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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패망한 알함브라궁 흙길을 부르튼 발로 터벅터벅 걷는 悲壯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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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3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03.26 09:07:5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9일차 (코르도바 → 그라나다)

스페인 시민들의 각박한 삶

스페인은 참 멋진 나라다. 그러나 인정 많고 친절한 시민들의 삶은 각박해 보인다. 한때 세계의 절반을 호령했던 대제국이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하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지면서 해외 영토를 거의 다 잃어버리고 산업화에도 실패해서 유럽의 변방으로 뒤쳐진 모습이 애처롭다. 코르도바 외곽에는 산업 시설 유치를 위해서 산업단지와 물류기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현대 하이테크 산업을 하루아침에 육성 발전시킬 수 있는가? 명랑하고 쾌활한 스페인 청년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안은 채 식당, 주차, 운전, 청소, 박물관 안내 등 임시직에 종사하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럽다.

서안해양성 기후의 축복

여기는 북위 38도쯤 되는 지역이지만 겨울 날씨가 서울보다 훨씬 따뜻하다. 해양성 기후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나도 그 덕에 겨울철 여행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여름 더위를 생각하면 지중해, 남유럽, 북아프리카 지역은 오히려 겨울이 여행의 적기인 것 같다. 그라나다 가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복 2차선의 구불구불한 도로다. 파도처럼 펼쳐지는 초원을 가로질러 버스는 달린다. 버스는 가는 길에 몇 군데 시골 마을에 들러 승객을 태운다. 시골 마을은 겉으로는 예쁘지만 거리에는 온통 노인들만 어슬렁거린다. 한국 여느 중소도시와 같다.

▲스페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알함브라 궁전. 사진 = 김현주

대박이 터진 1492년

그라나다가 가까워지면서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의 연봉이 가까이 보인다. 산악 지대인 그라나다는 척박한 땅이다. 1236년 코르도바를 잃은 이슬람 유세프 왕이 도망쳐 나와 나스리 왕조를 세우고 1492년 라 콩키스타(La Conquista), 즉 이베리아 반도에서 기독교도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해까지 256년 버틴 곳이다. 같은 해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으니까 스페인으로서는 대박이 터진 해였다.

우리는 오늘날 스페인의 이슬람 축출만 기억하지만 스스로 여기를 내주고 북아프리카로 떠난 나스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의 마음도 헤아려 본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를 위해 기록되는 것이니 어찌 하리…. 그래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애절한가 보다. 역사의 굴곡을 느끼며 여행자는 상념에 젖는다. 사실 서구인들은 피레네 산맥 이남을 유럽이라고 하지 않는다지만 유럽 최남부 전선에서 기독교 문명을 지켜낸 것이 스페인 아닌가?

732년 프랑스 남부 투르 프와티에 전투(스페인에서 쳐들어간 이슬람 군에게 프랑크 군이 승리한 전투)에서 프랑크 왕국 군대가 졌더라면 오늘날 세계 역사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유럽은 운 좋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리스가 주역이었던 몇 차례 해전을 비롯해 1241년 몽골군의 서유럽 진격도 같은 맥락에서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폴란드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간 몽골의 바투 원정군이 갑자기 회군한 것은 오코타이칸의 사망으로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그 틈을 노려 한 자리 하고 싶었던 원정군 대장의 권력욕 때문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콜롬부스 기념비가 서있는 모습. 사진 = 김현주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호텔이 있는 그란비아로 향했다. 오늘 내가 묵을 곳은 ‘오스탈’이라고 불리는 개인(가족) 경영 작은 호텔이다. 내국인 상대의 호텔이라서 그런지 TV에는 스페인어 채널만 나온다. 호텔 앞 거리에 나가 내일 새벽 공항행 버스 승차 지점과 시간을 확인한 후 알함브라로 간다. 시내에서 30번(혹은 32번) 소형버스가 다닌다.

어울리지 않는 카를로스 궁전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나스리 왕조 번영기였던 13세기 중반 짓기 시작했다. 아랍 궁전이 있는 바로 옆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카를로스 5세의 궁전이 전혀 조화롭지 않은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다. 카를로스 궁전은 이슬람 건축물에 대항하기 위해 16세기 중후반에 건축됐다. 스페인 르네상스의 중심이라고 평가받지만 전혀 알함브라에 비할 바 아니다.

말로만 들어왔던 알함브라 궁전을 관람한 것은 영광이고 감격이었다. 아랍문자가 새겨진 돌 장식, 타일과 아치 창문, 기둥과 연못과 정원….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아름답다. 기독교(가톨릭) 정복자들은 알함브라 궁전의 이슬람 서적은 모두 불태웠으나 궁전만큼은 너무 아름다워 파괴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함브라 궁전을 나와 만난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덮힌 연봉들. 사진 = 김현주

알함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정원

왕궁을 나와 성채 망루에 오르니 멀리 남쪽으로 시에라네바다의 눈 덮인 연봉이 보인다. 멀찌감치 계곡 건너편에는 알바이신 지구 사크로몬테 언덕의 집들이 하얀 띠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 장면까지 보태어 알함브라 궁전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이어서 5분 정도 걸어서 이슬람 왕의 휴식 공간인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갔다. 왕궁의 하렘(harem, 여성들의 거소)으로 왕 이외에는 여자와 환관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리석 기둥 124개와 기둥 윗면 장식, 그리고 마당 가운데 분수가 보태어 만들어낸 전체 모습은 환상적이다.  

버스를 타고 언덕 아래 시내로 내려가 그란비아에 있는 엘비라문으로 갔다. 근처 카페에서 치즈 샌드위치 두 개로 저녁을 먹었다. 카페 액자에 세계 각국 지폐를 모아 둔 걸 보고 마침 가지고 있던 1000원 짜리 지폐 한 장을 선물로 줬다. 카페의 젊은 주인은 온전히 백인 얼굴을 하고 있어서 당연히 스페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물어 보니 시리아 사람이란다. 여기는 역시 알바이신 아랍 지구 맞다.

호기심 가는 알바이신 아랍 지구

알바이신 지구 또한 호기심 가는 곳이다. 그저께는 세비야 산타크루즈 골목, 어제는 코르도바의 라후데리아 유대인 골목, 오늘은 그라나다 알바이신 아랍 골목…. 연일 미로 탐험이다. 미로로 얽힌 자갈 깔린 골목길을 오르다 보니 골짜기 건너편으로 알함브라 궁전이 조명을 밝히고 있다. 사크로몬테까지 온 것이다.

▲그라나다 알바이신 지구 전경. 사진 = 김현주

사크로몬테 집시 언덕의 정취

산언덕에는 집시들이 사는 동굴이 보인다. 가파른 언덕을 기어코 올라 동굴 주거지 앞까지 갔다. 노랫소리, 기타소리, 개짓는 소리, 나를 보고 경계하는 검은 고양이, 그리고 계곡을 스치는 을씨년스런 바람까지…. 캐스터네츠에 붉은 장미를 입에 물고 플라맹고를 추는 집시 여인이 문을 열고나올 것만 같은 야릇한 광경이다. 멀리 그라나다 도시의 불빛과 여기 남루한 집시들의 동굴 주거지 풍경이 교차한다.

이미 오른쪽 발바닥이 부르트고 있지만 걷는 것 말고는 그란비아에 있는 호텔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걷기에 불편한 자갈포장 골목길을 걸어서 내려오다 보니 시골 이발소와 만물상, 케밥 음식점, 채소과일 가게, 이런 것들이 알바이신 아랍 골목의 정취를 더해 준다.

이렇게 여행 19일째의 밤이 저문다. 이제 여행이 열흘 남짓 남았다. 연일 이어지는 이동 때문에 힘들지만 매일 만나는 신천지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이 나이에도 아직 배우고 익히며 채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호텔에 들어오기 전 알함브라 맥주와 도리토스 나쵸 스낵을 사들고 와 혼자 파티를 했다.

20일차 (그라나다 → 바르셀로나)

▲넓고 쾌적한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 사진 = 김현주

부유한 도시 바르셀로나

부엘링 항공기는 그라나다 출발 1시간 20분 후인 오전 10시 30분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올림픽을 치른 도시답게 공항이 넓고 쾌적하다. A1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 카탈루냐 광장으로 간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제2의 도시로 인구 200만 명, 스페인 총생산의 20%를 담당하는 부유한 도시다. 피카소와 가우디를 배출한 도시이기도 하다.

개방적인 나라 스페인

넓은 광장에는 노인들이 앉아 볕을 쬐고 있고 그 사이로 집시들이 구걸하러 다닌다. 비둘기가 가득한 광장을 가로질러 유치원 아이들이 한 무리 지나간다. 바르셀로나는 우아한 도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섞어 놓은 느낌이다. 공공시설에는 카탈루냐어를 먼저 쓰고 스페인어와 영어를 그 아래에 병기해 놓았다.

스페인 전체가 그렇지만 여기는 이민족에 대해 훨씬 더 개방적이다. 수많은 인종이 섞여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미국 뉴욕에 버금간다. 과거 전 세계에 걸친 대제국을 거느렸던 나라답다. 스페인에서는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이 거리에서 포옹하거나 키스하는 모습도 쉽게 본다. 인종 문제에 대해서 개방적인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다.

▲1882년에 건축을 시작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앞으로 100~20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사진 = 김현주

이민자가 넘치는 바르셀로나

식당에서 경비를 하는 남성에게 다가가 물어 봤다. 짐작대로 이 나라 출신이 아니라 볼리비아 출신이다.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키 작은 여성은 필리핀 출신이다. 볼리비아 남성은 자기 모국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는 카탈루냐어와 비슷해서 마드리드보다는 여기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도시는 과거 스페인 식민지였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이민처가 된 것이다.

건축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호텔에 여장을 풀고 도시 탐험에 나선다. 오늘은 상대적으로 먼 곳, 내일은 호텔에서 가까운 고딕 지구를 도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메트로에 나가 표를 산다. 여기는 10회권, 1일권, 2일권, 3일권 등 승차권 선택폭이 넓다. 먼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가족 교회)를 찾아갔다. 지하철 역과 붙어 있는 가족 교회는 1882년에 건축을 시작했고 1891년부터 가우디가 건축에 참여했다. 아직도 건축 중인데 앞으로 100∼20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170m 높이의 중앙탑과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140m 탑을 건축하느라 타워크레인이 움직인다.

메트로를 타고 에스파냐 광장으로 갔다. 몬주익 언덕, 국립 미술관 및 각종 주요 박물관,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올라가는 초입이다. 광장 주위에 있는 건축물 중에는 예사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 광장 한 켠으로는 투우경기장이 있는데 세비야에서 봤던 것보다 규모는 더 큰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스페인 민속촌으로 먼저 갔다(입장료 8.9유로). 1929년 국제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조성한 것으로 스페인 여러 지역의 고유 건축물들을 재현해 놓았다.
몬주익 언덕을 오르다

▲이슬람왕의 휴식 공간이었던 헤네랄리페 정원. 왕 이외 여자와 환관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올림픽 스타디움에 이르는 몬주익 언덕은 완만하지만 길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가 마지막 숨 가쁜 스퍼트를 올린 바로 그 언덕이다. 몬주익은 카탈루냐어로 ‘유대인들의 언덕’이라는 뜻이지만 유대인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1492년 국토 회복 이후 유대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추방돼 대거 발칸반도로 옮겨갔다. 올림픽 경기장은 원래 1936년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건설했으나 스페인 내전으로 무산되고 1992년에야 올림픽 개최의 꿈을 이뤘다.

몬주익 공원 버스 종점에서 한참 더 올라가니 해발 214m 정상에 성채가 있다. 사방으로 도시 저녁 풍경이 들어온다. 바로 아래 지중해에서 찰랑이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성채 옆에는 대포 2문이 바다를 향해 서 있고 아래 항구에는 거대한 컨테이너 야적장, 그리고 크루즈 몇 척이 보인다. 연이은 강행군에 몸은 지쳤지만 지중해 서쪽 해안을 조망하는 감회가 크다. 이스탄불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 아테네에서, 나폴리에서, 그리고 그 한복판 몰타까지 지중해를 전 방향에서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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