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봄이 온다는 꽃소식에 모두들 들뜬 마음이다. 어딘가 훌쩍 떠나 붉게 물든 동백섬이나 진달래, 철쭉이 흐드러진 산등성을 걷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시절을 배고픔으로 신음해야 했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봄은 잔인한 계절이었다. 지난 가을 수확한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알이 영글기까지 먹을 게 별로 없는 배고픈 시기였다. 넘기 어려운 보릿고개였다. 지금 우리는 그때를 거의 잊어가고 있지만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일 년 중 지금이 가장 어려운 때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우리의 식생활 태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공급되는 식량의 1/3이 버려진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이 가정에서 버려지는 음식이라고 한다. 대용량 판매로 값싸게 팔리는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구입하여 냉장고에 쌓아 두었다가 버리는 음식이 도를 넘고 있다. 가정이나 식당의 먹고 난 밥상에서 음식 쓰레기를 수북이 걷어내는 것은 이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국내 생산으로는 필요한 식량의 절반도 생산하지 못하고 곡물의 3/4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래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6.25 동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우유를 먹지 않는 민족에서 우유를 먹는 민족으로 바뀌었다. 극심한 기아선상에서 미국이 원조한 탈지분유를 물에 타서 끓인 우유죽이 유일한 먹을 거리였으므로, 먹고 설사를 하면서도 우유죽을 매일 먹었다. 우리 국민의 80% 이상이 선천적으로 우유에 들어 있는 젖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으나 전쟁 중에 우유죽을 계속 먹다보니 젖당을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쟁의 특수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전후 가장 빨리 성장한 식품산업이 밀가루와 우유를 이용해 만드는 빵과 과자 제조업이었다. 6.25 동란은 이렇게 우리의 식습관을 크게 바꿔놓은 배고픔의 역사였다.
버리는 음식 처리비용만 9천억원.
아낀 음식으로 북한 도와 통일 앞당기자
식품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1980년 이후 5년 동안 한국인의 식생활은 크게 변해 일인당 1일 동물성식품 섭취량이 98g에서 183g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국민의료보험의 진료 건수가 1.8배 증가한 반면 당뇨병 환자 수는 5.3배, 암 환자 2.3배, 고혈압 환자 2.6배, 심장병 환자 수는 3.3배 늘어났다. 보릿고개에서 못 먹었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기름진 음식을 포식한 결과로 비만과 성인병의 만연이 사회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