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③]동서양 세력들이 각축전 벌인 ‘암본’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여행<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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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자카르타 → 암본)
견딜 수 없는 더위
남반구 2월의 암본은 무척 덥다. 게다가 습도가 90%를 넘으니 견디기 어렵다. 향신료가 자라는 기후 조건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 더운 곳에서 온갖 종류의 교통수단(오토바이, 뻬짝, 미니버스, 콜트 중형버스 등)을 이용해 곳곳으로 이동했다. 삶의 기운이 넘치는 시장통 한 복판에 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특히 그곳을 자주 들락거렸다.
먼저 찾아 간 곳은 따만 막무르(Taman Makmur) 언덕에 있는 시왈리마(Siwalima) 박물관이다. 몰루카 민속박물관에 해당하는 곳이다. 시내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 가파른 언덕길을 땀 흘려 올라간 곳에 있다. 박물관 앞에는 힌두교 사원이 있어 방문해 보니 마침 외지 출신 암본 거주 힌두교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낯선 이방인들의 방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종교가 민감한 이슈인 이곳에서 소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본능에 가까운 방어 자세인 셈이다. 박물관 근처에는 해양 박물관이 있고 그 옆에 파티무라(Pattimura) 동상이 용맹한 얼굴을 하고 서있다.
일본 남양 해군 사령부
인근 아마후수(Amahusu) 바닷가로 접근해 암본만(灣)을 조망하고 그 너머 반다(Banda) 해협을 바라본다. 반다해에서 십여 킬로미터 내륙으로 깊이 파인 암본항은 천혜의 항만이다. 2차 대전 시절 일본 남양 해군 사령부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 중 하나다. 일본은 이곳을 발진 기지로 삼아 다윈(Darwin) 등 호주 북부 지역을 공습했다. 일본군과 전투한 호주 연합군 희생자 중에는 육군보다는 공군과 해군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바로 암본 항구를 놓고 공중전과 해전이 치열했음을 말해 준다.
떠날 줄 모르는 버스
시내로 돌아와 섬의 반대편 북쪽에 있는 히투(Hitu)에 가려고 버스를 탔으나 버스가 떠날 줄 모른다. 원래 이 섬의 중심 항구는 히투에 있었고 15세기 서양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그곳을 통해 중국인, 아랍인, 자바인들이 향료 무역을 위해 왕래했다고 한다. 게다가 히투 가는 길은 산을 넘는 험준한 길이어서 방문을 포기했다. 네덜란드인들이 지은 요새(Amsterdam Fort)와 포르투갈인들이 지은 향신료 창고를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인종, 종교 분규를 겪은 지 몇 해 지나지 않은 곳이기에 나의 행동은 조심스럽고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도네시아 버스는 승객이 모두 찰 때까지 터미널 주변을 몇 바퀴 씩 맴돈다고 한다. 인내심으로 버텼다면 버스는 결국 언젠가는 떠났을 것이다.
▲암본만 : 2차대전 중 일본 해군 남양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
시내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띤뚜이(Tintui) 지역 경찰서 부근에 영연방군 전쟁 묘지(Commonwealth War Cemetry)가 있다. 2차 대전 중 이 지역 전투에서 숨진 호주군과 영연방군 유해 674기가 있다. 전승자인 호주 연합군을 기린 묘지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패자인 일본군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일본군은 이 지역 전투에서만 2만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고 하지만 패배자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공항 근처 타위리(Tawiri) 마을에 1994년 일본 참전자들이 기념비를 건립해 해마다 가족들과 함께 방문해 전몰자들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호텔 근처 파티무라(Pattimura) 광장에 간다. 파티무라는 네덜란드에 대항한 몰루카 출신 독립 투쟁가로서 인도네시아의 영웅이다. 바로 길 건너에는 말루쿠 주청사가 있고 빅토리아 요새 터가 있다. 빅토리아(Victoria) 요새는 1575년 포르투갈이 건설하고 1602년 네덜란드가 점령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군부대의 병영 시설로 쓰이고 있는데 요새 일부가 남아서 옛날의 영욕을 말해 준다.
용맹한 전사 암본 사람들
암본 사람들은 곱슬머리, 검은 피부에 우락부락한 용모를 지녔지만 다리가 길고 체격이 커서 매우 용맹스러워 보인다. 바로 그 용맹성 때문에 암본 사람들은 식민지 시절에는 네덜란드의 편애를 독차지했지만 네덜란드가 물러난 후 이들이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과 차별 대우는 이들을 오랫동안 반독립주의자로 남게 했다. 심지어 자카르타와 인도네시아 재외 공관에 테러를 하는 등 늦게까지 신생 독립국 인도네시아 편입을 거부했다고 한다. 암본 인종 폭동도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 남방 불교문화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강군
인도네시아 군대는 지원제로서 병사들의 사기가 드높다. 간혹 맞부딪치는 눈빛에서는 번쩍거리는 살기마저 느껴진다. 지독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완전 군장에 구보 훈련을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동티모르 분리 독립 운동 중 행해진 인도네시아 군대의 잔혹 행위는 이처럼 강한 군기와도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분쟁 지역이 많은 만큼 실전 경험도 풍부한 인도네시아 군대는 강군(强軍)임에 틀림없다.
여기에도 선교사 하비에르의 흔적이
호텔 근처 파티무라 거리(Jalan Pattimura)를 산책했다. 그 거리에서 의외로 선교사 하비에르(Xavier)를 기념하는 성당을 비롯해 그와 관련한 시설을 여럿 발견했다. 이 깊은 곳까지 다녀간 하비에르는 도대체 교황에게서 무슨 임무를 부여받고 인도, 스리랑카에서 말레이 반도, 몰루카 제도, 그리고 일본까지 방대한 지역을 철환했는지 궁금해진다. 공교롭게도 이번 여행은 그의 흔적을 따라다니는 여행처럼 보인다. 말라카에 이어 이곳 몰루카 제도에서도 선교사 하비에르의 흔적을 발견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녁식사는 호텔 식당에서 중국식으로 했다. 거의 매 식사마다 빈탕(Bintang) 맥주가 빠지지 않았다. 향신료의 고향에서 먹는 음식이라서 그런지 볶음밥, 프라이드 치킨, 프라이드 누들이 일품이다. 여행일지를 정리하는 지금은 암본의 조용한 밤이다. 이 좁은 섬에서 각축한 수많은 동서양의 세력들, 그리고 그와 무관하게 수천 년 자기네 방식으로 삶을 이어온 암본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된다.
7일차 (암본 → 수라바야 → 발리 덴파사르)서구 열강 각축의 땅적도에 가까운 남반구의 여름 태양이 아침부터 작열한다. 오늘은 암본→수라바야(Surabaya) →덴파사르(Denpasaar)로 이동하는 긴 여정이 기다리기에 아침을 든든히 먹어 뒀다. 향료의 섬이라지만 더 이상 향료의 흔적은 없는 듯하다. 향료 주산지로서 몰루카 제도의 의미는 퇴색한 것이다. 범선이 퇴역하고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향료 집산지의 이점을 잃었지만 이 땅에서는 언제나 열강들이 격돌해 왔다. 포르투갈(1511년 도착), 네덜란드(1599년 도착)로 이어진 열강 각축의 역사는 20세기 중반 태평양 전쟁 시 일본과 호주를 주축으로 하는 연합국의 충돌로 절정을 이룬다. 아직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연이 서려 있을 섬을 떠나는 감회가 크다.
암본 사람들 용모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시장 한 복판에서 손님을 기다리느라 오래 쉬었다. 그 사이 시장통 사람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거리 풍경과 열악한 도시 기반, 그리고 사람들 생김새까지 마치 아프리카 어디쯤 와있는 느낌이다. 인근 파푸아 뉴기니 섬을 방문한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이 사람들의 생김새가 아프리카 적도 기니(Equatorial Guinea)와 비슷하다고 해서 뉴기니(New Guinea)라고 명명하지 않았는가? 이곳저곳을 몇 군데 더 들러 승객을 가득 채운 버스는 빠른 속도로 공항으로 달린다. 그러는 중에도 버스 기사는 사진 찍으라고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잠시 차를 대준다. 아까 서비스한 코카콜라 한 캔의 위력일 것이다.
▲Kota광장 자카르타 역사박물관 : 네덜란드식 콜로니얼 건물이 아직도 우아하다.
영웅의 도시 수라바야
암본 공항에서는 마침 인근 도서 지역을 향해 소형 프로펠러 항공기들이 분주히 들고 난다. 인도네시아의 항공기 생산 능력은 바로 그런 필요 때문에 얻어진 것이리라. 물론 도서 지역을 잇는 페리 서비스 네트워크도 방대하다. 지역 간 교통과 통신에 관한 한 인도네시아는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암본을 오후 1시에 이륙한 바타비아 항공기는 서쪽으로 한 시간 40분 비행 끝에 수라바야(Surabaya)에 도착했다. 표준시간은 다시 한 시간 뒤로 늦춰졌다. 수라바야는 저항, 역사, 투쟁, 영웅의 도시라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잠시 점령했던 일본군이 물러간 후 네덜란드가 350년 통치를 연장하고자 재점령을 시도할 때 감옥 봉기로 독립운동의 횃불을 당긴 곳이다. 인구 600만,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이다.
발리섬 덴파사르(Denpasaar)로 이동하는 일정 때문에 수라바야를 탐방할 시간이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마침 공항에서 푸두라야(Puduraya) 버스터미널로 가는 담리(Damri) 버스가 막 출발한다. 버스터미널에서 간단히 요기한 후 덴파사르행 버스를 기다린다. 푸두라야 터미널에서는 자바섬 전 지역으로 버스가 쉴 새 없이 떠난다. 버스 회사마다 제각기 멋을 낸 버스 도색과 외양이 매우 화려하다. 열대 사람들의 우수한 색감(色感)을 말해 준다. 암본 거리에 나부끼는 선거 포스터가 그랬고 이곳 터미널에 대기 중인 버스들이 그렇다.
버스 출발을 기다리며 앉아 있으려니 신문, 빵, 잡동사니, 음료 등을 파는 잡상인과 동냥 소년이 쉬지 않고 올라온다. 그래도 그냥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신문을 돌리는 모습은 애교스럽다. 사실 오래전 한국에서도 많이 봤던 풍경이다. 무슨 연유인지 설명도 없이 한 시간 50분 늦게 출발한 버스는 그러나 시설이 훌륭하다. 추울 정도로 강하게 틀어대는 에어컨 때문에 긴팔 재킷을 꺼내 입어야 했다. 승무원이 간식으로 도넛과 생수를 나눠 준다. 터미널을 벗어난 버스는 이내 고속도로에 오른다. 고속도로 연변으로는 동부 자바의 열대 평원이 드넓게 펼쳐진다. 고속도로에는 화물차들이 줄을 이어 지나간다. 수라바야는 인도네시아 최대의 항구 도시인 만큼 물동량이 많다.
8일차 (발리 덴파사르)
발리섬 가는 길새벽 2시 30분 버스는 발리섬을 마주 보는 바뉴왕이(Banyuwangi) 항구에 도착했다. 수라바야 출발 8시간 40분만이다. 버스 운전기사는 놀라운 솜씨를 발휘하며 후진으로 카페리 내 좁은 틈에 버스를 집어넣으니 다른 차량들과 좌우 간격이 10cm도 남지 않는다. 이미 차안에는 많은 트럭과 버스 등 대소형 차량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덩치 큰 대형 차량들이 빽빽이 배에 실린 모습이 장관이다. 배는 출항해 넓지 않은 해협을 건넌다. 부슬비가 내리는 갑판에서는 발리 가요가 애잔하게 들려 여행자의 감회를 적신다. 해협 양안의 불빛이 가물거리는 것을 보는 사이 30분 만에 배는 건너편 발리섬 길리마눅(Gilimanuk)항에 닿아 버스를 내려놓는다. 드디어 발리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곳 아닌가?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