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황량한 커피샵의 따뜻한 인생살이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도키 엔터테인먼트/홀리가든 배급)은 대만 여류감독 치앙시우청(姜秀瓊)이 만든 최근 일본 영화(2014년)다(국내 개봉은 11월 5일). 작은 스케일의 영화라는 점에서 올해 개봉되었던 일본 영화 ‘심야식당’과도 비교할만하다. 외면적 차이는 ‘세상의 끝에서…’가 대도시를 떠나 외딴 해안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란 점이다. 해안가의 커피점 여주인과 근처에 사는 싱글맘, 그녀의 두 아이들이 경험하는 짧은 시간 동안의 이야기다.
또한, 이 영화는 매우 일본적인 영화다. ‘일본적 영화’라는 것은 ‘심야식당’이나 이전의 여러 일본 영화들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요소로서, 작은 범위에서 각자 사연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의 드라마가 있는 영화라는 뜻이다. 사실, 일본 영화들 가운데는 이런 ‘작은 스케일의 작은 드라마 영화’들이 많다. 아마도 일본인들의 생활감각 내지 일본 관객들의 취향이 여기에 경도되어 있기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은 가족들과 분리되거나 사회 체계에서 이탈하거나, 낙담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따스하고 아기자기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영화들은 저예산인 데다 유명하지 않은 감독들도 만들 수 있고, 또 제작과정에서는 작은 세계 속에서의 드라마 구성을 위해 감독이 조감독ㆍ작가와 보다 긴밀하게 협력하게 되니 유익한 제작과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여주인공 미사키는 아버지가 8년 전 어선을 탔다가 실종된 이후 해안가에 아버지가 남겨둔 작은 창고를 커피점으로 개조해 영업하며 아버지를 무작정 기다린다. 그 바로 언덕 위에는 인근 도시에서 일한다지만 실제로는 콜걸 노릇을 하는 거칠고 조야한 싱글맘과 그녀의 천진난만한 두 아이들이 살고 있다. 맏딸은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자주 집을 비우는 엄마를 대신해 초등학교 1학년인 어린 동생에게 컵라면을 차려주는 등 제법 성숙하게 행동한다.
그런데 외진 해안가 마을은 여자들만 살기에는 편안하지 않다. 드센 바다 바람과 파도 소리가 일으키는 무서움이 있고, 외로움도 있으며, 밤에는 커피점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는 남자도 있다. 그 남자는 아빠가 없는 싱글맘 아이들의 집에도 얼씬거리고, 아이들은 그를 싫어한다. 이내 아이들은 커피점 여주인에게 다가가 서로 친구가 된다.
싱글맘 에리코는 여주인을 싫어하다가 나중에 성폭행을 떼어 말린 후 역시 친구가 된다. 이런저런 작은 사건들을 통해 실종된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커피점 여주인 미사코와, 각성하고 제대로 살아가는 싱글맘과 두 아이들은 모두 정겨운 친구가 된다. 여기서 영화는 따스하고 작은 감동을 선사한다.
두 유명 여배우보다 더 눈길 가는 어린 남매
황량하고 삭막한 배경이 되는 촬영지는 일본 혼슈(本州) 중부 서해안이자 한국의 동해 방향으로 튀어나온 작은 반도가 있는 노토(能登) 반도의 해안가라고 한다. 커피점 주인으로 나오는 여주인공은 ‘일본의 전도연’이라는 연기파 배우 나가사쿠 히로미(永作博美)가 맡았다. 싱글맘 역은 모델 출신의 유명한 배우 사사키 노조미(佐夕木希)가 맡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들의 연기력은 대단치 않다.
이들보다 인상 깊은 역할을 보여준 것은 싱글맘의 두 아이들이다. 어린 동생을 돌보고, 급식비도 못내는 초라한 형편에서 커피점에 가서 일하고 돈을 벌기도 하며 성숙한 의식을 지닌 초등학교 3학년 소녀와, 아직 응석받이인 소년은 외지에서 온 커피점 여주인과 스스럼없이 친해지며 따뜻한 우정을 보여준다. 어른들이 못하는 것을 순수한 형태로 한다.
그 때문에 영화는 실상 외딴 해안가 커피점 여주인의 성공담이나 커피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싱글맘의 꿋꿋한 삶도 아니고, 두 아이들이 보여주는 인간관계가 주인공이다. 이런 유형의 일본 영화들은 사회 한 구석에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처음에는 부딪치지만 서로 이해하기를 배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상면 편집위원, 연극영화학 박사)
이상면 편집위원 zenit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