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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 명예교수))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공급되는 식량의 1/3을 버린다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게 사실이다. 국가 식량수급표에서 공급된 열량보다 국민영양조사보고서에 조사된 실제 섭취 열량이 약 30% 낮게 나온다. 식량 손실은 농장에서 일어나는 손실, 가공 유통 과정에서 일어나는 손실, 소매상에서 일어나는 손실, 그리고 소비단계에서 일어나는 손실로 대별된다. 이중에서 가정이나 식당의 소비 단계에서 일어나는 손실이 가장 크며 음식물 쓰레기의 주범이다. 환경부의 자료에 의하면 하루 1만 4천 톤(연간 511만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며, 그 70%가 가정과 소형 음식점에서 발생하는데, 연간 20조 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만 연간 8천억 원이 든다고 한다.
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우리 국민 각자의 사소한 부주의와 인식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아래에 제시한 몇 가지 사항만 매일의 식생활에서 실천하면 가정과 식당에서 버려지는 음식의 대부분을 막을 수 있다.
식사 후에 장보러 가기. 허기진 상태에서 장보러 가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물건을 사게 된다. 우리의 뇌는 배고프면 많은 먹을거리를 생각하게 되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반값 할인 제품, 대용량 제품들을 사게 되어 식사 후에 장을 볼 때보다 20~30%, 많게는 2배 이상 살 때도 있다. 물론 오래 두었다가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집 근처 작은 슈퍼나 재래시장 가기. 요즘은 대형할인마트가 대세인 시대이다. 그런데 이들 할인마트들의 사업 방식은 대용량 제품의 저가 판매이다. 소비자들이 가격을 비교해보면 대형마트가 훨씬 싼 가격에 판매한다고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들 대용량 포장 제품은 다 먹기 전에 맛이 변해 버리는 양이 많다. 결국 싼 게 아니라는 계산이 나온다. 하루 이틀의 메뉴를 정하고 근처 작은 슈퍼나 재래시장의 단골집에 가는 것이 더 문화적이고 경제적이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다른데도,
유통기한 지났다고 멀쩡한 음식 버려서야…
유통기한은 판매하는 기준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버리는 사람이 많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이 유지되는 기간의 70%로 정해 소비자가 구매하여 최상의 품질을 향유할 수 있는 여유 기간을 최소한 30%를 가지도록 한 것이다. 즉 10일 동안 최상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식품은 유통기한을 7일 이내로 하여 유통기한이 끝나는 날에 구입해도 3일간 최상의 품질이 보장되는 것이다. 식품은 최상의 품질 유지 기간이 지나면 서서히 품질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먹을 수는 있다. 이 기간을 소비기한이라고 한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대개 2~3배 길다. 유통기한에 대한 오해로 인해 엄청난 양의 식품이 버려지고 있다.
뷔페 식당에서 음식을 남기지 말자. 뷔페 식당에 가면 잘 먹지 않던 사람도 음식을 수북이 담아 온다. 그러고는 반쯤 남기고 또 다른 접시를 가져온다. 가장 천박한 행동이다. 쌀 한 톨도 그것을 키워낸 농부의 노고와 음식을 차려낸 사람의 정성에 감사하며 아껴 먹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워온 한국인의 정서에선 용납되지 않는 추태이다. 아무리 화장하고 잘 차려 입어도 먹고 난 뒤 자리가 깨끗해야 예쁜 사람이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 포장해 가기. 미국이나 유럽에선 아무리 고급 식당이라도 먹고 남은 음식을 으레 포장하여 가져간다. 현실적이고 환경을 아끼고 낭비를 싫어하는 선진국 사람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보느라 아까운 음식을 그냥 버려두고 나온다. 잘못된 체면 의식으로 버려지는 음식이 태산 같이 쌓여 국가 경제를 어렵게 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하루속히 고쳐져야 할 후진국형 체면이다.
식량안보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붓는 정치 쇼나 거창한 구호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를 하려고 애쓰고 금연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온 국민이 음식 쓰레기 줄이기를 생활의 목표로 삼아 실천하여 식량 낭비를 현재의 반으로 줄이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60%를 넘게 되고 선진국 수준의 식량안보를 달성하게 된다.
(정리 = 최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