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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전시 - ‘경기 팔경구곡’전] 절경과 분단이 어깨맞댄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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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9호 왕진오 기자⁄ 2015.09.21 10:39:47

▲경기 팔경과 구곡 전시 모습. 사진 = 경기도미술관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한반도 역사의 중심인 경기도의 이름난 ‘팔경(八景)과 구곡문화(九曲文化)’에 기반을 두고 명승과 실경을 그린 옛 그림부터 현대 풍경화까지 100여 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경기도미술관이 9월 5일∼11월 15일 ‘경기’라는 명칭이 나온 지 1000년이 되는 세월을 돌아보고, 경기도 동서남북의 풍광을 총 5부로 구성한 특별전 ‘경기 팔경과 구곡: 산·강·사람’을, 기획전시실 A·B 존과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진행한다.

‘경기 팔경구곡과 아름다운 곳’으로 명명된 공간에는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인 ‘소상팔경’과 ‘무이구곡’을 간단하게 짚어보고, 경기도의 대표적 명승인 수원팔경, 부계팔경, 벽계구곡을 그린 여러 작가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경기도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뛰어난 자연 경관과 함께 역사유적, 고적이 많아 예로부터 많은 그림의 소재가 됐다.

▲이이남, ‘박연폭포’. 55인치 LED TV, 125 × 76 cm, 2010.

양주 회암사, 화성 용주사,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를 그린 이호신의 그림이나, 조선 후기 정조의 화성 행차 그림인 박진명의 ‘화성능행도’에서는, 시대를 넘어 경기도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화가들의 예리한 관찰력과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포천의 화적연, 양평의 벽계구곡, 안산의 부계팔경과 함께 경기도의 옛 땅이었던 개성의 풍경은 그림의 주요한 소재가 됐다.

▲최호철, ‘이루지 못한 귀향’. 디지털 프린트 위 혼합 재료, 90 × 100cm, 2015.

정조의 필생 역작인 수원의 화성도 중요한 그림 소재였다. 김홍도의 화성 그림부터, 삼성미술관으로부터 대여받은 나혜석의 작품, 박상옥 등의 풍경화를 통해 화가들이 해석한 화성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원 화성은 오늘날에도 오용길, 김대원, 김억, 김현철 등 여러 작가들에 의해 꾸준히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전시는 ‘산은 강을 품고’, ‘강은 바다를 향하네’, ‘사람은 마을과 도시를 만들고’, ‘갈라진 땅 다시 만나리’라는 제목으로 펼쳐진다. 산, 강, 바다, 사람, 마을, 도시, 분단을 키워드로 출품작들을 연계시키며 서사(敍事)를 만드는 방식이다. 

▲소치 허련, ‘태령십청원’. 종이에 엷은 색, 23.6 × 29.1cm, 19세기.

이번 전시가 좋은 것은 통시적(通時的) 관점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단원 김홍도(1745∼1806)와 겸재 정선(1676∼1795), 지우재 정수영(1743∼1831)은 옛 경기도의 산과 강을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로 그렸다. 이어 원로 작가 오승우·김병기, 그리고 안석준은 산을 그렸고, 송필용·이재삼은 폭포, 이억영과 김범석은 한강을 그렸다. 

문봉선의 22미터 길이의 ‘한강’, 김혜련·박진화의 임진강, 김억·김보희·김동철·장태묵의 양수리 풍경, 김성호·이해균·문인환·이창희의 바다와 갯벌 풍경, 이이남의 미디어아트 박연폭포가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장쾌하게 펼쳐진다.
  
백령도의 빼어난 풍광은 너무 아름다워 슬프고, 
설날의 임진각은 실향민 아니라도 눈물짓는다 

수원 화성과 함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 일대의 풍경 역시 중요한 소재 중 하나다. 이곳은 풍광이 빼어난 데다 이 주변으로 들어간 지 30년이 되어가는 민정기 등을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계곡과 마을에 흩어져 살면서 지역의 풍경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호신, ‘화산-용주사의-겨울’. 한지에 수묵 채색, 137 × 193cm, 2005.

강 그림으로는 지우재 정수영이 그린 한강과 임진강의 실경산수화부터, 권기윤의 신륵사, 이종송의 그림이 있다. 

작품들의 주요 모티브로는 사람과 마을, 도시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어린 시절 고향을 회고하는 장우성의 평화로운 마을 풍경, 자신이 살고 있는 양평의 한적한 농촌을 그린 이윤호, 이천의 명물 도자기와 쌀을 그린 이영환, 아파트가 숲을 이룬 분당 풍경을 그린 김보중, 성남의 유명한 모란시장을 그린 박능생, 평택 대추리 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김억 등이 있다.

▲이진석, ‘비단길 2’. 캔버스에 유채 및 혼합재료, 65 × 100cm, 2015.

경기도미술관이 위치한 안산시 중앙공원의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역시 현대의 경기도 풍경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을 그린 최호철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동시대의 괴로움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다. 

분단을 그린 풍경화도 다수 배치됐다. ‘접적 지역’인 경기도이기 때문이다. 장우성·김병기·서용선·손장섭·송창이 그린 분단 풍경은 남북 대치의 살벌한 상황이다. 김태헌은 DMZ 풍경은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봤고, 홍선웅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해전을 목판에 새겼다. 김현철이 그린 백령도의 빼어난 풍광은 너무 아름다워 슬프고, 박영균이 그린 설날의 임진각은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눈물짓게 된다. 

▲문봉선 작. ‘한강’ 설치 모습. 사진 = 경기도미술관

류연복과 이진석의 그림은 통일을 희구한다. 분단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공중의 새들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비단길(실크로드)을 거쳐 유럽까지 가볼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담았다. 

고미술의 특성상 노출 전시는 어려워 많은 고회화 작품들이 복제화로 전시 공간을 채웠다. 하지만 옛 그림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경기도미술관장 최은주 
“발품파니 경기도 서사가 전시장으로”

지난 4월 경기도미술관장으로 부임한 최은주 관장은 “경기문화재단 산하 6개 미술관과의 회의를 위해 경기도박물관, 어린이박물관, 경기도미술관, 전곡 선사박물관, 남양주 실학박물관, 용인 백남준 아트센터를 다니며 눈에 담았던 경기도의 멋진 풍광들이 작품 속에 모두 녹아 있는 것 같다”고 전시 의미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장과 학예실장을 역임한 최은주(52) 관장이 경기도미술관에서 꾸린 첫 전시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 관장. 사진 = 경기도미술관

CNB와 만난 최 관장은 “10년 전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경기비경’ 전시가 있었어요, 경기도를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다양한 풍경화를 보여줬는데, 나열형 전시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풍경화와 함께, 서사와 인문학을 바탕으로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는 현대사를 풍경으로 담아냈다”고 소개했다.

최 관장은 전시 작품 중 문봉선 작가의 22미터짜리 ‘한강’ 작품을 빼놓지 말고 보라고 추천한다. 대형 작품을 소화할 전시 공간이 미미한 국내 환경에서 이탈리아 건축가 귀도 카날리(Guido Canali)가 지은 경기도미술관의 범선 형태는 이 작품을 담기에 최적이다.

이번 전시는 세월호 사건, 분단의 이미지까지 담아내려 했지만,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한 사진은 배제됐다. 사진으로 경기도의 풍광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많은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림과 함께 인문학적 배경을 찾기 위해서 자료 수집을 하던 중 대중가수 나훈아가 초창기에 부른 ‘녹슨 기찻길’이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분단 풍경을 담은 노래라는 점을 알아낸 것도 소득이었다고 최 관장은 말했다. 

고미술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기도 풍경 그림을 얻기 위해 관장이 직접 발품을 팔면서 삼성미술관으로부터는 나혜석 작가의 그림을, 허진 작가로부터는 소치 허련의 진품도 받아 공개할 수 있었다.
최 관장은 전시 작품 중 민중미술 계열의 작품이 다수 나온 것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특별한 이슈를 만들기 위해 선정한 것은 아니다. 분단의 풍경은 곧 우리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며 “통일을 희구하며 분단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희망을 그린 그림은 직설적이지만 그만큼 재미도 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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