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이제 가솔린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달린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이끄는 디터 제체 회장의 말이다. 소프트웨어(SW) 경쟁력 없이는 하드웨어(HW) 경쟁력마저 잃어버린다는 의미다. IT분야에서 세계 최고지만 유독 소프트분야 후진국인 우리가 새겨들을 말이다. 소프트웨어가가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조선분야 세계 1위지만 내부의 소프트웨어 90%를 수입에 의존한다. 자동차 내장 소프트웨어 99%가 외국산이다. 하드웨어는 세계 최고가 여럿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 이 최근 한 대학 교수의 쓴 소리에서 나왔다. “자동차는 가솔린 아닌 소프트웨어로 달린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치우고 있는데 한국만 뒷짐 지고 있다” 미국 벨연구소 출신으로 30년간 서울대에서 몸담았던 고건 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지난 10월 말 미래창조과학부 특강에서 한 말이다. 졸업생 중 90%가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어 학부 교수 30명 가운데 절반은 대학원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20년 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은 100명 이었지만 현재는 딱 절반인 50명이다. 소프트웨어 전문가 미충원률은 28.9%에 달한다. 대학문을 나서는 소프트웨어 인력이 기업이 필요한 수의 70%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넘치는데 글로벌 핵심 개발 인력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과 기업 모두 수급에 문제가 있다. 보통 100억 원짜리 프로그램이 발주되면 도급과 재도급을 거쳐 개발업체 수입은 10%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의 구글’ 이라 불리는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제니퍼소프트(대표 이원영)가 주목받고 있다. 이 회사가 내세우는 ‘하지 말아야 할 33가지’ 가운데 핵심은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라는 거다. 개인의 풍족한 삶이 회사발전의 원동력이란 역설이다. 국민게임으로 불리는 ‘애니팡’ 누적 다운로드 수는 11월 초 현재 2800만 건에 육박한다. 이 게임 개발업체 선데이토즈(대표 이정웅)가 지난 11월5일 코스닥에 상장됐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드업(신생벤처) 중 첫 증시 상장으로 2009년 설립됐으니 4년 10개월 만이다. 국내 벤처기업이 평균 14년 걸리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소프트웨어의 쾌거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함께 어우러져야 빛난다 변화무쌍한 소프트웨어의 역동성은 가히 모든 분야를 집어삼키고 있다. 고정관념을 누가 빨리 버리느냐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 사진분야를 보면 코닥이 지고 사진공유사이트 플러거가 떳다. 음악분야에서는 디지털 음원서비스가 레코드사를 대체했다. 도서분야에서는 책방이 사라지고 아마존이 장악했다. “IT파워가 삼성 같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강자로 넘어가고 있다” 얼마 전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했을 때 삼성 이건희 회장이 한 말이다. 스마트폰과 TV, PC 등 다양한 하드웨어 중심으로 운영되는 삼성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없는 게 없는 제품이지만 이를 묶어 융합·복합하는 앱과 운영체계(OS),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 우리나라 인구 70%인 3500만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3분기 스마트폰을 9000만대나 팔았다. 세계 일류의 하드웨어 회사임에도 소프트웨어는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구글의 운영체계인 안드로이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부속품이 아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수 없다. 형식과 내용, 바탕과 꾸밈이 어우러져야 빛난다.(文質彬彬) 거대한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만 볼 게 아니라, 바람도 봐야 옳다. 이제 빌게이츠 같이 국부를 창출하는 큰 부자를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보상하고 인재를 키우자.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