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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핀란드] 소박하기에 사람사는 냄새 물씬 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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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0-451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5.10.05 10:59:48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일차 (파리 → 헬싱키)

전 세계 항공기가 몰려드는 런던 히드로 공항

오늘은 날이 맑다. 여행 시작한 지 20일째 되는 날이다. 마지막 목적지 핀란드 헬싱키행 항공기 탑승을 위해 히드로 공항으로 간다. 빅토리아 역에서 지하철로 5파운드…. 히드로 공항은 전 세계 모든 국가의 항공기들이 다 들어온다. 특히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앵글로 국가 노선과 동북아,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 노선, 중동 노선이 많다.

아프리카 노선도 적지 않는데 프랑스 파리가 카메룬, 세네갈 등 아프리카 서부 해안 프랑스어권 지역행 항공기가 많다면 런던은 케냐, 나이지리아, 가나, 남아공 등 영어권 지역으로 가는 항공 노선이 많다. 영국의 역사를 말해주는 현장이다. 히드로 공항을 이륙한 후 상공에서 본 런던은 푸른 도시다. 브리티시 에어 항공기는 북해, 유틀란트 반도(덴마크)를 지나 스칸디나비아 반도 남부를 횡단하니 곧 발트해다. 수백,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촘촘히 박힌 바다다. 

아시아인이 가득한 헬싱키 공항

항공기는 2시간 40분 걸려 현지 시각(GMT+2) 오후 4시 40분, 핀란드 헬싱키 반타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하려고 대합실을 지나는데 아시아 사람들이 가득하다. 오후 5시 무렵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델리, 방콕 등 아시아 지역으로 핀에어가 집중적으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국적항공사 핀에어는 헬싱키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음을 파악해 헬싱키 공항을 아시아-유럽 환승 공항으로 키운다. 환승을 안내하는 한국어 안내판을 보니 반갑다.

▲마켓스퀘어 광장에 시장이 섰다. 생선 굽는 냄새부터 시작해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사진 = 김현주

터키의 EU 가입 논쟁

여기는 유럽에서 보면 변방이지만 흑인과 인도인, 중국인 등 이민자도 많다. EU 시민은 주거와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일자리만 있다면 그것이 EU 지역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여기도 언젠가는 파리나 런던처럼 인종 지도가 많이 바뀔 것이다.

2004년 동유럽 8개국 EU 동시 가입 때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인구가 많은 폴란드(약 4000만 명) 때문에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폴란드 이민자가 넘쳐 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요즘엔 터키의 EU 가입 문제를 놓고 비슷한 논란이 인다. 현재 터키 인구는 약 9000만 명, 머지않아 1억 명이 되니 걱정할 만하다. 자국 내 터키계 인구가 많은 독일은 미온적인 반면, 프랑스와 영국은 터키의 EU 가입을 극렬 반대하는 입장이다. 

▲원로원 광장 전경. 광장엔 헬싱키 대성당과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2세의 동상이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헬싱키 중앙역

공항에서 615번 버스를 타고 헬싱키 중앙역으로 들어온다(요금 4유로). 예약해 놓은 호텔은 운 좋게도 중앙역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여장을 풀고 중앙역 부근 쇼핑몰에서 중국음식 뷔페(8유로)로 저녁식사를 하니 살 것 같다. 그동안 퍽퍽한 빵만 먹다가 20일 만에 처음으로 밥도 먹고 국도 먹으니 기운이 난다.

헬싱키 중앙역 광장은 시민의 놀이터이자 만남의 광장이다. 많은 시민이 금요일 저녁 해를 즐긴다. 바다가 무척 가까워 갈매기들이 광장에서 주인 노릇을 한다. 광장이라고 해봤자 인구 530만 명나라의 수도(헬싱키 인구 53만 명)이므로 보잘 것 없지만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공간이다. 참 멀고도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야 이렇게 지낼 수 있다지만 밤이 한없이 길고 추운 겨울에 이 나라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하는 공연한 걱정도 해 본다. 


21일차 (헬싱키)

발트해의 전략 요충 헬싱키

핀란드 가정식으로 차린 호텔 조식 뷔페가 아주 훌륭하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첫 목적지로 가기 위해 중앙역 부근에서 24번 버스에 오른다. 작은 나라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지내다 190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했다. 헬싱키는 500년 이상 된 도시로서 핀란드의 중심일 뿐 아니라 러시아와 발틱, 스칸디나비아를 연결하는 요충에 있다. 헬싱키에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 탈린(Tallinn), 스웨덴 스톡홀름을 연결하는 정기 여객선이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암석교회는 특이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세계의 디자인 도시라는 타이틀이 적절해 보인다. 사진 = 김현주

원시림 속 민속촌

버스, 트램, 수상버스까지 탈 수 있는 1일 교통권(7유로)을 구입해 놓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24번 버스는 약 20분 후 도시 서북쪽 외곽에 있는 야외박물관(Seurasaaren Ulkomuseo) 종점에 닿는다. 핀란드의 옛 목조 가옥과 교회 등을 재현해 놓은 일종의 민속촌이다.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 민속촌으로 들어가니 섬 전체가 원시림이다.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 있는 슈피리어(Superior) 호반 바로 그 풍경이다. 야생 오리가 사람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한국 단체 관광객 한 그룹이 지나가니 오랜만에 우리말을 듣는다. 아예 호숫가 야외 목욕장에 자리를 깔고 앉아 한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30분에 한 대 씩 오는 버스 시간에 맞춰 나와야 한다.

핀란디아를 듣다

여기서 다시 시내로 나오다가 중간쯤 되는 곳에 시벨리우스 공원이 있다. 민족음악파인 시벨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600개의 철제 파이프로 제작한 기념비가 있다. 마침 트롬본 연주자들이 ‘핀란디아’의 한 소절을 연주한다. 장엄하지만 왠지 구슬프게 들린다. 공원은 요트 마리나에 접해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탁 트인 바다 풍경이 여행자의 지친 몸을 위로해 준다.

▲원로원 광장에 있는 헬싱키 대성당. 핀란드 루터파의 총본산인 이 성당은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 김현주

헬싱키 올림픽

시벨리우스 공원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걸어서 갔다. 여태까지 다른 도시에서 걸었던 것에 비하면 워밍업 수준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이다. 스타디움 앞에는 핀란드 육상 영웅 누르미(Pavo Nurmi)의 동상이 반긴다.

1952년 열린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당시 한국은 전쟁 중이었지만, 그럴수록 세계만방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국민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30여 명의 선수단을 보냈다. 복싱과 역도에서 각각 동메달 한 개씩을 따왔다. 그랬던 한국이 하계, 동계 올림픽을 모두 치루는 나라가 됐다. 사실 지구상 수많은 나라 중에서 올림픽을 치러본 나라는 몇 안 된다. 

25% 몽골로이드

트램으로 두세 정거장 내려가니 국립박물관(Kansallismuseo)이고 바로 옆에는 핀란디아 홀(Finlandia Hall)이 있다. 높은 첨탑 때문에 교회로 오인하기 십상인 핀란드 국립박물관은 민속, 역사, 고고학 박물관을 혼합해 놓았다. 핀란드 사람의 소박한 삶을 보여준다. 핀(Finn) 족의 기원에 관한 설명을 관심 있게 읽었다. 언어는 유럽어와 다른 계통이지만 발틱어와 게르만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인종적으로는(유전적으로는) 75% 유러피언, 25% 몽골로이드라고 쓰여 있다. 바로 이 25% 몽골로이드 형질이 핀란드 사람의 특이한 얼굴로 나타나는가 보다. 

▲18세기 스웨덴 치하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세워진 해상 요새. 이 나라 역사에도 시련이 많았음을 느끼게 한다. 사진 = 김현주

암석교회 풍경

핀란디아 홀도 그렇고 시내 곳곳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현대식 건축물들이 예사롭지 않다. 세계의 디자인 도시라는 타이틀이 적절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암석교회(Temppeliaukio Kirkko)인데 큰 길 뒤에 있어서 찾기 쉽지 않았다.

예식이 진행 중이어서 30분 더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잘됐다 싶어 간단히 점심식사를 먼저 끝내니 때맞춰 예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방금 끝난 예식은 결혼식이다. 백인 신랑과 흑인 신부의 친구, 친지들이 축하의 꽃을 뿌려준다. 나도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속으로 축하해줬다. 핀란드에서 흑백 결혼은 종종 있는가 보다. 바위산을 깨고 그 안에 지은 교회에 앉아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듣는다. 

온전히 보존된 해상 요새

트램을 타고 마켓 스퀘어(Kauppatori)에 가니 수오멘린나 해상 요새로 가는 페리가 마침 떠난다. 헬싱키 항구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크루즈를 비롯해 스톡홀름 행 실자라인, 에스토니아 탈린행 바이킹 라인 등 대형 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페리는 크고 작은 바위섬과 숨바꼭질하며 곧 요새 선착장에 닿는다. 

기대한 것보다 성이 크고 성벽이 온전히 보존됐다. 해상 요새는 18세기 스웨덴 치하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축성했으나 훗날 핀란드가 러시아 영토가 되고 난 후에는 오히려 스웨덴 공격의 전진 기지 역할을 했다고 하니 이 나라 역사에도 시련이 많았음을 말해 준다. 

▲시벨리우스 공원. 민족음악파인 시벨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600개의 철제 파이프로 제작한 기념비가 있다. 사진 = 김현주

원로원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마켓 스퀘어 광장으로 돌아오니 시장이 섰다. 어디선가 생선 굽는 야릇하게 비린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한다. 여기서 시작하는 에스플라나디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중간 중간 동상들이 서 있고 녹음이 우거진 산책로다. 그러나 유럽 전역의 멋진 광장들을 모두 돌아본 후에 만난 헬싱키의 광장들은 지극히 소박해서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높은 첨탑 때문에 교회로 오인하기 쉬운 핀란드 국립박물관은 민속, 역사, 고고학 박물관을 혼합해 놓은 장소로, 핀란드인의 소박한 삶을 보여준다. 사진 = 김현주

에스플라나디 거리와 직각으로 만나는 길은 알렉산테린 거리다. 그 거리의 동쪽 끝 원로원 광장에는 거대한 헬싱키 대성당이 솟아 있다. 핀란드 루터파의 총본산인 이 성당은 소박하지만 파이프 오르간 하나 만큼은 인상적이다. 광장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서 있다. 1836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통치하던 시절 건립한 것이다. 대통령 관저와 헬싱키 대학 등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 건물들 또한 소박하다.

아직 저녁식사 하기엔 시간이 좀 일러 공연히 7번 순환선 트램을 타고 도시를 동서남북으로 한 바퀴 도니 헬싱키 탐방이 끝나간다. 도시 외곽에도 이민자가 많다. 이 나라 입국 경위야 어떻든 이 땅을 선택해 핀란드어를 배우고 세금을 내는 이들에게 헬싱키는 편안한 삶의 터전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오늘 저녁 인도 음식을 먹으며 주인에게 왜 런던 같은 데로 가지 않고 추운 여기까지 왔냐고 엉뚱한 질문을 해봤다. 인도인이 이미 너무나 오래 전부터 그 지역에 진출했기 때문에 자기처럼 늦게 이민 온 사람들은 런던에는 낄 틈이 없다고 대답한다. 기다린 답변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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