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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뇌섹남녀 인기 ③]뇌섹남이 만든 비열한 뇌섹남들 이야기

상위 3%와 0.3%의 대결, 연극 ‘모범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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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2호 김금영 기자⁄ 2015.05.27 09:15:02

▲연극 ‘모범생들’의 공연 장면. 더 좋은 성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목고의 비열한 뇌섹남들의 이야기다. 사진 = 이다엔터테인먼트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연극 ‘모범생들’은 실제 뇌섹남이 만든 콘텐츠로 유명하다. 과학고-카이스트 출신 김태형 연출이 2007년부터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목고 고3 학생들을 통해 비뚤어진 교육 현실과 비인간적인 경쟁 사회를 그려낸다.

명준, 수환은 주위의 기대를 받는 모범생들이다. 머리도 명석하고 상위권 성적을 받고 있지만, 이들은 더 위를 향해 가기 위해 똑똑한 머리를 비열한 수단에 사용하기 시작한다. 시작은 조용했다. 자신들만의 커닝 사인까지 정하고 실행에 옮기기만 했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학교 문제아인 종태에게 이를 들키고, 명준은 순간 머리를 굴려 종태까지 자신의 커닝 계획에 끌어들인다.

그런데 이 와중 반장 민영이 가지고 있던 출석부에서 선생님에게 수학 답안지를 요구하는 쪽지와 현금 300만 원이 발견되고, 명준은 이를 빌미로 전교 1등이었던 민영에게 시험 시간에 답을 보여 달라고 협박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커닝 사인을 구체화시켜 자신이 반 전체의 성적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상위 3%인 명준보다 위에 있던 존재인 상위 0.3% 민영이 반전 상황을 일으킨다. 각자의 목표를 향해 명준과 민영은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인다. 공연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8월 2일까지.

▲김태형 연출. 사진 = 김금영 기자

공연계 뇌섹남 김태형 연출

“뇌섹 인기는 영악한 미디어 영향”

‘공연계의 뇌섹남’이라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김태형 연출이다.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거친 그는 촉망받던 공학도의 길을 과감하게 버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출을 전공한 뒤 무대로 자리를 옮겼다. 이유를 묻자 시크한 표정으로 “(공연이) 재미있었다”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연극 ‘두결한장’ ‘내일도 공연할 수 있을까?’ ‘히스토리 보이즈’ ‘연애시대’, 뮤지컬 ‘로기수’ ‘아가사’ ‘브루클린’과 현재 무대에 올리고 있는 연극 ‘모범생들’까지 공연계에서 활동을 펼치며 호평 받는 그와 뇌섹남녀 콘텐츠 관련 이야기를 나눠봤다.

- 과학고, 카이스트까지 심상치 않은 이력으로 주목받으며 ‘뇌섹남’ 연출가로 유명하다.

“과학고, 카이스트를 다닐 때 선택받은 학생이라 혜택을 많이 받았고, 기회도 보통 학생들보다 많이 받은 게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공부를 잘해 주어진 보너스였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가 어느 순간 앞날이 뻔히 보이는 내 모습이 싫었다. 이대로 가면 학자, 교수는 되지 못하겠지만 대기업에 취직해 회사원, 연구원으로 회사에서 썩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때 내게 가장 재밌었던 게 연극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반에 들어 활동했는데 정말 재밌었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남들이 볼 때 폼 나는 위치에 서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극을 통해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동기 중 나처럼 진로를 획기적으로 바꾼 케이스가 많진 않다. 하지만 난 내 선택에 충분히 만족한다.”

- 2012년쯤으로 기억하는데, ‘모범생들’ 프레스콜에서 자신이 극 중 서민영처럼 성적이 상위 0.3%에 들었다고 밝혀 출연 배우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실제 자신의 경험이 얼마나 이 공연에 반영됐나?

“그랬었나?(웃음). 공부를 잘하긴 했다. 그런데 커닝도 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극 중 야구 배팅을 하면서 대사하는 장면도 학창 시절 직접 경험한 일이다. 또 전체 분단별로 경우의 수를 따져 명준이 시험 점수를 미리 배치하는 장면은 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첫 대본엔 없던 장면이다. 커닝 사건 뒤 펼쳐지는 재시험이라는 상황도 첫 대본엔 없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끔찍한 상황이 바로 재시험이라는 걸 잘 이해하기에 제안한 장면이었다. 내 이야기를 지이선 작가가 잘 발전시켜줬다.”

- 예전엔 돈 많고 철없는 재벌 아들의 순애보에 여성들이 열광했다면, 요새는 ‘뇌섹남’ 콘텐츠가 대세다. 왜 이런 콘텐츠들이 주목받는다고 생각하나?

“미디어가 영악하게 발전한 게 아닐까. 이전에 돈 많고 철없는 캐릭터가 최고였고 인기가 많았지만 이제 그런 캐릭터가 진부해졌다. 자신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상위의 삶을 계속해서 욕망한다. 그런데 지식경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우월하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게 바로 지성을 갖춘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의 욕망을 미디어가 잘 캐치해 콘텐츠로 개발시킨 것 같다.

▲상위 3%와 0.3% 학생들의 두뇌싸움을 그리는 연극 ‘모범생들’ 포스터. 사진 = 이다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이 육아가 힘들다고 하면 미디어에서 가상 육아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결혼을 하고 싶어하면 가상 결혼 프로그램으로 환상을 채워준다. 이처럼 선망을 이끌어내며 주목받는 콘텐츠를 미디어는 계속 발굴하는데, 그 대상이 현재는 뇌섹남이 된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에 비치는 뇌섹남들은 그냥 똑똑한 게 아니다. 쿨하고 센스 있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런 사람이 바로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상과 부합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긍정적으로 보이고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

‘모범생들’의 경우 명석하게 머리를 굴리는 캐릭터들이 뇌섹남처럼 보일 수 있는 면모는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전형적인 모범생 이미지와 뇌섹남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 ‘모범생들’엔 뇌섹남들이 없다는 말인가?

“부정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극 중 명준과 수환, 민영 등이 이기적인 면모를 보이긴 한다. 그런데 어떠한 일에 대해 그대로 바라보기보다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시점으로 비틀어 보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이끌어 내는 점이 매력적인 뇌섹남으로 보일 수 있다.”

- ‘모범생들 = 김태형’이라는 공식이 돌 정도다. 그만큼 공연에 대한 애정도, 부담도 각별할 것 같은데 이 콘텐츠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가?

“이 작품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10주년을 향해 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똑똑한 사람이 인정받고 더 높은 위치에 서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공연할 때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졌는데, 기본적으로는 ‘너희 그렇게 살지 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명준, 수환, 민영을 마냥 욕할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한 이 사회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거나 따뜻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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