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왕진오 기자) 불가마의 뜨거운 열에 의해 일그러진 달 항아리와 도자기로 보기에는 너무도 현대적인 세라믹 오브제 위에 옻칠과 나전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통의 가치와 현대적 해석을 펼치고 있는 이헌정(48)작가가 기교와 형식을 배재한 세련된 아방가르드의 감수성을 그대로 드러낸 회화 같은 도자작품을 3월 13일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 서울에서 선을 보인다.
그의 작품은 브래드 피트, 퍼프 대디, 제임스 터렐, 노먼 포스터, 수보다 굽타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소장하고 있어 화제를 모은바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세라믹 오브제 위에 옻칠과 나전을 접목한 최초의 시도로 단일한 하나의 몸체로 구축된 하나의 형태가 아닌 다른 매체, 요소들과의 결합적 구조를 통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6개월 정도 옻칠을 배우고 있는 작가는 "표면에 10회 이상 칠을 올려야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었죠, 결과보다는 완성되어지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며 "전통의 가치보다는 예술가의 삶이 집적되어 있을 때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달 항아리의 아름다움은 그 형태나 색의 수려함 보다는 그 시대를 투영하는 정신을 내포하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한 미적 가치로 평가된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도공이 동시대의 풍류를 달 항아리에 담은 것처럼 이헌정은 또 다른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달 항아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을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헌정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을 보면 작품을 그리던 손이 상상된다. 작품보다 삶의 흔적이 아름다운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보면, 잘 살아야겠다. 예술가의 삶이 작품보다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과 많은 양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도예작업의 길고 고된 여정은 그에게 명상과 참선을 체험하고, 더불어 기대하지 못한 결과물들을 선사한다.
도예의 우연적 효과를 즐긴다는 그는 "내 손과 노동은 다른 창조자의 피조물이 탄생하는 것을 돕는다."고 말한다. 그저 물래와 점토의 흐름에 감각을 맡기고 적당한 불의 색깔에 유약의 용융점을 맞추는 행위들로, 무엇을 뱉어내고 표현하기 보다는 그 모든 과정에 순응하는 수동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도자벽화인 청계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제작과 양평 강하미술관의 설치 작업에서 보이는 차가운 이성과는 다르게 그의 그릇 작품에서는 명상성을 엿볼 수 있다.
저마다 모양, 질감, 색깔, 크기, 용도가 천차만별인 그릇들을 통해 도예는 의식에 의한 계획저인 창조 작업이 아니라, 전적으로 직관에 의존해 감각적인 작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예술의 행위 자체가 목적이자 즐거움이 되어야 하며, 내가 즐길 때 작품을 보는 이도 즐길 수 있다"고 말하며 회화와 조각을 아우르며 현대적 감수성을 발산하고 있는 이헌정의 작품은 3월 28일까지 박여숙화랑에서 감상할 수 있다. 문의 02-549-7575.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