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남 건강 칼럼 - 지주막하출혈]머릿속 시한폭탄, 조기발견이 중요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황성남 중앙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 자발성 뇌출혈은 외상이 아니라 본인이 가진 질환에 의해 뇌출혈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중 가장 많은 것이 고혈압성 뇌출혈이며 그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뇌동맥류가 터져 발생하는 지주막하출혈이다.
1813년 처음 보고된 20세 여자 환자 기록을 보면 그녀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격심한 두통과 구토, 설사 증세를 경험했으며, 두통의 양상은 머릿속에서 두피 바깥으로 무엇이 솟아 올라오는 듯 했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 뇌동맥류로 밝혀졌다. 이후 100년이 훨씬 지난 1927년 포르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츠가 창안한 뇌혈관조영술에 의해 뇌동맥류를 진단하게 되기까지 사람들에게 뇌동맥류는 진단이 불가능한 질환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CT혈관조영술, MR혈관조영술 기법이 도입돼 뇌동맥류를 외래에서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이전까지 출혈을 일으킨 뇌동맥류 환자만이 치료를 받았던 것과 비교해 엄청난 발전이었다.
뇌동맥류는 뇌동맥 일부분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혈관 질환이다. 혈관벽이 약해진 동맥류가 터지면 뇌척수액이 흐르는 지주막과 뇌 사이 지주막하공간에 높은 동맥압의 혈액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지주막하출혈이라고 부른다.
순간적으로 두개강 내압이 올라 뇌혈류가 저하되고 뇌세포들은 산소 부족으로 괴사를 일으켜 환자는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하면 앞서 말했듯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격심한 두통과 구토, 뒷목이 뻣뻣해지는 경부경직이 발생하며 의식저하가 동반되기도 한다.
1970년대 말까지 뇌동맥류 파열 환자를 치료해야 했던 신경외과 의사들에게 뇌동맥류는 악몽이었으며, CT 검사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지주막하출혈인지 다른 원인의 출혈인지의 감별마저도 어려웠다.
▲52세 남성 환자의 뇌MRA 사진. 이 환자는 매우 건강한 상태로 지내다가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해 식물인간이 됐다. 동맥류를 미리 발견해 치료했다면 건강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뇌혈관조영술로 뇌동맥류가 확인돼 두개골을 열고 들어가 보면 검게 피로 뒤덮인 뇌가 부풀어 올라 환부에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이 때문에 2주 정도를 기다렸다가 수술을 했는데, 기다리는 동안에 재출혈을 해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술도 뇌동맥류를 직접 결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동맥류가 있는 모혈관을 결찰하는 간접 치료를 했기 때문에 예후는 매우 좋지 않았다.
1980년대에 들어와 수술 현미경과 수술 기법의 발달로 동맥류 수술은 절정을 이루고, 전체 지주막하출혈 환자의 사망률을 50% 정도로 낮춰졌다. 그러나 여전히 뇌동맥류 파열은 생과 사를 가르는 무서운 질환이어서 뇌동맥류는 시한폭탄에 비유됐다. 뇌동맥류로 진단받은 환자들은 머릿속에 시한폭탄이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던 중 1998년 미국, 캐나다, 유럽의 53개 센터가 참여한 비파열 동맥류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그 중 핵심 내용은 지주막하출혈 병력이 없는 사람에서 크기가 10mm 미만의 뇌동맥류인 경우 파열률은 연 0.05% 미만이라는 것, 즉 거의 파열될 위험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 연구결과에 대한 큰 비판과 이를 수정한 재보고가 있었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지주막하출혈 환자의 뇌동맥류 크기가 4~10mm인 점으로 미루어 보면, 동양 사람들은 이보다 파열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연 파열률이 6%까지 보고된 바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정도 크기의 연 파열률은 1~3% 정도로 알려졌다.
▲68세 여성 환자의 뇌MRA 사진. 가벼운 두통으로 외래에 내원해 검사한 결과, 뇌동맥류가 발견됐다. 코일색전술을 받아 완치됐다. 이 동맥류는 터질 위험이 매우 높아 모르고 지냈더라면 머지않아 불행한 결과가 초래됐을 것이다.
이후 뇌동맥류를 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즉 모든 뇌동맥류가 시한폭탄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한폭탄은 타이머와 기폭장치가 있어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터진다. 그러나 뇌동맥류는 시한폭탄과 달리 모두 터지지는 않는다.
어떤 부위의 동맥류는 터질 위험이 매우 낮고, 어떤 부위의 동맥류는 터질 위험이 높다. 크기가 아주 작은 동맥류는 터질 위험이 매우 낮다. 결국 우연히 발견되는 모든 비파열 뇌동맥류를 반드시 치료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의 변화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작은 동맥류의 파열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기 때문에 뇌동맥류가 반드시 터지는 시한폭탄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터질 수 있는 폭탄이며, 그 파열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적되기 때문에 일단 뇌동맥류가 발견되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뇌동맥류 터지면 치명적
35세 이상은 정기적 뇌혈관 검사 받아야
출혈을 일으킨 뇌동맥류는 재출혈을 막기 위한 응급치료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터지지 않은 뇌동맥류가 발견되면 치료 여부는 동맥류의 크기, 위치, 모양과 환자의 연령, 건강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지주막하출혈의 원인이 뇌동맥류로 확인되면, 머리를 열고 동맥류경부를 결찰하는 수술법과 대퇴동맥을 통해 동맥류 내부를 막아버리는 코일색전술 치료 중 하나를 선택한다. 수술 방법은 두개골을 열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궁극적인 치료 방법이며, 수술하면서 뇌압을 낮추는 뇌실외배액과 동맥류 주위의 혈액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코일색전술은 두개골을 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으나 동맥류의 모양과 해부학적 구조에 의해 시술이 제한적일 수 있다. 2012년 한국 뇌동맥류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수술과 코일색전술은 반반이었으나, 색전술기법의 발전으로 사례가 점차 증가해 현재는 60~70%의 환자가 코일색전술을 받고 있다.
요즘은 건강검진 목적 혹은 두통이나 어지럼증 등의 가벼운 증상으로 검사를 할 때 비파열 뇌동맥류가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 경우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수술법 △코일색전술 △일정기간 간격의 추적검사다.
비파열 뇌동맥류는 색전술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코일색전술을 하게 된다.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 추적관찰하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관찰 기간에 동맥류가 터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은 피하기 어렵다.
일단 뇌동맥류가 터지면 극히 불운한 운명을 맞을 수 있지만 터지기 전에 진단해 치료받을 수 있다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도 뇌혈관에 대한 정기적인 검사는 필요하다.
따라서 35세가 넘은 사람은 7년에 한번 정도 뇌 MR혈관조영술을 받을 것을 추천하고 싶다. MR혈관조영술은 방사선이나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부담이 없고, 덤으로 뇌의 건강상태를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리 = 안창현 기자)
황성남 중앙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