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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아티스트 - 강영길]물에 빠진 우리가 기다리는 ‘고도’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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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28호 박춘호 문학박사⁄ 2015.04.28 09:11:35

▲강영길 작가.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박춘호 문학박사) 강영길은 이번에 전시(가나 컨템포러리, 4월 23일~5월 3일)하는 사진들을 약 11년 전부터 찍어왔다. 그런데 그는 이 연작들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다. 첫 작품을 찍을 당시 그는 광고 사진 찍을 장소를 물색하러 선배와 함께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잠시 짬이 나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게 됐다. 강렬한 햇빛 아래서 선배가 붉은 트렁크 수영복을 입고 파란 타일의 풀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본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기 시작했다. 휴식 중임에도 사진가로서 그의 직업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그때 그는 강렬한 색의 대비로 인해 초현실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는 분명히 직관적인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그림이든 사진이든,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들의 공통점은, 작품이 완성되는 데 논리보다는 직관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련의 수영장 연작을 찍었지만 다른 작업들(‘바다’와 ‘대나무’)에 집중하며 상대적으로 이 작업에는 덜 집중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이 ‘고도’ 연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중략)

▲‘깊은 침묵(Deep Silence)’, 피그먼트 프린트-디아섹, 140 x 193cm, 2014

이번 전시 작품 제목인 ‘고도’는 연극으로 잘 알려진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비롯됐다. 누구나 다 알겠지만 극중에서 기다리는 고도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하는 배우의 수도 4명에 불과하며, 무대 소품도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 특이한 연극이다.(중략)

강영길이 ‘고도’ 연작을 제작하며 쓴 단상이다. “나는 이 시대를 무엇인가 채우고 이룰수록 정신적으로 허무해져 가는 상실의 시대로 보고, 불안정하고 무의미한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단상을 통해, 동시대인의 삶의 의미를 묻고자, 삶을 물속이라는 상황으로 설정하고, 물속에서 저항하는 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문명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거대한 고독과 상실을 상징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도(Godot)’, 피그먼트 프린트-디아섹, 120 x 180cm, 2007

이 글에 따르면 이번 전시 작품의 말하기는 전형적인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에 좀 더 집중하며 살펴봐야 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알레고리의 어원이 ‘다르게 말하기’이기 때문이다.

잠시 이 시대를 살펴보자. 우리는 소비 사회에 살고 있다. 소비 사회는 상품들로 넘쳐난다. 각각의 상품은 미지의 구매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상품은 소비될 때만 상품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그래서 상품 생산자에게 가장 커다란 관심은 수요 창출이다. 자신이 생산한 상품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관심한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해 그들이 소비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소비자에게 당장 필요 없는 것임에도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은 그러지 못하는 사람과 확연히 구별됨으로써 특별한 부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고도(Godot),’ 피그먼트 프린트-디아섹, 130 x 193cm, 2014

결국 소비자는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생산자의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소비 욕구는 ‘자발적 욕구’라기보다는 ‘조장된 욕구’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런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조장하기 위해 생산자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바로 광고다. 그래서 소비 시대의 최고의 시각예술 장르는 광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찾아나서야 되는 것 아닐까?

강영길은 과거 광고계에 몸담아 왔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잘 나가는 사진가였다. 그러던 그가 광고계를 떠났다. 창작자와 마케팅 담당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가 창작을 위해, 그러니까 현실이 아닌 이상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광고인으로 활동했기에 창작자로서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이다. 그를 보면 그 뚝심과 감성으로 인해 베네통 광고 사진으로 유명한 올리비에 로토스카니가 떠오른다.

▲‘고도(Godot)’, 피그먼트 프린트-디아섹, 130 x 193cm, 2014

강영길은 이 연작의 첫 작품인 선배의 수영하는 모습을 클로즈업해 찍은 작품 제목을 ‘찬란한 슬픔’이라 했다. 슬픔이 찬란하다니 매우 역설적이다. 매우 높은 채도로 인해 파란물 위에 빨간 수영복은 과도하게 부각된다. 특히 일렁이는 물결로 인해 전체적인 이미지는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진 속 수영복을 입은 인물은 점차 양복을 입거나 캐주얼한 옷을 입은 사람들로 대체됐다. 이는 수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일상이라는 보편 상황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제목 또한 ‘찬란한 슬픔’에서 ‘α를 향해서 가는 존재의 슬픔’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고도’로 바뀌었으며, 최근작은 부제를 붙여  ‘고도 - 깊은 침묵’이 됐다. 이런 변화는 11년간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의 생각이 점점 더 정리돼 나갔음을 보여준다.

▲‘고도(Godot)’, 피그먼트 프린트-디아섹, 120 x 180cm, 2008

사람을 찍기는 했으나 물속에서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며 생기는 물결과 그들이 내뿜는 공기로 인해 사진에 등장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얼굴을 식별할 수가 없다. 이는 사진 속 인물이 특정인이 아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한 무리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으로 인해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유채색으로 인화한 작품들은 물 색깔로 인해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붉은색이 첨가돼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붉은 천을 사용한 작품은 강렬한 색채 대비로 인해 더욱 처절해 보인다. 이렇게 강렬한 색조와 명암의 대비가 돋보이는 유채색 작품과 함께 그는 무채색의 작품을 선보인다. 무채색, 즉 회색의 의미는 대상을 객관화시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탈색했기 때문이다. 한편 흑백으로 출력된 작품은 마치 현대적인 추상화된 수묵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강영길은 삶을 물속이라는 상황으로 상정해 수영장에서 이 작품들을 촬영했다. 인간은 물속에서 삶이 있었다. 인간은 생명체로서 최초 열 달을 물속에서 산다. 엄마의 자궁 양수 속에서 한없이 편하게 살다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물속에서는 익사하고 마는 존재가 된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사진 속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처음 열 달을 살던 곳, 즉 인간이 시원인 물속에서 절대로 생존할 수 없는 변이된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것 같이 보인다.(중략)

▲‘고도(Godot)’, 피그먼트 프린트-디아섹, 130 x 193cm, 2015

이 작품들을 살펴보며 그가 생각하는 ‘고도’가 과연 누구일지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는 넘치는 정보와 광고의 홍수 속에 산다. 정보도 산업화되며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선정적인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정작 정보가 판단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혼란만 야기 시키기도 한다. 광고는 또한 어떠한가. 진실이 감춰진 광고에 마취돼, 우리는 광고에 의해 교육 받은 대로 판단하며 결정하는 좀비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본다. 점점 우리들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며 누구를 기다려야하는가?

다시 한 번 묻는다. 과연 고도는 누구일까? 왜 그는 그렇게 오지 않는 것일까?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찾아나서야 되는 것이 아닐까? 기다림이 소극적이라면 찾아나서는 것은 적극적인 것이다. 극중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기약도 없이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 그러다 한평생이 다 갈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 평생 찾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는 용기를 내어 찾아 나서야 된다. 그리고 우리는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고도야 기다려라! 내가 너를 찾아간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유한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험하게 살아야만 한다.(중략)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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