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왕진오 기자)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가방들의 엄청난 크기로 인해 관람객들의 시선이 사로잡힌다.
벽면을 따라 촘촘히 묘사된 가방 이미지들의 독립된 리얼리티 간 상호 작용이 이미지 간 단순한 횡적인 연대를 넘어서 무수히 많은 가장의 '계곡'(valley)을 무의식적으로 연상시킴으로 인해 '경탄'의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대형 작품은 가방과 책에 대한 다양하면서도 심도 깊은 회화적 변주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는 이진용(53)작가가 4월 15일부터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29길 갤러리바톤에 펼쳐내는 작품의 위용이다. 전시제목 ‘TRUNK 68㎡’은 전시장의 대형 벽면의 크기를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엄청난 수집광으로 알려진 작가는 극사실 기법으로 오래된 책, 여행가방, 카메라, 악기 등 해외 전시를 다니면서 수집한 도자기, 축음기 등이다. 작가의 수집품들은 오래된 손때와 더불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들이다.
이번 전시에는 수십 년간 수많은 책과 가방,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관계와 가치, 시간들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여온 기억들과 영상, 물리적 감촉에 대한 시각화가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회화적 구상화'의 단계에 이른 작업들을 선보인다.
이진용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려냄으로써 외양의 기계적인 묘사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이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연마해온 예술적 기교를 온전히 사물의 본질, 즉 보편적이고 영원불변한 원형질의 구현이라는 작가적 이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미술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할 정도로 자신에게 철저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을 통해 마련된 재화를 이용해 골동품을 꾸준히 모았다고 전한다.
"모아놓은 사물들을 머릿속에 기억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마치 스캔을 하듯이 화면에 그려내죠. 마치 컴퓨터의 파일을 보관하는 폴더처럼, 다양한 기억들을 모두 모아 두었다"며 "수많은 소장품 중 제 마음에 용해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화면에 그릴 수 있었습니다."
가방과 책의 외형 그 너머 어딘가 존재하는 본질에 대한 극한의 탐구와 절제된 고도의 예술적 테크닉의 이상적인 결합을 보여줄 작가의 본질 주의적 접근의 오늘을 살펴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5월 24일까지 진행된다. 문의 02-597-5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