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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터뷰 - 문혜원·박태성] “인간에 피빨리는 흡혈귀 들어는봤나요?”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 문혜원·박태성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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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5호 김금영 기자⁄ 2015.11.02 10:48:08

▲창작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서 호흡을 맞추는 배우 박태성(왼쪽), 문혜원 부부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사진 = 네버더레스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영화 ‘트와일라잇’ 속 매혹적인 흡혈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극 중 영원한 삶을 사는 흡혈귀 에드워드는 멋지다는 말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묘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특별한 독심술 능력과 강력한 힘, 집안 또한 부유하며 여주인공만 생각하는 로맨틱한 면모까지. 그야말로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이게 일반적으로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소비되는 흡혈귀 이미지다.

그런데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는 많이 다르다. 선망의 대상은커녕 당장의 월세가 걱정인, 죽지 못해 사는 가련한 존재다. 총을 맞아도 금방 낫고, 외모도 늙지 않으며 불멸의 삶을 사는 점은 비슷하지만, 오히려 탐욕 넘치는 인간들에게 고혈을 빨리며 처절하게 외치는 모습이 생소하다. “어떻게 피만 먹고 살아? 옷은 안 입어? 핸드폰 요금은? 집은?”

‘상자 속 흡혈귀’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생계형 흡혈귀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2010년 공연된 동명의 연극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루마니아의 로열 패밀리였던 흡혈귀 가족이 생계를 위해 한국의 망해가는 놀이공원 ‘드림월드’ 귀신의 집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생계형 흡혈귀라는 점이 2005~2006년 인기리에 방영된 ‘안녕, 프란체스카’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상자 속 흡혈귀’의 현실은 그때보다 더 냉혹해졌다. 돈을 훔쳤다는 모함에 그나마 겨우 구했던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집을 알아보러 간 부동산에서는 “돈 없으면 나가”라고 홀대받는다. 인간 사회에서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아무 것도 안 먹고, 안 쓰고 일만 37년 동안 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꿈에 부푼다. 그러나 배경 노래의 가사는 잔인하다. “집값이 또 올랐네.”

배우 문혜원과 박태성이 각각 흡혈귀와 인간으로 열연 중이다. 문혜원은 과거 인간들에게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막장 드라마에 중독돼, 늘 TV 앞에 사는 현실 도피 흡혈귀  쏘냐를 연기한다. 박태성은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아내 미봉만큼은 지키기 위해, 드림월드를 팔고 쏘냐 가족을 해고하려는 사장 역을 맡았다.

▲창작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의 한 장면. 인간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전전긍긍하는 흡혈귀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 = 네버더레스

처음엔 출연을 꺼렸다. 그도 그럴 것이 문혜원과 박태성은 뮤지컬계의 유명한 잉꼬부부다. 2014년 결혼한 이들은 같은 해 말 뮤지컬 ‘정글 라이프’에서 ‘노력형’ 홍호란 부장과 ‘금수저형’ 오래오 상무 역으로 상극 케미를 보여줬다. 올 3~5월엔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에 함께 출연해 부부 케미를 발산했다. 함께 작업하는 걸 피하진 않지만 연달아 함께 작품에 출연하면 관객이 지루함이나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염려됐다. 하지만 그 부담감도 무색하게 한 게 대본의 매력이었다.

현실도피 흡혈귀 vs 살기 위해 해고하려는 사장

“이용균 연출이 캐스팅 당시 둘이 서로 맞닥뜨리는 장면이 거의 없다고 해서, 색다른 호흡을 보여줄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본을 보고 단숨에 매혹됐습니다. 판타지 속 흡혈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한 페이지를 찢은 듯한, 가슴에 와 닿는 우리네 이야기로 다가왔거든요. 또 꼭 흡혈귀만이 주인공이 아니에요. 아이를 잃고 사채 빚에 시달리는 사장부터, 사랑하는 아이와의 추억으로 드림월드를 절대 팔 수 없는 아내 미봉의 사연이 안타깝고요. 그런 미봉을 몰래 사랑하는 흡혈귀 바냐, 현실 감각이 없는 엄마 쏘냐와 오빠 바냐 대신 소녀가장 역할을 하는 막내 흡혈귀 아냐까지…. 각 등장인물에 아픈 사연이 있죠.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미션 같이 힘든 현실에서,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글 라이프’에서의 유쾌한 호흡을 기대했다면 의외일 수 있다. 실제 부부인 이들이 극 중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상황이 연출돼 공연 내내 유쾌한 웃음이 빵빵 터졌던 기억이 강렬하다. 하지만 ‘상자 속 흡혈귀’는 섬뜩한 웃음이 존재하는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한 예로 사채업자 해피머니의 대표는 돈을 갚지 못하는 사장에게 굉장히 발랄한 노래로 “당신의 가족은 바로 우리의 가족”이라며 신체 포기 각서를 종용한다. 밝게 웃는 표정으로 ‘가족’이란 단어를 반복하는데, 나중엔 단어가 거꾸로 들려 욕 같이 들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박태성은 그간 많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이렇게 장난기 없이 진중한 이야기와 캐릭터는 처음인 것 같다고.

“그간 나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왔지만 사장은 제게 또 다른 연기 욕심을 준 캐릭터였습니다. 자신의 꿈과 청춘을 다 바친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이젠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남자…. 그 상처의 깊이를 감히 제가 다 이해한다고 할 순 없지만 표현하고픈 욕심이 생겼어요.” (박태성)

문혜원도 연기 인생에 있어 첫 흡혈귀 도전으로 색다른 변신을 했다. 극 초반엔 혼자 과거 시대에 사는 듯한 동떨어진 행동과 어투로 웃음을 준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딸 아냐와 아들 바냐를 지키려는 모성애를 드러낸다. 인간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생활에 지쳐 유일한 약점인 햇빛을 쏘여 한 줌 재가 되고 싶지만, 아이들을 생각해 꿋꿋이 버틴다. 그리고 극한 상황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자신들을 몰아붙이는 인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 복수심을 터뜨리며 극 초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엔 흡혈귀라서 파워 있고 화려한 역할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구박 받는, 가련한 캐릭터더군요. 그런 점에 오히려 공감이 갔고 더 끌렸습니다.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어요.” (문혜원)

▲문혜원(위)은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인간에 대한 증오 속에서 살아가는 흡혈귀 쏘냐 역을 맡았다. 쏘냐는 힘든 현실 속 현실도피적인 성향을 띄며 늘 TV 앞에 앉아 막장 드라마를 본다. 사진 = 네버더레스

함께 작품을 할 때는 서로 든든한 조언자가 된다. 박태성은 초등학교 6학년 때 EBS 드라마 ‘감성세대’를 시작으로 tvN ‘롤러코스터’, 드라마 ‘마의’ ‘아름다운 그대에게’, 뮤지컬 ‘정글라이프’, 독립영화 ‘명왕성’ 등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20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다. 문혜원의 필모그래피도 화려하다. 록밴드 뷰렛의 리더로서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2006년 ‘황진이’로 뮤지컬계에 데뷔한 이후 ‘노트르담 드 파리’ ‘잭 더 리퍼’ ‘헤드윅’ 등의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

우리네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의 매력

문혜원은 “결혼 이전에도 남편을 연기자로서 존중해왔다. 남편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남편은 보다 내가 전문성을 갖춘 음악 부분에 대해 의견을 구하곤 한다”며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흡혈귀를 강하게 표현할지, 철없게 표현할지, 사장의 아픔은 어느 정도일지 등 연습이 끝나고 집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부부인데 뒤끝이나 견제가 전혀 없냐”고 묻자 “그랬으면 ‘상자 속 흡혈귀’ 무대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그런데 요새 우리 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농담을 던져 또 웃음을 자아냈다.

부부가 함께 공감대를 갖는 작품엔 유독 창작 뮤지컬이 많다. 이번 ‘상자 속 흡혈귀’도 그렇고, 애초 부부의 연을 맺게 해준 ‘달을 품은 슈퍼맨’, 결혼 이후 호흡을 맞춘 ‘정글 라이프’와 ‘한밤의 세레나데’까지 모두 창작 뮤지컬이다. 첫 뮤지컬 출연작 ‘미라클’과 ‘황진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창작 뮤지컬과 이들의 인연은 유독 특별해 보인다.

“창작 뮤지컬로 뮤지컬계에 처음 발을 들였어요. 이후 대극장에서 라이선스 뮤지컬도 출연했는데, 체계화된 점이 좋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참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죠. 창작 뮤지컬은 틀이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로운 점도 있었지만 그만큼 과정이 힘들었어요. ‘상자 속 흡혈귀’도 창작 초연이라 대본을 보고 동선을 만들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까지 모두 함께 논의했습니다. 부담이 많이 됐지만 함께 머리를 모아 만든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순간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어요. 지금 저희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순간이 앞으로 발전할 ‘상자 속 흡혈귀’의 기본 바탕과 밑거름이 되겠죠.” (박태성)

문혜원은 창작 뮤지컬을 직접 구상 중이다. 록 스피릿을 바탕으로 한 여고생의 성장 이야기다. 직접 대본 및 작사-작곡까지 맡으려 한다고.

▲박태성이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서 열연 중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장을 연기한다. 사진 = 네버더레스

“저의 정체성을 고민했어요. 저보다 노래 잘하고,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전 어떤 한 분야의 대가는 아니지만, 다양한 분야의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록 음악을 바탕으로 창작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 틈틈이 대본을 쓰고 있어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포맷의 공연을 생각 중이에요. 남편 캐스팅이요? (웃음) 처음엔 1인극 형태가 될 것 같아요.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늘 가슴에 품은 꿈이에요.” (문혜원)

이외 또 다른 꿈을 부부는 실천 중이다. 일반 예식이 아닌 콘서트 형식의 결혼식으로 주목받았는데, 지난 3월 1주년 결혼기념일에 결혼식을 올린 공연장에서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공연의 모든 수익금은 서울대병원 소아암센터에 기부했다. 문혜원의 아이디어였다고.

“결혼기념일에 근사한 곳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무언가 뜻 깊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그때 아내가 자선 콘서트를 제안했고요.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자선 콘서트 등 작게나마 저희 부부의 힘을 보낼 수 있는 행사를 열려고 해요. 그 행사의 주인공은 저희가 아니에요. 많은 분이 참여해 함께 뜻을 모았거든요. 그 분들에게 모두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내년엔 소규모로 아기자기하게 열 계획이에요.” (박태성)

처음엔 ‘정글 라이프’에서의 코믹한 호흡이 인상적이었지만, ‘상자 속 흡혈귀’에서 이들을 다시 만나고 공연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우 각각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항상 어제와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도전을 이어가는 이들은 “시작은 조금 거칠지 몰라도 마무리는 굉장히 잘 다듬어진 하나의 예술 조각품으로 남지 않을까”라며 현재 공연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동시에 전했다.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는 대학로 SH아트홀에서 12월 31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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