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⑤]본토 내주고 건진 유물 65만점, 타이완서 중국 5천년 숨결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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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인도 여행<1/7>
인천-타이베이-방콕-인도 콜카타-(항공)-첸나이-(항공)-뭄바이-(항공) (델리 경유)-아그라-(열차)-자이푸르-(열차)-델리-(항공)-바라나시-(항공) (델리, 방콕, 홍콩 경유)-인천
1일차 (서울 → 타이베이)
인도 가는 길에 웬 타이완?
오전 9시 30분 타이베이를 향해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인도 가는 길에 엉뚱하게도 타이베이를 경유하게 된 것은 홍콩행 캐세이패시픽(Cathay Pacific) 항공의 타이베이 스톱오버가 무료이기 때문이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 여정을 한두 번 쯤 뒤트는 나의 여행 방식이 이번에도 적용된 것이다. 항공기는 2시간 20분을 날아 오전 10시 50분 타이베이 타이유안(桃園) 공항에 도착했다.
동남아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 때문에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지 못하던 타이완은 그러나 tvN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꽃보다 할배’에 소개되고 난 후 한국 관광객들이 넘쳐난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공항에서 33번 공항버스를 이용해 시내를 관통하니 타이베이역에 닿는다. 역 부근에 있는 숙소는 중저가 호텔이어서 지극히 단조롭지만 위치와 시설은 편리해서 두 밤 정도 지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민방위 훈련에 갇히다
타이베이 중심가는 서울 같은 번잡한 도시에서 느끼는 활기가 없어 보인다. 고궁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호텔 근처 지하철 시먼(西門)역으로 향하던 중 민방위훈련에 걸려 꼼짝없이 30분 갇혔다. 사실 이곳은 타이완해협 건너 강력한 적과 대치하고 있는 나라 아닌가. 양안(兩岸)관계가 개선되고 타이완-본토 직항로가 빈번히 열려 있는데도 이 정도라면 냉전시대에는 어땠을까 짐작이 간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타이베이
거리는 무척 깨끗해서 중국과 일본을 합쳐 놓은 것 같다. 타이베이 지하철은 홍콩 지하철처럼 이용이 매우 편리하다. 배차 간격이 짧고 환승이 편리하게 설계돼 있다. 시먼역에서 Blue Line을 타고 한 정거장, 타이베이역에서 Red Line으로 환승해 북쪽으로 향한다. 스린(士林)역에서 하차해 시내버스를 타면 고궁박물원에 닿는다. 타이베이의 대중교통은 완벽에 가깝다. 500타이완달러(약 1만7000원)를 주고 구입한 Easy Card가 타이베이현(臺北縣)내의 모든 버스와 지하철을 커버해 주니 편리하다.
고궁박물원
고궁박물원은 입장료 160타이완달러(약 6000원). 엄청난 전시 물량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몇 개월 주기로 전시물들을 바꾼다고 하는데 그래도 평생 다 볼 수 없는 방대한 분량이다. 특히 청동기와 철기 등 신석기 선사문화 유물과 명송청시대 도자기가 압권이다. 감상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지 못함에 안타까울 뿐이다.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1949년 본토를 내주고 타이완으로 건너오면서 가지고 나온 것들이다.
1925년 북경 자금성에 건립한 이후 고궁박물원은 1931년에는 중일전쟁을 피해 중국 내륙 곳곳에 소장물을 옮겨 놓았다가 1949년 국공내전에 패한 국민당 정부가 약 65만점에 달하는 유물을 타이완으로 이전했다. 처음에는 타이완 각 지역에 임시로 분산 수용했다가 1965년 현재 위치에 건물을 짓고 모두 한 곳에 모았다고 한다. 중국 사직의 정통 계승자는 타이완 망명 중화민국 정부라고 주장하려는 듯 5000년 역사의 값진 유물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다. 중국 본토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 던지는 안타깝고 부러운 눈길이 자주 눈에 띤다.
역사의 사연 얽힌 단수이
스린역으로 다시 나와서 Red Line 북쪽 종점인 단수이(淡水)역까지 올라갔다. 역 앞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골목들이 반긴다. 마침 기다리는 버스를 잡아타고 어인(漁人)부두(Fisherman’s Wharf)에 갔다.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임해(臨海)위락지구는 많은 산책객들로 북적인다. 넓은 만을 너머 멀리 보이는 단수이 시내가 소담하다. 야경이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타이완섬 최북단에서 동중국해, 아니 태평양을 바라보는 감회가 새롭다. 불과 100여 마일 타이완 해협 건너가 거대한 제국의 영토인 푸젠성(福建省)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산도밍고 요새
단수이역으로 되돌아오는 길, 작은 언덕에 있는 산도밍고 요새(Fort San Domingo, 紅馬城)가 이국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타이완(Formosa)에 진입한 스페인 사람들이 1629년에 처음 건설했고 훗날 이곳을 접수한 네덜란드인들이 재건축했다. 원래 나무로 지은 요새가 있었으나 스페인 통치 시절, 현지인들의 반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요새가 있던 자리에는 이후 붉은 색으로 치장한 건물이 세워졌고. 그 옆에는 1842년 아편전쟁 이후 1971년까지 영국 영사관저로 쓰인 건물이 서있다. 녹슨 대포 몇 문이 여기가 17세기 이후 대항해 시대 남중국해에서 동중국해로 통하는 관문을 놓고 열강들이 격돌한 전략 요충지였음을 말해 준다.
타이완사람 용모
간단치 않은 타이완의 역사를 말해 주듯 타이완사람들의 용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도서형 얼굴, 북방형 얼굴, 남방형 얼굴, 고산족 원주민, 그리고 드물게 서구 혼혈인까지. 남한 면적의 2/5, 경상남북도 만한 크기의 작은 나라라고 생각했던 타이완에 대한 인식이 깨지고 있다. 대륙을 잃은 설움을 상쇄하려는 듯 도시는 야무지고 깨끗하게 꾸며져 있다.
우리나라 도시 변두리의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거리, 난립한 노점상, 인도를 점령한 불법 적치물, 이런 것들이 타이베이에는 없는 것이 오히려 낯설다. 짧은 기간이지만 영국 간섭의 영향 때문인지 준법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또한 역력하다. 각종 위반에 대한 가혹한 수준의 벌금을 알리는 고지문이 그것을 말해 준다.
스린 야시장
단수이역에서 전철을 타고 스린역을 지나 지안탄(劍潭)역에 내리니 바로 앞이 유명한 스린 야시장이다. 스린 야시장에는 넓게 먹거리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아무데나 찾아 들어가 우육탕면과 뎀뿌라, 그리고 타이완맥주를 시켜 저녁으로 대신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과일과 채소, 생선, 악세사리와 잡동사니, 의류, 신발, 가방, 전자제품, 심지어 뱀탕까지 없는 것이 없다. 스린 야시장은 인파로 북적인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타이완 시민들에게 야시장은 소박하게 여름 주말 저녁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스린 야시장을 나와 지안탄역에서 Red Line을 타고 다시 남행, 타이베이역에서 Blue Line으로 환승해 동쪽 방향 시정부(市政府)역으로 향한다. 시정부지역은 현대식 건축물이 즐비한 신시가지다. 입장료가 무척 비싼 101층 빌딩은 그저 바깥에서 조망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시정부지역을 둘러보던 중 마침 륭싼스(龍山寺) 가는 버스가 있어서 얼른 올라타니 타이베이 시내를 골목골목 누비며 동서로 도시를 관통한다.
륭싼스 도착시각은 밤 9시, 그러나 아직 열려 있다. 10시까지 공개한다. 밤늦은 시각,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온갖 소원을 빈다. 륭싼스 인근에는 유명한 화시지에(華西街) 야시장이 있다. 타이완의 명물이라기에 굴전과 굴탕을 시식해 보았으나 무척 느끼하다. 문화체험이라 생각하고 먹는 데까지 먹어 보았다. 호텔로 돌아와 맥주 한 캔으로 여독을 달래며 잠자리에 든다. 화려하지 않은 호텔이지만 에어컨은 완벽하다. 너무 추워서 송풍구를 종이로 막아 놓고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2일차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호텔을 나와 타이베이역에서 지하철로 이동한 곳은 국립타이완대학교. 시내 남쪽에 자리잡은 캠퍼스가 고풍스럽다. 은근히 과학기술이 앞선 나라 아닌가? 타이완대학에서 지하철로 가까운 거리에 중정(中正)기념당이 있다. 국립예술원과 국립음악원, 그리고 자유광장과 함께 넓디넓은 콤플렉스 안에 자리잡은 중정기념당은 중화민국 대통령 장개석의 일대기를 전시한 곳이다.
1911년 신해혁명, 1928년 중국통일, 이어지는 항일전쟁과 국공내전(國共內戰), 그리고 1949년 타이완 망명까지 그의 치적과 영욕의 기록이다. 카이로 회담을 주도해 한국의 독립에 기여했고 2차대전 후 패전국 일본에 보복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에게 재기할 기회를 준 것을 그의 공로로 기록하고 있다. 중정기념당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마침 우익 한 무리가 시위를 하고 있다. 타이완 총통 마잉주(馬英九)의 대중국 우호정책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한국보다 훨씬 강한 이 나라에도 좌우익 갈등이 치열함을 보여 준다.
진과스 가는 길
중정기념당을 나와 시내버스로 중샤오푸싱(忠孝復興)역으로 이동, 1번 출구에서 기륭객운(基隆客運) 버스를 타고 뤠이팡(瑞芳), 지우펀(九份)을 경유, 진과스(金瓜石) 황금박물관으로 향한다. 타이베이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려 산길에 접어드니 풍광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한다. 오늘 날씨는 족히 섭씨 36∼37도쯤 될 것 같다. 한국에서는 살인적인 더위라고 법석을 떨었을 텐데 더위에 단련된 이곳 사람들은 무던히도 잘 견딘다.
진과스 지역은 과거 금광(金鑛)이 있던 지역이다. 깊은 골짜기와 산비탈을 구불구불 올라 버스는 황금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서구인들이 El Dorado, ‘Land of Gold’라고 그렸던 황금향(黃金鄕) 중 하나가 여기 아닐까 싶다. 1980년대까지 채광을 했으나 이제는 폐광이다. 금광을 노려 1642년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온 이후 네덜란드, 영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외국 세력들이 탐했던 곳이다.
지우펀의 황혼 무렵
진과스를 나와 지우펀(九份)으로 향하니 태평양 바다, 타이완섬의 동북쪽 동중국해가 펼쳐진다. 지우펀은 가파른 산언덕을 따라 좁고 길게 자리잡은 탄광촌이라서 풍광은 오히려 아름답다.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의 무대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마침 사위에 땅거미가 깔리면서 산언덕 아래 작은 어촌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하니 여행자는 까닭모를 여수(旅愁)에 젖는다.
버스로 뤠이팡(瑞芳)으로 나가 열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돌아오다. 낯선 곳에서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타이베이행 통근열차는 매우 쾌적하다. 타이베이역은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출입문이 나있다. 타이베이역도 그렇고 공항도 그렇고 중정기념당도 그렇듯이 타이완은 나라 면적은 작지만 건축물의 스케일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에 놀란다.
타이완 사람들타이완 사람들은 소박하고 검소하다. 정직해 보이고 자존심이 강해 보이기도 한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아직도 대륙을 꿈꾸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모이는 관광지도 소박하기 짝이 없다. 별 것도 아닌 음식을 먹으려고 긴 줄을 서고 규칙에 순응하는 것도 타이완 사람들의 성품을 드러낸다. 그 안에 섞여 함께 지낸 2박 3일이 이렇게 훌쩍 지나갔다.
관광입국
청일전쟁에 승리한 대가로 1895년 일본이 접수하면서 세계사의 무대에 얼굴을 내민 지 100년 조금 넘은 타이완에는 사실상 볼거리가 많지 않다. 북회귀선이 지나고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자연환경 이외에는 역사 유물도 없다. 그들이 볼거리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대부분 인위적인 것들이지만 타이완 정부는 관광입국을 부르짖는다. 평소 한국은 관광자원이 보잘 것 없는 나라라고 생각해 왔으나 타이완에 와보고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적어도 타이완에 비하면 5000년 역사를 가진 한국은 볼 것이 아주 많은 셈이다. 관광산업 투자와 인적, 물적 관광 인프라가 부족해 관광 방문국으로서의 가치를 살리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다. 관광산업에 관한 한 타이완에서 배울 것이 많아 보인다.
중국 초고속 성장으로 대박이 터진 타이완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타이완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최근 이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타이완은 IT, 에너지, 바이오, 관광 등 산업 다각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버텨내느라고 발버둥을 치는 중 맞은 중국 본토의 초고속 성장은 대박이 아닐 수 없다.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