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①]꿈에 그리던 세계 일주, 중년의 ‘로망’ 시작하다
『‘세계여행’ 말로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대한민국을 벗어나 배낭하나 둘러메고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문화·사람·풍경 등을 접하는 즐거움은 생각만 해도 설레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뒤 따른다. 녹녹치 않는 현재의 삶속에서 ‘꿈’으로만 가슴 한켠에 고이 접어둘 뿐이다. 젊은 사람도 떠나기 힘든 세계여행일진데 김현주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어릴 적부터 늘 간직해오던 꿈을 중년이라는 지긋한 나이에 실현시키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한 나홀로 세계여행은 현재까지 56개국 32만km를 누볐다. CNB저널은 ‘중년의 로망’ 나홀로 세계여행을 떠나고 있는 김 교수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여행 <1> 인천 - (중국 남방항공 CZ) - 중국 심천 (2박) - (Air Asia)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 말라카(1박) - (쿠알라룸푸르) - (Air Asia) - 자카르타(1박) - (Batavia 항공) - 암본(1박) - (Batavia 항공) - 수라바야 경유 - (버스) - 덴파사르 발리(1박) - (Air Asia) - 족자카르타(1박) - (Air Asia) - 자카르타 - (대한항공 KE) - 인천
1일차 (서울 → 광저우 → 선전)
세계일주 첫 여정
설 연휴 마지막 날이다. 나이 50대 중반, 젊은 시절부터 꿈에도 그려왔던 세계 일주 첫 여행길이다. 겨울과 여름을 틈타 앞으로 5년 정도 다니다 보면 대략 세계를 다 돌아볼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떠나는 비장한 여행이다. 세계일주 첫 목적지는 인도네시아로 정했다. 아시아 웬만한 지역은 이미 그동안 틈틈이 다녀왔으므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 지역인 인도네시아를 선택한 것이다. 오후 1시 20분 중국남방항공으로 중국 광동성 광저우(廣州)로 출발하다.
대만-중국 직항로
대만-중국 직항로 개설소식을 다룬 남방항공 기내지 기사가 눈길을 끈다. 양안(兩岸) 직항로 개설에 따른 경제적, 시간적 효과를 분석한 글이다. 적대국가인 대만과 중국 본토 사이에 정규 직항 노선이 열렸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마냥 부럽기만 하다. 실리 앞에서 명분이나 이데올로기쯤은 멀찌감치 뒷걸음치는 중국인들의 실용주의 가치관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단 길을 열어 왕래하다 보면 마음의 벽, 체제의 벽을 극복하는 날도 앞당겨질 것이다. 서울과 평양 사이의 직항로가 열릴 길은 갈수록 더욱 멀어 보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3시간 50분 비행 끝에 현지 시각 오후 4시 10분(한국시간) 광저우 바이윤(Baiyun, 白雲)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이름처럼 오늘도 공항 상공을 뒤덮은 짙은 하얀 구름 때문에 항공기가 착륙하며 요동을 친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터미널을 나오니 선전(深圳)행 공항버스가 곧바로 연결된다. 광저우 공항 터미널에는 광저우 시내는 물론 주하이(珠海), 선전, 종샨(中山), 후이저우(惠州), 포샨(佛山) 등 광동성 각 도시로 운행하는 버스가 즐비하다.
광선(廣深)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중국의 공장,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동관(東筦) 공업지구를 지나 광저우 공항을 출발한지 2시간 20분 걸려 선전 후티엔(福田)에 도착했다(요금 CNY 88). 길을 물어 352번 시내버스로 루오후(罗湖)역에 도착, 인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은 가격에 비해서 썩 괜찮다. 호텔 인근 식당에 들러 청도맥주를 곁들여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춘절이라 온 동네에 폭죽놀이 소리가 요란하다.
2일차 (선전 → 홍콩 → 마카오 → 선전)
선전에서 홍콩을 거쳐 마카오까지
오늘은 마카오로 가야 한다. 춘절 연휴의 교통편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결국 마카오행 페리가 자주 다니는 홍콩으로 돌아서 가기로 하고 일찌감치 호텔을 나섰다. 루오후역 출경 사무소는 아침 6시 30분 업무 시작이라서 이미 줄이 한없이 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중국 출국, 홍콩 입국이라는 성가신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국경이라 그래봤자 작은 개천 하나
작은 개천 하나가 중국과 홍콩의 경계를 이루지만 엄연히 국경은 국경이다. 작은 개천 위에 그어 놓은 줄 하나가 두 체제를 가르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니 인간이 벌이는 이데올로기 놀이가 얄궂게 느껴진다. 다행이 절차는 의외로 신속해서 아침 6시 55분 루오후역에서 홍콩 침샤추이행 KCR 전철에 승차할 수 있었다. East Tsim Sha Tsui 역에 도착, MTR로 환승해 솅완(上環, Sheung Wan) 마카오 페리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온전히 긴 하루를 즐길 시간이 충분하니 새벽잠을 설친 보람이 있다.
마카오 반도에 있는 메인 페리 터미널 입국장 줄이 길까봐 일부러 타이파(Taipa)섬으로 가는 코타이젯(Cotai Jet) 페리에 탑승했다. 페리는 아침 8시 30분 출항해 남중국해를 건너 1시간 후 마카오 타이파섬에 닿는다. 터미널 건물을 나오니 마침 샌즈(Sands) 카지노호텔 무료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어 일단 그곳으로 먼저 갔다. 카지노에서 재미삼아 게임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득실 없는 한 시간이지만 기분은 짜릿짜릿하다. 짜릿한 기분을 한 시간이나 맛보고 본전을 챙겼다면 대성공이다.
▲마카오 성바오로 성당 유지 뒷편 까몽에스 정원내 김대건 신부 동상.
마카오 도보 탐방
샌즈 앞에서 10A 버스를 타고 아마사원(A-Ma Temple, 如媽閣)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30분이다. 여기서부터 도보로 마카오 시내 탐방을 시작한다. 포르투갈 통치 시절 인도인 용병의 숙소로 쓰였던 무어리쉬 배럭(Moorish Barack)을 지난다. 군대 막사치고는 무척 우아한 건축물은 오늘날 마카오 항만청으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언덕을 오르니 페냐 교회(Penha Church)가 멋진 첨탑을 드러낸다. 가까이는 마카오 행정청과 부호들의 저택이 즐비한 최고급 주택가, 조금 멀리 마카오 시내와 더 멀리 항만 건너 타이파섬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예비 부부들의 사진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남유럽 정취 풍기는 성요셉 교회 광장
화강암 깔린 도보를 휘감아 도니 노랗고 파란 원색으로 치장한 성요셉 교회와 수도원(St. Joseph Church & Seminary)이 나타난다. 교회 앞 작은 광장에서 땀을 식힌다. 포르투갈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은 리스본 마카오에서도 가장 마카오다운 모습을 간직한 곳이 이 부근 아닐까 싶다. 교회와 마주한 돔페드로(Dom Pedro) 극장은 밖에서 보면 아담한 극장일 뿐이지만 백년 넘게 마카오의 공연 예술을 주도했던 곳이다. 마침 문을 연 식당이 있어서 볶음 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소박한 식사지만 동서양 음식 문화가 섞인 마카오의 음식 맛은 언제나 일품이다.
인산인해 연휴 관광인파
이어서 소담한 언덕길을 내려가니 마카오의 중심 세나도(Senado) 광장이다. 마카오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이곳은 오늘 춘절 연휴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여기서 작은 언덕을 몇 걸음 오르니 마카오의 랜드마크인 성바오로(St. Paul) 성당 유지(遺祉)와 박물관, 그리고 몬테 요새(Monte Fort)가 연이어 나온다.
박물관 관람까지 마치고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성바오로 성당 뒤쪽(북쪽)으로 내려가니 단아한 석조 건물인 성안토니오(St. Anthony) 교회, 그리고 몇 걸음 더 전진하니 까몽에스(Camões) 정원이다. 포르투갈이 해양 대국으로 융성했던 16세기 활동했던 민족 시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일 년 내내 번잡한 성바오로 성당 앞쪽과는 달리 이 지역은 한적하다. 몇 십 년 전 모습 그대로인 듯하다. 마카오 반도 남쪽의 휘황한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럴수록 뒷골목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기에 오히려 좋다.
▲중국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는 마카오 세나도 광장.
미국 네바다주를 능가하는 마카오 카지노 산업
마카오의 두 얼굴, 마카오의 미래는 어떻게 풀릴 것인지 궁금하다. 카지노에만 오면 유달리 씀씀이가 커지는 중국인들 덕분에 마카오 카지노 매출 규모는 카지노 산업의 발상지 미국 네바다주 전체의 카지노 매출 규모를 능가한다. 1999년 마카오 중국 반환(홍콩 반환은 1997년)의 조건으로 성립한 1국가 2체제가 끝나는 2049년 이후 마카오 처리를 놓고 중국 정부는 꽤나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마카오에 유학한 김대건 성인
까몽에스 정원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이 있다. 성인 안드레 김(Santo Andre Kim)이라고 표기돼 있다. 1985년 현지 한인들이 건립했고 1999년 보수, 재건립한 것으로 적혀 있다. 방금 지나온 성안토니오 교회는 김대건 신부가 수학했던 곳이기도 하다. 마카오 시내 중심 뒷켠 한적한 공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신부인 김대건 성인의 발자취를 발견한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다.
이어서 홍가(紅街) 재래시장을 관통해 주하이(珠海) 중국 국경(Barrier Gate)까지 걸어서 갔다. 언제나 그랬지만 마카오는 오늘따라 유달리 번잡하다. 춘절을 맞아 중국에서 넘어온 수천,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거리마다 넘쳐난다. 여러 번 마카오를 찾았지만 오늘 가장 사람이 많은 듯하다. 서울 명동이나 홍대앞, 강남역 부근은 비교도 안 된다.
페리 터미널도 사람들로 대혼잡이다. 중국 선전행 밤 8시 45분 페리를 타고 셔코우(Shekou, 蛇口)항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다 됐다. 셔코우 항에서 시내버스를 갈아타며 선전 루오후역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중국과 홍콩, 마카오의 국경을 넘나든 간단치 않았던 하루는 이렇게 저물었다.
3일차(선전 → 쿠알라룸푸르 → 말라카)
선전 공항 풍경호텔 조식후 서둘러 길을 나섰다. 루오후 역전 버스터미널에서 떠나는 K568 공항버스는 안성맞춤이다. 아침 8시 40분 로오후역을 떠난 지 1시간 만에 바오안(宝安)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사통팔달 도시고속도로가 잘 갖춰졌기에 먼 길을 쉽게 올 수 있었다. 선전공항에서 Air Asia 항공기를 타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한다. 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인 Air Asia는 맹렬하게 중국 노선을 개척한 후 대박을 냈다. 베이징, 텐진(天津), 상하이, 항저우(杭州), 구이린(桂林), 선전, 광저우, 쿤밍(昆明) 등지에서 방콕과 쿠알라룸푸르 등 동남아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노선은 연일 만석 행진이다.
선전 공항 국제선 터미널은 광동어의 드센 억양까지 더해져 매우 소란하다. 항공기내 중국인들은 하릴없이 항공기 내를 배회하거나 일행끼리 모여 크게 떠든다. 과거 20∼30년 전 우리나라도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생각하며 그러려니 한다.
오전 11시 15분 선전공항을 이륙한 항공기는 오후 3시 40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LCCT(Low Cost Carrier Terminal)에 도착했다. 이제 말라카(Malacca)로 이동하는 일만 남았다. 버스로 일단 닐라이(Nilai)로 향한다. 공항 주변으로는 드넓은 열대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버스 안에는 말레이시아의 세 인종, 즉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적절히 섞여있다. 세 인종이 섞여서 살기는 하지만 왠지 겉도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닐라이에서 세렘반(Seremban)을 연결하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서 택시로 세람반 버스터미널로 향하다. 40분 걸리는 먼 길인데 택시기사는 40링깃(한화 약 1만5000원)만 받는다. 저녁 7시 30분에 출발한 말라카행 버스는 두 시간 걸려 말라카 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25링깃, 한화 약 1만원)로 도착한 세리 코스타(Seri Costa) 호텔은 콜로니얼 풍이 물씬 풍겨 천년 고도(古都)에 도착한 감회를 더해 준다. 구도심에 자리 잡은 호텔은 위치와 건물, 인테리어가 우아한 부티크 호텔이다.
- 김현주 광운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김현주 광운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