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다. 산업을 먹여 살린다. 쌀이 생명이자 하늘이듯, 반도체는 경제의 대동맥이자 심장이다. 반도체는 국가경제를 살찌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2위다. 지난 해 무역수지 흑자 442억 달러의 절반 정도가 반도체에서 나왔다.
반도체는 메모리와 비메모리(시스템)로 나뉜다. 메모리는 어원 그대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비메모리는 연산과 제어, 처리기능이 있다. 둘은 때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구분한다. 인체로 보면 위장과 두뇌인 셈이다. 육체와 영혼으로도 불린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1,2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세계시장의 52.7%를 차지한다. 대단한 수치다.
‘반도체 신화’ 일군 삼성출신 KT 황창규, SK 임형규의 숙제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시초는 1965년 고미전자산업이다. 미국 코미사와 합작해 트랜지스터를 조립, 생산하기 시작했다. 초기 반도체의 씨앗은 그렇게 잉태됐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1983년 삼성이 63K D램을 자체개발하면서 수출 효자산업으로 성장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척박한 환경에서 ‘반도체 신화’를 일군 두 주역들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KT 황창규 신임 회장과 최근 SK서 영입한 임형규 부회장이다. 메모리반도체 신화에 버금가는 통신 신화창조가 두 사람의 어깨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동갑(53년)에다 동향(부산), 동창(서울대)에 직장(삼성)까지 같은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황 회장은 ‘황의 법칙’의 장본인이다. 1년에 메모리 용량을 2배씩 성장시켰다.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나서서 영입한 임 부회장은 삼성의 지역연수(미국 박사) 첫 수혜자다. 국내 이동통신사의 롱텀에볼루션어드벤스드(LTE-A) 서비스를 지원하는 통신칩은 모두 수입산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퀄컴에서 만든다. 이제 두 주역들이 새로운 반도체 신화를 쓸 때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생산액은 500억6700만 달러(53조2600억원)로 일본을 제쳤다. 세계시장 순위는 미국 다음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과 대만 기업이 우리와 경쟁에 밀려 시장에서 철수한 이유가 컸다. 일종의 어부지리란 분석도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대규모 시설투자가 전제조건이다. 비메모리에 비해 300∼400배 공정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시장규모 4배 큰 비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고작 5%
그러나 반도체 세계2위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시장규모가 4배나 큰 비메모리분야에서 우리의 점유율은 고작 5%다. 편식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해외의존도가 너무 높다.
세계 스마트폰시장 40%를 점유하고 있지만 핵심 반도체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비메모리분야의 취약성 때문이다. 갤럭시노트 S4를 뒷면을 뜯어보면 초록색 기판위에 18개의 크고 작은 검은색 반도체가 꽂혀 있다. 이 가운데 사진이나 전화번호 등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는 3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다. 스마트폰 두뇌에 해당하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터치스크린 통제칩 등 핵심 기능은 비메모리다.
자동차용 비메모리반도체도 외국산 일색이다. 미국의 프리스케일, 독일 인피리언, 일본 르네사스 등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자동차는 가솔린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달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소프트웨어는 비메모리반도체가 주도한다.
우리나라 반도체가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개가 아니다. 반도체장비와 소재 등 후방산업도 취약하다. 반도체회로를 그리는 노광기 등 핵심장비는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실리콘웨이퍼와 감광재 등 반도체소재의 일본 의존도는 심각하다.
편식은 건강에 해롭다. 지나치거나 치우치면 탈난다.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를 키우려면 이제라도 비메모리분야에 집중해야 옳다. 프레임을 바꿔야 이긴다. 차별화가 생사를 가르는 경쟁력이다. (同卽死 異卽生)
- 김경훈 편집인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