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프랑스]세느강변 건물따라 흐르는 철학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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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6일차 (바르샤바 → 파리)
바르샤바를 뒤로 하고 파리로
항공기는 새벽 6시에 떠난다. 위즈에어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 주로 동구권에 노선을 많이 가진 유럽 저가 항공사다. 보통 160석 정도 나오는 A320 항공기에 180석을 구겨 넣으니 무릎이 앞좌석에 닿아 아플 지경이다. 파리 외곽 보베 공항에 닿는 단점도 있지만 29유로에 바르샤바-파리를 항공 이동할 수 있으니 모든 불편은 참아야 한다.
인종 전시장 파리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있는 보베 공항에서 버스(요금 15유로)로 파리에 입성했다. 파리는 인종 전시장이다. 흑인, 북아프리카인, 인도파키스탄인, 인도차이나계 아시아인 등 유색 인종이 백인보다 더 많아 보인다. 서울을 떠난 지 16일 만에 번잡한 대도시에 당도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낯선 대도시의 익명성 속에 존재감을 묻어버리는 것도 해외여행의 재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외형의 퐁피두센터
복잡한 파리 지하철에 익숙해지기 위한 신고식인 양 목적지 반대 방향으로 한두 정거장 가다가 되돌아오는 실수를 한다. 자유분방한 도시 분위기와 시민의 삶이 그대로 전해 온다. 파리의 박물관들은 주로 화요일에 휴관한다. 그래서 오늘 월요일은 파리 3대 미술관(오르세이, 루브르, 퐁피두센터) 중에서 문을 연 두 곳, 퐁피두센터와 루브르에 먼저 들르기로 한다.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에펠탑의 크기에 놀랐다. 321m 높이로 파리의 상징으로 꼽히며 항상 관람객이 북적댄다. 사진 = 김현주
퐁피두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 Pompidou)는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건물이다. 하수관과 배수관이 마구 겉으로 드러나, 짓다만 건물이라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파리의 박물관을 가급적 많이 방문하기 위해 박물관 패스 2일권(35유로)을 구입하니 만사형통이다.
외부로 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한 층 올라가니 멀리 몽마르트르 언덕과 에펠탑, 노트르담이 보이고 아래로는 퐁피두센터 광장에 자유로이 앉거나 서거나 누운 사람이 보인다. 퐁피두센터는 20세기 이후 미술품들을 집대성해 놓은 곳이다. 마티스, 칸딘스키, 샤갈,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림과 조형물이 모두 있다. 바깥 광장 옆 조각 분수 공원은 색감과 추상물이 상상을 넘는다. 그 안에서 물장난하며 뛰노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술 감각을 키워갈 것은 분명하다.
▲퐁피두센터의 외관. 파리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이 건물은 하수관과 배수관이 마구 겉으로 드러나, 마치 짓다만 건물 같은 독특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사진 = 김현주
친숙하게 느껴진 노트르담 성당노트르담 가는 길에 시청사(Hotel de Ville)를 지나간다. 프랑스 혁명 때 시민들은 시청사를 거점으로 자치 정부를 세웠다고 한다. 옆으로 긴 장대한 건물 전면 높은 곳에 자유(liberte), 평등(egalite), 박애(fraternite)라고 새겨져 있다.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 시테(Site) 섬 안에 노트르담(Notre Dame) 성당이 있다. 1163년에 기공해 182년 걸려 완성했으니 800년 된 건축물이다. 이미 수없이 듣고 사진으로 봤던 곳이라서 오히려 친숙하다. 노트르담 성당 첨탑에 올라가려 했지만(박물관 패스에 포함돼 있음)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다시 세느강변을 걷는다. 참 우아하게 아름답다.
▲퐁피두센터에서 보이는 파리 전경.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가득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파리의 대동맥 세느강
세느(Seine)강은 수백 년을 거쳐 파리의 해자, 상수원, 하수도, 욕조, 그리고 근래 들어서는 고속도로 역할까지 해왔다. 강은 도시를 좌우제방으로 가르며 왼쪽은 보헤미안, 오른쪽은 귀족 지역으로 구분했다. 프라하처럼 화려한 멋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가진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기존 이미지와 어우러져 멋지기만 한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파리의 대동맥인 세느강의 작은 백사장에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들이 가득하다. 10톤 트럭 550대 분량의 모래를 쏟아 부어 2002년 만든 인공 백사장이다. 사진 = 김현주
태양이 뜨거운 오늘, 세느강의 작은 백사장은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10톤 트럭 550대 분량의 모래를 쏟아 부어 2002년 만든 인공 백사장은 세느강변을 작은 리비에라 해변으로 만들었다.
루브르 박물관과 외규장각 도서
걷다가 지하철로 바꿔 타 루브르 박물관에 내린다. 르네상스와 로코코 예술품이 가득한 곳이다. 오늘도 박물관은 관람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박물관 규모가 워낙 커서 부대낄 정도는 아니다. 왁자지껄한 것이 말해 주듯, 동양인 단체는 대부분 중국인이다. 지금 파리는 중국인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중국인이 파리를 보고 가면 뭔가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대국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돈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이 자신들에게는 아직 없다는 깨달음 말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1163년에 기공해 182년 걸려 완성된, 800년 묶은 건물이다. 아름답고 고풍스런 외관이 특징이다. 사진 = 김현주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로의 비너스, 그리고 들라크루아와 다비드의 작품들이 특히 관객을 많이 모은다. 물론 루브르 전시물 중 상당수는 모조품이고 진품은 어딘가에 따로 보관하겠지만 루브르는 프랑스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박물관 소장품 획득 경위야 어떻든 프랑스 전체를 내주어도 루브르는 내줄 수 없다는 말이 맞다. 병인양요(1866) 때 침탈해 간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의 한국 반환을 놓고 프랑스 정부가 각박했던 이유를 알고도 남겠다. 그래도 비록 영구 임대 형식이기는 하지만 2010년 한국으로 가져온 것은 보통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니다.
콩코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루브르에서 콩코드 광장으로 나가려면 튈르리 정원을 지난다. 화려한 정원 분수에서 시민들이 태양을 즐긴다. 그리고는 카루셀의 개선문이다. 나폴레옹의 수많은 전쟁 승리를 기념해 1808년 완성했다. 개선문 위 네 마리 조각상이 어설프다.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에서 빼앗아 온 것을, 1815년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패배로 돌려준 뒤 다시 제작해 올린 것이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두 열강의 제국주의 경쟁이 별별 해프닝을 다 만들어 내고 있었다.
▲루브르 광장. 르네상스와 로코코 예술품이 가득한 루브르 박물관엔 전 세계의 관람객이 모여든다. 프랑스 전체를 내주어도 루브르는 내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사진 = 김현주
콩코드 광장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원래 이집트 룩소르 테베 사원에 있었던 것이다. 1831년 당시 이집트를 통치하던 오스만 터키 총독 무하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기증(헌상)했다. 여기서 개선문까지 북서쪽으로 난 대로가 샹젤리제다. 화려하다고는 하지만 뉴욕 5번가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콩코드 광장 왼편으로는 그리스 신전을 본 따서 지은 의사당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콩코드 광장을 배경으로 카루세르이 개선문이 서 있다. 나폴레옹의 수많은 전쟁 승리를 기념해 1808년 완성된 개선문 위 네 마리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사진 = 김현주
화장실 인심이 고약한 유럽 다른 나라 도시와는 달리 파리는 화장실이 넉넉해 마음 졸이지 않고 다닐 수 있으니 참 좋다. 드디어 개선문(L’Arc de Triomphe)에 닿았다. 루브르에서 여기까지 계속 걸었으니 많이 걸었다. 파리의 모든 대로가 여기에서 갈라져 나가기 때문에 이 광장을 별(Etoile)이라고도 부른다.
나폴레옹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명령으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나폴레옹은 개선문 완공을 보지 못하고 1821년 대서양 절해고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사망했다. 저녁 6시 30분, 중앙 아치 밑에 묻힌 1차 대전 무명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불꽃 점화식을 보러 많은 관광객과 시민이 모였다. 여태까지 이 나라 저 나라에서 크고 작은 많은 개선문을 봤지만, 역시 모든 면에서 파리의 개선문이 으뜸이다. 그러나 파리 개선문은 로마 콜로세움 옆 개선문에서 콘셉트를 잡았다고 하니 그 또한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파리의 개선문.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으나 정작 나폴레옹은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로마 콜로세움 옆 개선문에서 콘셉트를 잡았다고 한다. 사진 = 김현주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에펠탑
개선문에서 6호선 메트로를 타고 몇 정거장 지난 비르하켕 역에 내리니 에펠탑이 멀지 않다. 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인 1889년 열린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에펠이 세운 321m 높이의 파리 상징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어마어마한 규모의 탑을 올라가기 위해 끝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게다가 단체 관람이나 예약 관람만 가능하니 나는 자연스럽게 탈락해 대신 바로 근처 강가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에 탑승해 멀리서 에펠탑을 조망하기로 했다(유람선 한 시간 코스에 12유로).
유람선은 세느강 다리 37개 중에서 22개를 지나므로 당연히 알렉산더 다리, 퐁네프 등 유명한 다리들을 지난다. 알렉산더 다리는 황금 조각상과 가로등이 빼어나, 세느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과시하기 위해 1900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석양 머금은 에펠탑의 모습은 아까 본 것과 또 다르다.
▲물랑루즈의 빨간 풍차가 도는 풍경. 프렌치 캉캉의 발상지로서, 유흥가라는 느낌은 별로 주지 않는다.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현장이다. 사진 = 김현주
스토리텔링 느끼게 한 물랑루즈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메트로 2호선 블랑쉬역에 잠시 내렸다. 물랑루즈의 빨간 풍차가 돌고 있는 야릇한 풍경이다. 프렌치 캉캉의 발상지로서, 화가 로트레크의 그림이 생각난다. 이 주변은 카바레(무도회장) 타운이지만 유흥가라는 느낌은 별로 주지 않는다. 많은 관광객이 빨간 풍차에 반해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작은 무도회장이지만 로트레크의 그림이 있고,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가 있기에 이곳에 일부러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역시 결론은 ‘스토리텔링’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