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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뉴스]무너지는 한국에 그로테스크 미술 뜬다?

괴짜 팀 버튼 전시부터 ‘레이디 엑스’전까지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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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8호 김금영 기자⁄ 2015.07.09 08:54:52

▲장파, ‘레이디 엑스’. 캔버스에 오일, 72 x 50cm, 2015.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예쁜 이미지를 선호하는 시대다. 남자들은 예쁜 여자, 여자들은 잘생긴 남자가 좋다 하고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들은 늘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며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걸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정반대로 괴기하고, 더 강하게 말하자면 추한 이미지에 열광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꾸준히 사랑 받는 좀비 콘텐츠처럼 말이다. 이른바 ‘그로테스크’ 이미지다.

원래 그로테스크라는 용어는 15세기 말 로마 시대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괴상한 인간의 상, 꽃, 과일 등 각종 모티브를 곡선 모양으로 연결해 복잡하게 구성한 장식적 패턴을 뜻했다. 통상적인 장식 패턴과는 다른 괴이함이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보통의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이게 됐다.

그로테스크는 미술, 문학, 연극, 영화 등 예술의 다양한 영역으로 범위를 확장시켰다. 현재 대표적으로 꼽히는 그로테스크 예술가 중 괴짜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이 있다. 내용뿐 아니라 괴기한 영화 속 이미지가 대중을 열광시켰다. 영화 ‘가위손’엔 잘생긴 남자주인공 대신 얼굴에 흰 밀가루를 떡칠한 듯 창백한 얼굴에 여기저기 삐죽 솟은 머리, 거기에다 두 손 모두 가위인 에드워드가 등장했고, ‘스위니 토드’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복수심에 면도칼로 손님들의 목을 그어 버리는 벤자민 바커가 관객을 소름끼치게 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우울한 회색톤 분위기 속 선명하게 퍼지는 빨간색 피의 이미지는 영화의 괴기함을 더했다.

▲그로테스크한 예술 세계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왼쪽 사진). 사진 = 왕진오 기자

귀여운 이미지에 음산함을 더하기도 했다. ‘프랑켄위니’엔 프랑켄슈타인처럼 시체를 조합해 새 생명을 얻는 강아지 스파키가 등장했다. 온몸에 바느질 자국이 남은 흉측한 모습에도 천진난만하게 꼬리를 흔들고 웃는 스파키의 모습은 귀엽기도, 어쩔 땐 오싹하기도 한 묘한 매력을 선사했다. 이밖에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대부분의 작품에 정상적인 주인공이 없었지만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팀 버튼이 어린 시절 그린 습작부터 회화, 데생, 사진,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만든 캐릭터 모형 등을 전시하는 자리가 열리기도 했다. 2009년 뉴욕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 첫 선을 보인 ‘팀 버튼’전은 8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1980년 ‘파블로 피카소’전과 1992년 ‘앙리 마티스’전에 이어 모마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관객이 방문한 전시로 기록됐다. 이후 ‘팀 버튼’전은 멜버른과 토론토, 로스앤젤레스, 파리 등에서 성황리에 열렸는데, 국내엔 2012년 12월~2013년 4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당시 5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로테스크 이미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입증했다.

▲팀 버튼의 ‘프랑켄위니’ 조각이 전시된 모습. 창백한 얼굴에 평범하지 않은 이미지가 독특하다. 사진 = 왕진오 기자

그로테스크 예술가로 해외에서 팀 버튼이 유명하다면 국내엔 박찬욱 감독이 있다. 특히 언급되는 영화가 ‘친절한 금자씨’로,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범인을 외딴 집에서 처절히 응징하는 이미지가 기괴하고 끔찍스럽기까지 했다. 360만 명의 흥행 성적을 올렸고, 제26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 ‘올드보이’ 또한 파격적이고 정상적이지 않은 소재와 이미지로 주목받았다. 산낙지를 통째로 입에 쑤셔 넣고 자신의 혀를 직접 자르는 남자주인공 오대수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끔찍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제41회 대종상영화제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편집상, 조명상을 수상했고,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술 영역에서도 그로테스크를 찾아볼 수 있다.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트’의 저자 볼프강 카이저는 모든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선입견, 그리고 이성의 지배에서 벗어나 무의식 그리고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그로테스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짚었다.

199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행위예술가 리 보워리도 엽기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작품 활동으로 유명했다. 2012년 8월 서울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린 ‘마스커레이드’전에서 그는 현실과 비현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사회가 강요한 질서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했다. 어릿광대처럼 과장된 화장에 남녀를 뒤섞은 옷차림으로 클럽 무대에 올랐던 그는 1980~90년대 런던과 뉴욕에서 전위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이후 작가 데미언 허스트, 패션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 가수 보이 조지 등에게 영향을 줬다.

▲벌거벗은 남녀의 몸이 뒤엉켜 마치 뱀들이 꽈리를 틀고 있는 듯한 그로테스크 이미지로 알려진 김준 작가. 사진 = 왕진오 기자

근래에 열린 주목할 만한 전시들도 있었다. 그로테스크 이미지로 유명한 ‘문신 작가’ 김준의 전시 ‘썸바디(Somebody)’가 5~6월 박여숙 화랑에서 열렸고, 잔다리 갤러리에서는 장파 작가의 ‘레이디 엑스’전이 7월 25일까지 열린다.

김준의 작품은 벌거벗은 남녀의 몸이 뒤엉켜 마치 뱀들이 꽈리를 틀고 있는 듯한 그로테스크 이미지가 충격을 줬다. 작가는 몸과 살갗, 가죽이 공존하는 작업을 통해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욕망을 적나라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 흉측하다는 반응으로 미술 시장에서 외면당하기도 했지만 전시가 열릴 때마다 파격적 이미지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김준, ‘썸바디(Somebody) - 005’. C-프린트, 120 x 120cm, 2014.

장파의 ‘레이디 엑스’전 또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괴기한 이미지가 지하 1층과 2층에 이어진다. 한 여성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 여성은 나체로 노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하면 개나 해골 등 사람이 아닌 존재와 은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모습 또한 보인다. 전시의 정점은 지하 2층이다. 큰 벽면을 가득 채우는 한 여성의 나체 이미지가 보기 불편하면서도 계속해서 눈길을 끈다. 지하 2층엔 특히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은 색의 이미지가 작품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여성적 그로테스크’라 소개했다. 나무를 사랑하는 ‘덴드로필리아(dendrophillia)’라는 페티시를 지닌 레이디 엑스라는 소녀가 그녀의 성적 판타지를 펼쳐나간다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회화 및 드로잉 300여 점으로 구성됐는데,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방식이 그로테스크 회화라고 여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어떻게 보면 비주류에 속하는 소외된 존재일 수 있다. 그로테스크 또한 미술에서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긴 하지만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속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세계의 틈새 사이 주류화 되지 않은, 지하에 묻힌 감각들 이야기를 지상으로 끌어내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갤러리 잔다리에서 ‘레이디 엑스’전을 여는 장파 작가. 사진 = 김금영 기자

또 그로테스크 회화로 강조하려 한 게 공포의 이미지다. 여성을 약한 모습으로만 표현하려 하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남성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강하고 주체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기 위해 남성이 여성에게 갖고 있는 공포의 이미지를 자극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중 생각한 게 수태의 공포다.

작가는 “영화 ‘에이리언’에서 뱃속에 잉태된 존재가 바깥으로 나올 때 공포를 일으키듯, 전시에서는 남성에게 수태의 공포를 주되, 여성적인 느낌 또한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평범한 방식이 아니라 그로테스크적 회화로 보여주려 했다”며 “그로테스크는 이야기를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로테스크를 ‘기괴하다’는 단 한 마디로 정의하기엔 아직 그 정의가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진다. 다만 한 가지 발견되는 공통점은 평범함과 가식을 거부하고 아름다움 이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것. 단순히 기괴하다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 그로테스크가 왜 꾸준히 사랑받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기괴한 그로테스크 이미지에 환호하는 시대,
현대인의 불안감인가? 해소인가?

볼프강 카이저는 16세기, 질풍노도 시대에서 낭만주의에 걸친 시기, 그리고 20세기를 그로테스크의 시대로 꼽는다. 그런데 이 시기 모두 기존 세계관에 대한 믿음, 안전한 세계 질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던 때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불합리한 이야기들로 유희를 벌이는 그로테스크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당혹스러움과 공포를 유발하는 동시에 은밀한 해방감을 동시에 선사한다고 말한다. 즉 그로테스크 예술에 합리주의 및 조직적 사고에 대한 해방감과 강렬한 저항이 깃들어 있다는 것.

그는 “그로테스크의 세계는 현실세계인 동시에 현실세계가 아니다. 그로테스크가 조소와 더불어 섬뜩함을 유발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고정된 질서에 따라 움직이던 세계가 여기서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생경한 것으로 변하고 혼란에 휩싸이며 모든 질서 역시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로테스크의 정치학’의 저자 이창우는 “예술의 역사는 미술, 문학, 연극, 영화 등에서 나타나는 그로테스크가 역사적 혼란기, 신-구 질서의 이행기에 주로 생산돼 왔음을 보여준다”며 “그로테스크란 몰락하는 구질서와 부상하는 신질서가 교차하는 아노미 상황에 대한 사회 성원들의 경험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짚었다.

예쁘고 밝은 이미지를 좋아하면서도 잔인하게 인육을 뜯어먹으며 피 터지는 좀비의 그로테스크적인 이미지에 열광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상반된 심리.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는 사람들의 불안감과 동시에 불안감에서 해방되고픈 욕구가 그로테스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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