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디자인 시리즈 ⑪ 포르쉐] “SUV·세단에도 스포츠카 DNA”
▲2014년형 포르쉐 911 터보 카브리올레. 사진 =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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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안창현 기자) 흔히들 ‘포르쉐 DNA’를 말한다. 포르쉐를 포르쉐답게 만드는 것, 포르쉐의 전통과 자부심에 대한 얘기다. 포르쉐 DNA는 자동차 디자인에서 뚜렷하다. 브랜드의 디자인 전통을 확고히 공유하면서 저마다 같은 혈통임을 뽐낸다.
스포츠카 라인업인 911, 박스터, 카이맨과 SUV인 카이엔, 마칸, 포르쉐의 스포츠 세단 파나메라까지 모델에 관계없이 포르쉐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령 911과 카이엔은 스포츠카와 SUV라는 전혀 다른 차종이지만, 공통된 실루엣을 지니고 있다. 높게 솟아오른 헤드라이트와 그보다 낮게 디자인된 보닛 형태가 대표적이다. 차 전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 독특한 형태는 포르쉐의 모든 모델에 예외 없이 적용돼 패밀리 룩을 형성하고 있다.
낚싯줄이 포물선을 그리는 형태를 말하는 ‘플라이 라인(fly line)’ 역시 포르쉐의 후면부에 공통적으로 적용됐다. 루프 라인의 경사가 뒤쪽으로 점차 낮아지면서 뒷바퀴 휠에서 마무리되는 전형적인 포르쉐 형태를 보여준다. 911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 이 플라이 라인은 최근 출시된 마칸에서도 볼 수 있다.
포르쉐는 반세기가 넘는 브랜드 역사에서 일관되고 뚜렷한 디자인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최고 속도 350㎞/h를 넘나드는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1] 전통과 혁신의 경주차 명가
포르쉐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모터스포츠에 있다. 차 시동을 거는 이그니션 키 위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그니션 키는 운전자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포르쉐는 왼편에 있다.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운전자가 왼손으로 열쇠를 꽂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기어를 조작해 출발 시간을 줄이도록 하는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모든 포르쉐 차량에 적용되는 특징이다.
▲카이엔 S E-하이브리드는 도심에서 편하게 충전할 수 있다. 사진 = 포르쉐 코리아
스포츠카로 뚜렷한 개성을 지닌 포르쉐의 탄생은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는 당시 혁신적인 차로 평가받은 ‘포르쉐 356’을 개발했다.
이 차는 폭발적 성능을 앞세워 출시되자마자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했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포르쉐는 전 세계 자동차 대회에서 2만 8000번 이상 우승을 차지하는 등 모터스포츠의 전설이 됐다. 포르쉐는 국내 진출한 수입차 중에서도 폭발적인 스피드와 포르쉐 특유의 날렵한 몸매로 눈길을 끌고 있다.
폭스바겐 비틀과 포르쉐 356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1938년 첫 선을 보인 이후 독일의 국민차로 불리며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은 폭스바겐 ‘비틀’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폭스바겐 비틀은 “자동차를 대중적으로 보급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 2명과 어린이 3명이 탈 수 있고, 1리터 휘발유로 10㎞를 달리며, 무게는 660㎏ 이하에 고장이 잘 나지 않고 튼튼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국민차로서 가격도 저렴해야 했다.
포르쉐 박사는 이런 조건을 고려해 단순함과 실용성을 모두 갖추고 수평대향 엔진을 장착한 후륜구동차를 개발했다. 1938년 만들어진 ‘Kdf 타입 1’이라 불린 모델은 비틀의 원형이 됐고, 1945년 이후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포르쉐 911의 아버지,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 사진 = 포르쉐 코리아
전쟁 이후 포르쉐 박사는 아들 페리 포르쉐와 함께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포르쉐 디자인 사무실을 열었다. 페리는 포르쉐가 독립적인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1948년 등장한 포르쉐의 첫 스포츠카 356 제작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포르쉐 356은 낮은 공기저항을 위한 유선형 차체가 특징이었다. 우수한 승차감과 뛰어난 도로 주행 성능, 스포츠카로서의 매력적인 스타일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356은 폭스바겐 비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마치 비틀을 좀 더 매끈하게 다듬고 납작하게 눌러놓은 듯한 디자인만 봐도 두 모델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 포르쉐 356은 생산 초기 폭스바겐의 1.3ℓ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엔진과 트랜스미션, 서스펜션 등의 부품을 공유하기도 했다. 엔진은 차체 뒤쪽에 탑재됐고, 후륜구동 방식을 채택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소재의 포르쉐 박물관. 사진 = 위키미디어
356은 이후 쿠페와 카브리올레, 스피드스터 등 다양한 모델이 출시됐고, A~C 타입으로 개량을 거듭하며 1965년까지 약 7만 7000대가 생산됐다.
356은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낡은 모델로 인식됐다. 포르쉐 내부에서는 좁은 실내와 트렁크 공간, 투박한 외관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페리 포르쉐는 당시 트렁크에 골프백 정도는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페리는 디자이너 출신에 ‘부치’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자신의 장남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와 함께 기존 356보다 강력하면서 넓은 실내를 가진 스포츠카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는 포르쉐를 상징하는 모델인 911이었다.
세대 거듭하며 혁신 이뤄
911의 디자인은 부치 포르쉐의 작품이었다. 부치는 1960년대 초반 포르쉐 내부에 디자인 부서를 따로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포르쉐 디자인 그룹의 설립자가 됐다. 포르쉐 가(家)에서 세대를 거듭하며 스포츠카의 역사를 만들어간 셈이다.
911은 1963년 출시된 이후로 2011년 7세대로 진화했다. 991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여진 7세대 스포츠카는 911 역사상 가장 큰 기술적 도약을 실현했다는 평가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스포츠카 라인업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 911이 성능과 효율성을 한 단계 더 높였기 때문이었다.
낮고 늘씬한 실루엣, 탄탄한 표면, 정밀하게 성형된 디테일을 자랑하는 포르쉐 911 카레라는 이전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7세대로 접어들어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911만의 특징을 계승했다.
▲포르쉐 박스터 GTS. 사진 = 포르쉐 코리아
페리 포르쉐는 자신이 디자인한 911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강조하면서 “911은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르망 경주장으로, 다시 극장에서 뉴욕 거리로 몰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차”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의 말처럼 포르쉐는 전통을 고수하면서 카이엔이나 파나메라를 통해 “SUV, 세단도 포르쉐 스포츠카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나갔다.
“모든 세그먼트에서 스포츠카를 출시한다”는 포르쉐의 지향점은 콤팩트 SUV 시장에서도 포르쉐만의 개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인도네시아어로 호랑이를 뜻하는 마칸은 호랑이처럼 파워풀한 스포츠카 성능을 자랑하는 포르쉐의 콤팩트 SUV다.
마칸은 어느 도로에서든 다이내믹하고 즐거운 드라이빙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르쉐가 표방하는 전형적인 핸들링의 장점을 살려 최대 가속력과 제동성, 엔진 파워와 민첩성 등 스포츠카의 개성을 지녔다. 이런 특징이 SUV의 안락함, 일상에서의 기능성과 조화를 이뤘다는 게 포르쉐의 주장이다.
마칸의 넓게 펼쳐진 듯한 보닛과 은근한 경사를 이루는 루프 라인은 스포티한 아름다움과 강렬한 역동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포르쉐의 다른 스포츠카로부터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차용해 다듬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순간부터 콤팩트 SUV 세그먼트에 문을 두드린 포르쉐의 첫 스포츠카임을 알아볼 수 있다.
스포츠카 메이커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사실 2002년 포르쉐가 첫 SUV 라인업 카이엔을 선보였을 때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포르쉐를 타거나 포르쉐를 동경하는 이들이 가족용 SUV로 카이엔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2009년 출시된 파나메라 모델도 포르쉐가 스포츠카 메이커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변신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파나메라는 세단 형태를 지닌 스포츠카로, 새로운 세그먼트라고 할 수 있다. 4인승 그란 투리스모로 스포츠카의 역동적 성능과 세단의 우아함을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다.
[2] 포르쉐의 아이콘 ‘911’ 변천사
포르쉐 911은 종종 ‘클래식과 모던의 공존’이란 평가를 받는다. 911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둥근 헤드라이트와 차체 후방으로 끊어짐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루프 라인이다. 포르쉐의 이런 루프 라인은 자동차 발명 이전에 쿠페 타입 마차에서 볼 수 있던 형태였다. 클래식 쿠페 디자인을 계승한 결과다.
포르쉐 911은 1964년 등장한 1세대 모델의 이름이다. 2세대 모델은 930, 3세대에는 964라는 코드네임이 붙었다. 몇 차례 개량을 거듭한 끝에 현재는 7세대 모델인 991이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1세대에서 7세대까지 전 모델이 911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모델의 코드네임이 세월을 거치면서 라인업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첫 선을 보인 1세대부터 최근 7세대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며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지만, 911이 가진 독특한 개성에는 변함이 없다. 911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포르쉐와 정통 스포츠카의 혈통을 계승한다고 할 수 있다.
① 오리지널 911 - 아이콘의 탄생
첫 911은 196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타입 901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지만, 64년 출시를 앞두고 911로 개명됐다. 이 모델은 공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얹고, 130마력을 뿜어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빠른 210㎞/h의 최고 출력을 보였다.
▲1964년 911 1세대. 사진 = 포르쉐코리아
포르쉐는 조금 덜 빠른 속도로 운전하길 원하는 운전자들을 위해 4기통 엔진을 얹은 보급형 912를 출시했고, 1966년에는 991 S를 내놨다. 160마력을 자랑하는 이 차는 911 최초로 푹스(Fuchs) 디자인의 알로이 휠(스포크 내부가 비어 있는 휠)을 장착했다. 이듬해부터는 4단 세미 오토매틱 변속기인 ‘스포토매틱(Sportomatic)’이 911에 장착됐다.
포르쉐는 911 T, E, S 모델을 차례로 선보이며 미국 환경 보호국의 엄격한 배출가스 규제를 만족시킨 최초의 독일차 메이커가 됐다. 911은 엔진 배기량을 1969년에 2.2ℓ에서 1971년 2.4ℓ로 늘리며 점점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1972년 출시된 911 카레라 RS 2.7은 오늘날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는 모델이다. 1000㎏에 불과한 중량으로 210마력을 뿜어내는 이 차는 세계 최초로 양산차에 기본 채택된 리어 스포일러인 ‘덕테일(ducktail)’로 개성적 외관도 뽐냈다.
② 새로운 세대의 911
포르쉐 기술자들은 첫 번째 911이 탄생한 지 10년 후 대대적인 개량 작업에 들어갔다. G-모델로 알려진 새로운 911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생산되며, 911 시리즈 가운데 최장수를 누렸다. 이 차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인상적인 벨로우즈(bellows) 스타일의 범퍼로, 새로운 미국 충돌 테스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채택됐다.
▲1973년 G-모델. 2세대. 사진 = 포르쉐코리아
1974년에는 911 역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260마력을 내는 3ℓ 엔진과 리어 스포일러로 무장한 최초의 911 터보가 출시된 것이다. 럭셔리와 고성능을 독특하게 조합한 911 터보는 이후 포르쉐 브랜드의 대명사가 됐다.
1977년에도 다시 한 번 성능이 향상돼 911 터보 3.3은 과급 공기 냉각기를 탑재하고 300마력의 힘을 자랑하면서 동급 최고 성능의 스포츠카로 등극했다. 1982년부터는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려는 운전자를 위해 911 모델에 컨버터블 버전도 추가됐다. 1989년 포르쉐는 911 카레라 스피드스터를 선보이며 시리즈를 이어갔다.
③ 전통의 현대적 해석
포르쉐는 1988년 911 카레라 4(타입 964)를 발표했다. 생산된 지 15년째를 맞이한 911은 85%에 가까운 부품을 새롭게 설계해 오래도록 경쟁력을 지닐 현대적인 차로 거듭났다. 공랭식 수평대향 3.6ℓ 엔진은 250마력의 출력을 냈다.
▲1988년의 타입 964. 3세대. 사진 = 포르쉐코리아
3세대 모델이 이전 911과 외관상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공기역학적인 폴리우레탄 범퍼와 전동 개폐식 리어 스포일러 정도였다. 하지만 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두 차종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911은 스포티한 성능은 물론 편안한 운전 환경을 통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덕분에 운전자는 ABS, 팁트로닉 자동 변속기, 파워 스티어링, 에어백 등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섀시 계통도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토션바 서스펜션 대신 합금으로 제작한 위시본과 코일 스프링을 채택했다.
신형 911은 처음으로 사륜구동 장치를 선보였고, 후륜구동 방식의 카레라 2도 이후 출시됐다. 1990년부터는 쿠페, 컨버터블, 타르가 모델에 이어 964 터보도 주문이 가능했다. 초기에는 입증된 성능의 수평대향 3.3ℓ 엔진을 적용했지만, 1992년부터 터보는 360마력 3.6ℓ 엔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911 카레라 RS, 터보 S, 카레라 2 스피드스터는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여전히 인기를 끄는 모델이다.
④ 마지막 공랭식 엔진의 911
코드네임 993으로 불린 911 4세대는 지금도 많은 포르쉐 운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차체의 아름다운 라인이 주목받았다. 일체형으로 된 범퍼는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인상을 강조했고, 헤드램프 모양에 변형을 줘 전면부를 기존 모델보다 더 납작하게 만들었다.
▲1993년의 타입 993. 4세대. 사진 = 포르쉐코리아
4세대에는 911 최초로 새로 설계된 알루미늄 섀시를 채택해 뛰어난 민첩성도 자랑했다. 터보 모델 최초로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해 1995년 ‘세계에서 가장 공해가 적은 양산 엔진’으로 선정됐다. 포르쉐는 초고속 스포츠카를 원하는 운전자들을 위해 911 GT2를 새롭게 제작하고, 911 타르가는 리어 윈도우 뒤쪽으로 이동하는 전동식 선루프를 선보였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생산된 4세대 모델에 열혈 포르쉐 애호가들은 유독 애착을 보이곤 하는데, 이는 이 모델이 공랭식 엔진을 장착한 마지막 911이었기 때문이다.
⑤ 수랭식 엔진의 시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생산된 5세대 타입 996은 911 시리즈에서 전환점을 이룬 모델로 평가받는다. 전통적인 911의 특징을 희생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완전히 새로운 911로의 변신을 꾀했기 때문이다.
▲1997년의 타입 996. 5세대. 사진 = 포르쉐코리아
이 새로운 세대의 911은 최초로 수랭식 수평대향 엔진을 얹었다. 4밸브 기술을 바탕으로 300마력을 냈고, 배기가스 수치나 소음 및 연비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이 차는 911의 전통적인 라인을 새롭게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0.3의 뛰어난 공기저항계수를 기록했다. 996은 박스터와 많은 부품을 공유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윤곽에서도 적지 않은 유사성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디자인 요소는 방향지시등이 내장된 전면 헤드라이트였다. 처음에는 논란이 많았지만 이후 타 제조사들도 이 형태를 모방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실내도 많이 바뀌었다. 전통적으로 스포티한 감각을 내세웠다면, 이제는 안락한 드라이브에 대한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쪽으로 변해갔다.
포르쉐는 996을 베이스로 여러 종류의 가지치기 모델을 선보이며 전례 없는 제품 공세를 펼쳤다. 모델 범위에서 가장 주목할 차종은 1999년 시판된 911 GT3로, 카레라 RS의 전통을 계승했다. 그리고 2000년 가을에는 세라믹 브레이크를 기본 장착한 스포티한 911 GT2도 출시했다.
⑥ 전통과 현대의 조화
6세대 997은 911의 전통적 디자인으로 회귀했다. 전면부에 타원형의 투명 유리로 덮인 헤드라이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모델은 특히 성능 면에서 주목받았다. 카레라의 수평대향 3.6ℓ 엔진은 325마력을 자랑했고, 새로 개발된 카레라 S의 3.8ℓ 엔진은 355마력 이상을 냈다.
▲2004년 타입 997. 6세대. 사진 = 포르쉐코리아
2006년 포르쉐가 선보인 911 터보는 양산차 최초로 가변 터빈 지오메트리 방식의 터보차저를 가솔린 엔진에 결합했다. 2008년 가을 업그레이드된 997은 가솔린 연료 직분사 장치와 다이렉트 시프트 기어박스(DSG)로 효율성을 더욱 높였다.
911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운전자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해 모델 범위를 크게 늘렸다. 카레라, 타르가, 컨버터블, 후륜 및 사륜 구동, 터보, GTS, 스페셜 에디션, GT 레이싱카 도로용 버전 등이 추가되면서 결국 911 패밀리는 24개 모델을 가지게 됐다.
⑦ 완성의 경지
991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여진 7세대 모델은 911 역사상 가장 큰 기술적 도약을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선된 휠베이스와 넓어진 트랙, 더욱 강건해진 타이어로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섀시와 인체공학적으로 최적화된 인테리어 공간은 더욱 스포티하고 편안한 드라이빙을 선사한다는 평이었다.
▲2011년 타입 991. 7세대. 사진 = 포르쉐코리아
공학적으로 볼 때 이 911은 더 적은 연료로 더 강력한 파워를 제공하는 ‘포르쉐 인텔리전트 퍼포먼스’ 철학을 충실히 따랐다. 기본 카레라 모델의 엔진 크기를 3.4ℓ로 줄였지만 997보다 출력이 5마력 높아졌고, 강철과 알루미늄을 혼용한 하이브리드 차체 구조 공법을 채택해 상당한 중량 감소를 이뤘다.
안창현 기자 isangah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