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⑧]평생 빨래만 하는 사람‘놀라운 인도’

예수 12제자 도마의 무덤을 보다

  •  

cnbnews 제395-396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4.09.18 08:57:25

▲도비가트 모습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타이완 인도 여행<4/7>
인천 - 타이베이 - 방콕 - 인도 콜카타 -(항공)- 첸나이 -(항공)- 뭄바이 -(항공) (델리 경유)- 아그라 -(열차)- 자이푸르 -(열차)- 델리 -(항공)- 바라나시 -(항공) (델리, 방콕, 홍콩 경유)- 인천』


6일차 (첸나이)

예수 제자 도마의 포교와 순교

조지타운 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길고 긴 5km의 마리나 해변을 왼쪽으로 보며 산토메성당(St. Thomas Basilica)에 도착했다. 인도양 벵골만에 면한 성당 앞 해변은 휴일을 맞아 즐기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인다. 네오고딕 양식의 산토메성당은 1504년 건립, 1893년 재건축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 12제자의 무덤 중 세 개만이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 성당 안에 있는 것이다.

도마의 무덤을 인도 첸나이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마는 AD52년 인도에 와 포교활동을 하다가 AD72년에 순교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다가 예수의 현시(顯示)를 겪은 후 그의 복음을 전파하고 다녔던 도마가 순교한 자리에 성당이 세워진 것이다. 도마의 유해는 훗날 (AD 222) 일부가 에데사(Edessa, 현재 시리아)와 이태리 시칠리아 오르토나(Ortona)에 옮겨졌다고 한다.

1293년 마르코폴로는 이곳을 방문해 놀라운 치료모래(healing sand)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5세기에는 하비에르(Xavier) 신부가 방문했고 2000년에는 당시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방문했다. 해변 가까이 위치한 성당이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 일대에서 발생한 초대형 쓰나미에도 끄떡없었던 것을 이곳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오늘은 마침 성당에서 의식이 열리고 있다. 7월 3일 도마 순교일을 기려서 시작한 St. Thomas Day의 마지막 날인 것이다.

시내버스 여행

산토메에서 27D 버스를 타고 에그모아(Egmore)역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시내버스는 자유 여행자에게 참 훌륭한 교통수단이다. 요금이 저렴해 부담이 전혀 없고 현지인들의 체취를 접할 수 있고, 구불구불 이 거리 저 거리를 돌며 도시의 속살까지 훤히 보여주니 일석삼조이다. 시내버스 차창에 기대어 힌두교풍이 완연한 남인도 거리를 눈에 가득 담았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에그모아역을 카메라에 담고 28B 버스로 갈아타고 시내 외곽 모푸실종합버스터미널(Mofusil Bus Terminal, 이곳 사람들은 CMBT라고 부름)로 향하다. 현대식 시설을 가진 넓디넓은 터미널에서 마말라푸람(Mamallapuram)행 버스를 어렵게 찾아 출발을 기다린다.

IT Park

버스는 첸나이 외곽을 벗어나 남쪽으로 달린다. 마말라푸람까지 거리는 60km 남짓이지만 길이 좁고 차량이 낡아 거의 두 시간 걸린다. 첸나이 외곽은 도시 인프라와 각종 건물을 짓느라 곳곳이 공사판이다. 음침했던 콜카타와 무척 다른 모습이다. 이미 완성된 여러 건물들에는 Pay Pal, eBay, Accenture, Standard Chartered 은행 같은 낯익은 다국적 회사들의 CI가 걸려 있다. 여기가 바로 IT Park인 것이다. 심지어 도심에서 남쪽 IT Park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IT Expressway’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인도 성장 동력의 중요한 한 축을 첸나이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말라푸람 해변사원


마말라푸람 해변사원

낡은 버스의 요란한 엔진소리를 들으며 딱딱한 버스 의자에 앉아 두 시간을 힘들게 버텼다. 게다가 버스는 입추의 여지없이 승객을 태운다. 다행이 나는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만원버스 승객들에게 덜 시달리고 갔다. 마말라푸람 터미널에 도착하니 휴일을 맞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찾은, 혹은 해변을 즐기러 온 시민들로 몹시 북적이다.

7세기에 건립된 해변사원(Shore Temple)은 1300년의 세월을 바닷바람을 맞고도 잘 버텨냈다. 석조사원과 석굴사원 양식을 모두 가지고 있고 바닷가에 바로 붙어있지만 다행이 방풍림을 조성해 침식과 염해(鹽害)를 어느 정도는 막아냈다고 한다. 해변사원과 Five Rathas 두 곳을 합쳐 입장료가 250 루피(한화 약 6000원), 비싼 편이다. 인도 어디를 가도 내국인과 외국인 입장료를 다르게 책정하기 때문이다.

해변사원을 나와 오토릭샤를 타고 파이브라타스(Five Rathas)로 향했다. 각각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로 축조된 석굴사원이 다섯 개 모여 있다. 거대한 돌덩이를 깎아 사원을 다섯 개나 지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1300년 풍화를 견뎌낸 부조의 섬세함과 화려함에 감탄한다. 부조의 내용은 고대 이 지역을 통치한 왕의 치적에 관한 것이다. 마침 가는 안개비가 내려 부조위로 흘러내리니 석굴 사원 축조에 동원된 수백, 수천의 장인들의 땀방울이 맺히는 듯하다.

인근에는 또한 등대가 가장 멋진 위치에서 경관을 뽐내니 카메라를 꺼내 들지 않을 수 없다. 파이브라타스말고도 등대 주변에도 크고 작은 석굴 사원이 많이 있다. 바닷바람이 무척 시원한 마랄라푸람은 남인도의 여름 더위를 잊기에 충분하다. 시간이 촉박해 한적한 어촌의 낭만을 더는 즐기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첸나이행 버스에 오른다.

▲타지마할 호텔


오래 기억될 남인도 체험

마침 볼보 에어컨 버스가 출발 직전이라 무조건 올라탔다. 에어컨 버스는 일반 버스보다 요금이 3∼4배에 달하지만 그래봤자 마말라푸람에서 첸나이까지 60km 거리에 70루피(약 1800원)에 불과하다. 버스는 중앙선을 넘나들며 시원하게 달린다. 만원버스에 힘들게 서서가는 승객들이 단 몇 분이라도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좋게 해석해 준다. 말쑥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기사와 조수는 도로의 제왕인 양 공연히 우쭐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길을 막는 소와 몇 차례 눈치작전을 벌이며 달려온 버스에서 내린 곳은 시내 외곽 귄디(Guindy) 지역이다. 공항과 호텔은 모두 도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시내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물어물어 통근전철 귄디역을 찾아 한 정거장 가니 호텔 부근 역이다.

호텔식당에서 구운 닭과 만두수프로 요기한 후 지금 일기를 정리하고 있다. 사라센 양식이 가미된 멋진 공공건물들, 산토메성당, 마말라푸람 오가는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구성진 노랫가락, 그리고 곳곳에 산재한 힌두교 사원, 무지개색 옷을 차려입고 휴일 나들이 나온 남인도 여성들. 오래도록 기억될 남인도 체험이다.


7일차 (첸나이 → 뭄바이)

새벽 5시, 호텔에서 제공한 차량으로 첸나이 공항으로 이동해 뭄바이행 Air India 항공편을 기다린다. 매우 이른 시각이지만 이미 공항은 여행객들로 넘친다. 공항시설은 그럭저럭 괜찮으나 운영이 엉망이다. 안내방송이 불비하거나 게이트가 부족해 더욱 붐빈다. 게다가 항공기는 한 시간 연발하면서 게이트도 몇 번 바뀌었지만 안내 방송이 없어서 계속 긴장해야만 했다.

빈민가와 맞닿은 뭄바이 공항

뭄바이 공항에 내리기 위해서 항공기는 안데리(Andheri) 지역 상공을 낮게 날았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빈민지역이다. 공항 담장까지 바짝 붙어있는 빈민가 위로 번쩍거리는 항공기들이 연이어 착륙하는 모습은 이곳 빈민가를 소재로 했던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 Dog Millionaire)에서 봤던 풍경 아닌가? 농촌에 기근이 들 때마다 밀려들어오는 빈민들은 인도 뭄바이의 거대한 하층민을 형성하고 있다. 뭄바이 공항에는 오전 9시 40분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기내식이 훌륭했다.

▲산토메 성당


이제부터 문제는 시내까지 교통편이다. 출근시간도 지났으니 괜찮을 것 같아 통근 교외전철을 타기로 하고 오토릭샤로 Ville Park역까지 이동했다. 뭄바이 CST행 열차 일등석에 올랐지만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월요일 아침이라 더 그런 것 같다. 보통 칸은 승객들이 출입문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객차 지붕에까지 올라가 앉아 있다. 열차가 지나는 철로를 따라 빈민가가 끝없이 이어진다. 인도다운 풍경이다.

뭄바이 CST역(Chhatrapati Shivaji Terminus, 일명 Victoria Terminus)에 도착하니 오전 11시다. 예약해 놓은 호텔이 마침 걷는 거리에 있어서 체크인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호텔방은 기능적으로는 문제없으나 방이 좁고 창이 없어 밀실공포증마저 느끼게 한다. 일본 비즈니스호텔 정도의 크기를 생각하면 된다. 호텔비가 결코 싸지 않은 뭄바이에서 그래도 하루 미화 32달러에 몸을 누일 공간을 찾은 것과 편리한 호텔 위치로 위안 삼는다.

뭄바이의 멋진 콜로니얼 건축물들

호텔 바로 옆 현지 식당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가까운 지역부터 답사에 나섰다. CST 지역에는 두 개의 볼거리가 있다. 하나는 CST 역사(驛舍)이고 또 하나는 크로포드시장(Crawford Market)이다. CST 역사는 200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영국 식민지 건축물 중 압권이다.

1887년 건축된 이탈리아 고딕 양식의 중앙 돔과 크고 작은 돔이 어우러진 모습을 넋을 잃고 한참이나 바라봤다. 크로포드시장 건물 또한 일품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도저히 시장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우아한 유럽풍 건물이지만 내부는 여느 대형 재래시장과 다를 바 없다. 규모와 취급 상품의 다양성으로 보아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 같은 곳이리라 짐작된다.

뭄바이 테러

콜카타와 첸나이도 대도시였지만 뭄바이는 더욱 인구가 많다. 몇 백 년 된 콜로니얼 건물과 현대식 고층빌딩이 공존하는 곳,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메트로폴리탄이다. 인도 총 수입물량의 38%, 인도 전체 교역량의 50%가 뭄바이의 항만과 공항을 통해 이뤄진다. 화려한 글로벌 도시. 그러나 이면에는 심각한 빈부 격차, 카스트 문제, 종교 갈등 등 인도의 모든 고민이 담겨 있다. 2006년 7월 통근 전철 폭탄테러로 190명의 사망자를 내고, 2008년 11월 CST와 타지마할 호텔에서도 수 백 명 사망자를 낸 테러가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다. 그 도시 바로 그 현장에 있는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크로포드 시장


하지알리 무덤

도비가트(Dohby Ghat)가 위치한 마하락스미(Mahalaxmi) 지역에 가기 위해 경찰관에게 길을 물으니 124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인도 어디를 가도 자주 눈에 띠는 경찰관과 군인은 현지인들에게는 어떤 존재일지 모르겠으나 여행자인 나에게는 언제나 편하게 길을 물어 볼 수 있고 또한 공연히 의지가 되는 고마운 존재이다. 버스 차장은 도비가트가 멀지 않은 어느 정류장에 내려 준다.

도비가트 쪽으로 가려다 우연히 눈에 띤 것은 하지알리(Haji Ali)의 무덤이다. 하지알리 무덤은 길이 500미터에 달하는 제방 끝에 돌출해 있어서 멀리서 보면 그저 아라비아해 가운데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슬림 순교자의 무덤이어서 그런지 이슬람 복장의 시민들이 많다. 이곳 또한 바닷바람이 상쾌해서 시민들의 휴식처로 제격이다. 하지알리 무덤에서 보이는 해변도로 건너 저 멀리 북쪽 해변에는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휴대폰 분실

하지알리 무덤을 우연히 방문하게 된 것은 좋았으나 가는 길에 그만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낯선 타국에서 통신이 두절되는 것은 잠시 패닉을 주었다. 무심코 길에 떨어뜨렸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훔쳐간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일단 길거리에 흔한 국제전화 가게에서 집에 전화를 걸어 휴대폰 분실을 알리고 필요한 조치를 부탁했다. 이제 그럭저럭 인도에 익숙해졌다고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주의하라는 누군가의 배려로 받아들이고 냉정을 되찾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 여정을 이어갔다.

도비가트

하지알리 무덤 부근에서 택시를 타니 금세 마하락스미 교외전철역에 닿는다. 역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에 걸린 보행교 위에서 도비가트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수백, 수천 명의 도비왈라(빨래꾼?)들이 엄청난 물량의 세탁물을 손으로 빠는 모습은 애처로움을 넘어 장관에 가깝다. 도비가트 좀 더 깊숙이 혼자서 들어갈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먼발치서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될 것을 왜 저렇게 힘들여 손으로 빨래를 할까? 결론은 비용이다. 하급 노동자 인건비가 매우 싼 인도에서는 대형 세탁기를 수십, 수백 개 구입해서 운영하는 것보다 인력을 이용하는 것이 싸기 때문이다.

평생 빨래만 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도비왈라(Dhobi Wallah). 인도의 최하층 카스트 중 하나다. 인도의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도관광청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정말 ‘놀라운 인도’(Incredible India)가 아닐 수 없다.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성호 기자)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