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 끝에 위치한 카보다호카. 절벽 아래로 넘실거리는 대서양의 파도를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신트라 왕궁의 모습. 신트라는 도시 존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19세기 초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에덴동산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사진 = 김현주 ▲바스쿠 다 가마가 항해를 시작한 곳에 위치한 발견기념비. 바로 앞 광장에는 옛 해양제국 시절 일본 나가사키부터 남미 대륙까지 그들이 상륙하거나 통치했던 세계 각 지역을 담은 대리석 세계지도가 깔려 있다. 사진 = 김현주▲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1일차 (스페인 바르셀로나 → 포르투갈 리스본)
호텔 바로 근처는 고딕 지구다. 고딕 지구 중심에는 노바 광장이 있고 대성당이 있다. 1448년 완공했으니 560년 된 고색창연한 성당은 보수 공사 중이다. 시내에는 조그만 카지노가 드문드문 있어 호기심에 들여다보지만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없다. 고딕 지구에는 좁은 골목을 두고 아주 오래된 7∼8층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어둠침침하다. 하얀 집에 햇살이 쏟아지는 안달루시아 골목과는 완전히 다르다.
재주 많은 네팔 남성
골목을 나오니 레이알 광장, 그리고 람블라스 거리다. 거리에는 하루벌이를 시작하는 거리예술가, 판토마이머, 연기자들이 이미 분주하다. 거리에서 ‘하리’라는 네팔 남성이 한국말로 인사해온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일한단다. 한국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 이곳에는 일자리 기회를 알아보러 온 것 같다. 한국에도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나라 국민이라는 이유로 용모와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그가 안타까워 보인다. 그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 준다.
아침을 여는 산호세 시장은 생동감 넘친다. 부산 자갈치 시장과 흡사하다. 채소, 과일, 생선, 육류 등 별별 먹을거리가 다 있다. 람블라스 거리 남쪽 끝 항구와 닿은 광장에는 콜럼버스 기념비가 아주 높이 서 있다. 미 대륙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1888년 만국박람회 때 세운 것이다. 기념비 꼭대기에 서있는 콜럼버스의 손가락 끝은 지중해가 대서양과 만나는 남서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1박 2일(정확하게 30시간)이 꽉 차게 지나갔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A2 공항버스로 공항에 도착해 포르투갈 리스본행 이지젯 항공기를 기다린다. 항공기는 1시간 35분 비행 끝에 포르투갈 시각 오후 6시 40분 리스본에 도착했다. 테주강을 따라 도시가 펼쳐진다. 어귀가 넓은 테주강은 대서양까지 훤히 열려 있다. 날씨는 바르셀로나보다 더 따뜻한 것 같다. 리스본은 언덕과 광장이 많고 광장 가운데에는 어김없이 누군가의 동상이 있다.
22일차 (리스본)
신트라와 카보다호카(호카곶, Cabo da Roca)를 모두 볼 욕심으로 새벽에 일어났다. 호텔 근처에 기차역이 있어 여유롭게 갔으나 표를 파는 사람이 없다. 자판기는 지폐를 소화하지 못한다. 수도 포르투갈하고도 중앙역인데 오전 7시에 매표원이 없다. 이해가 잘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시민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스페인 혹은 이탈리아와 달리 포르투갈에는 흑인이 많고 거리에서는 흑백 혼성 커플도 많이 보인다. 인종 간 결혼에 개방적이라는 뜻이다. 포르투갈은 1975년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해외 식민지를 포기할 때까지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와 폴리네시아의 동티모르를 통치했고, 마카오는 1999년까지 통치했다. 포르투갈이 과거 영토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해양박물관 입구의 대형 지도, 테주강가 발견기념비 앞 세계 지도에도 그랬고 심지어 TV 기상예보도 그렇다. 세계 날씨를 소개할 때는 딜리(동티모르), 마카오, 루안다(앙골라) 같은 곳을 모두 짚고 넘어간다.
마법의 성 신트라
우여곡절 끝에 표를 구해 신트라행 교외 통근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도시를 벗어나 40분 만에 산중 전원 마을에 도착한다. 신트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9세기 초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에덴동산이라고 극찬한 이유를 와보니 알 것 같다.
너무 이른 시각(오전 8시)이어서 박물관 관람은 포기하고 도시를 걸으며 사진 몇 장 남기기로 했다. 첨탑 문양이 예사롭지 않은 시 청사가 눈에 들어오더니 이윽고 야릇한 건물이 나타난다. 왕궁의 대형 원추형 굴뚝이 매우 인상적이다. 왕의 사냥물을 요리하던 부엌의 굴뚝에 불과하지만 마법의 성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트라는 도시 전체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동화책 도시 같다.
역으로 돌아가 카스카이스행 403번 버스를 탄다. 중간 경유지인 카보다호카까지 40분 남짓 걸린다. 버스 안에는 등교하는 학생들이 재잘거린다. 스쿨버스가 없어 등하교는 물론이고 견학 갈 때 학생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자주 본다. 버스는 그림 같은 시골 마을들을 무수히 지나 카보다호카에 도착했다. 절벽 아래로 대서양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유라시아 대륙 최서단이다.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포르투갈이 해양제국으로 융성했던 16세기에 활동한 민족시인 카몽이스의 시 구절 일부를 담은 시비와 등대가 있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Aqui ondea terra se acaba e o mar começa).’ 저 넓은 대양에 도전한 유럽인들은 결국 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는가? 대서양을 만난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도 유럽 대륙 최서단에서…. 북위 38.49도, 동경 9.30도, 해발 140m 지점이다. 도시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바닷바람에 떨던 몸을 녹여 준다.
▲16세기 초반 항국 방어를 위해 건립된 벨렝탑은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선박을 배웅하고 마중했던 곳이다. 사진 = 김현주
▲16세기 건축물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뾰족하면서도 둥근 탑이 묘한 모습을 띄고 있다. 사진 = 김현주
▲리스본에서 운 좋게 마주한 28번 전차. 가파른 내리막길을 엉금엉금 기어서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 김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