전부터 미국 UC버클리대에서 MBA과정을 밟고 있다. 박사 후 다시 석사과정에 들어가는 건 흔치 않다. 이런 그의 행보가 궁금해 항공우주연구원 이주희 우주과학연구팀장에게 물었다. “현재 연구원 소속이지만 휴직상태다. 미국 MBA는 본인 결정이며 인사위원회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주인 의무복무기간 2년을 넘겼고, 과학기술 저변확대에 이바지 했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일탈과 함께 최근 전면 재검토를 부른 세제개편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국가세금은 헛돈이 아니다. 허투루 낭비되는 건 죄악이다. 다만 이번 논란이 보편적 증세가 필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돈 없이 지속가능한 복지모델은 불가능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모순이다. 이제 솔직해지자. 고통을 분담하고, 세금 쓸 데 잘 쓰자. 박근혜 정부 공약이행에 135조원이 든다. 민주당은 197조원이다. 5년 전 우주정거장에 간 이소연씨에 든 세금 260억원이 자꾸 아른거리는 건 왜 일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 (水深可知 人心難知) 명품 페레가모 구두라도 한 번에 두 켤레 신을 수 없는 노릇이다. 국정과제인 4대악(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추방에 한 가지를 추가했으면 좋겠다. 바로 도덕적 해이(解弛)이다.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