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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6일차 (라오스 비엔티안)
메콩강 우정의 다리
열차는 아침 6시 농까이에 도착했다. 긴긴 10시간의 불편한 야간열차 이동을 견뎌냈다. 연중 열대야가 있는 태국 중부 혹은 남부와는 달리 여기는 새벽 공기가 차다. 농까이 역에서 뚝뚝으로 2km 이동하니 버스터미널…. 그곳에서 20바트에 탄 버스는 태국-라오스 국경 우정의 다리를 건너 라오스 입경 사무소까지 데려다 준다.
호주의 무상 원조로 1994년 메콩강 위에 완성한 우정의 다리(Friendship Bridge)는 도로와 철도 공용이지만 하루 두 차례 국경 열차가 통과할 때는 안전을 위해 잠시 자동차 이용이 중지된다고 한다. 새벽 시간이라서 그런지 태국 출경, 라오스 입경은 비교적 신속하다. 강을 건너 낯선 국경을 넘는 감회가 특별하다.
대접받는 한국 여권
라오스 입경 시 대부분 여행자들은 도착 비자를 받기 위해 미화 30달러가 필요한데 한국 여권 소지자는 일본, 러시아, 몽골, 그리고 아세안(ASEAN) 국가(브루나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라오스,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국민과 함께 비자 면제 대상이다.
서구 여행자들이 도착 비자를 받느라고 긴 줄을 서서 수속을 하는 사이 신속히 라오스에 입국하는 기분이 괜찮다. 입국장을 나오니 미니 트럭을 개조한 승합차가 40바트(태국 화폐도 받음)에 비엔티안 시내 중심 아침 시장까지 데려다 준다. 성조가 요란하게 오르내리는 라오스어를 계속 들으며 간다.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언어는 같은 어군(語群)이라서 문자도 그렇거니와 음성 언어도 구분이 잘 안 된다.
▲1818년 왓시사켓을 건립한 아누봉 왕의 동상이 서 있다. 사진 = 김현주
비엔티안 또한 동양의 파리
태국-라오스 국경에서 비엔티안까지 들어가는 도로변에 각종 건축이 한창이다. 오랜 잠을 깬 라오스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행사에 들러 오늘 저녁 루앙프라방행 야간 버스표를 구입하고 그곳에 여행 가방을 맡긴 뒤 도시 탐방에 나선다. 밤낮 쉬지 않고 덥다가 오랜만에 선선한 아침 공기를 쐬니 살 것 같다. 멋을 내 지은 공공건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넓은 거리, 널찍한 공원 등 프랑스식 도시 설계 또한 시원스럽다. 풍족하지 않은 나라 살림에도 공들여 가꾼 도시다.
비엔티안(Vientiane)은 현지어로는 ‘위양짠’이다. ‘백단향의 도시’라는 뜻이지만, 프랑스인이 발음을 쉽게 하려고 자기들 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소박하고 목가적인 수도일 것이다. 9세기에 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해 1560년 북쪽 루앙프라방에서 이곳으로 수도가 옮겨온 뒤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다가 외세 침략과 내분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사이 1799년 시암에게 함락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1828년엔 아누봉(Anouvong) 왕이 시암에 저항했다가 실패한 뒤 완전히 파괴된다. 1899년 프랑스 보호령의 수도가 되면서 부활하지만 1928년까지만 해도 인구는 9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노란 스투파와 파란 하늘의 조화
뚝뚝을 대절해 먼저 비엔티안의 상징물이자 라오스의 국가적 기념물인 파탓루앙(Pha That Luang)을 찾는다. 위대한 불탑(stupa)이라는 뜻이다. 높이 45m인 탑은 1566년 최초 건립됐다가 파괴된 후 1953년 오늘날 모습으로 복구됐다. 석가의 머리털과 가슴뼈가 들어있다고 전해지는 라오스 양식의 스투파는 연꽃 봉우리를 형상한다. 노란 스투파와 파란 하늘이 절묘하게 색의 조화를 이룬다.
담장 건너 의사당 또한 파탓루앙과 콘셉트의 조화를 이룬다. 사원 바깥 광장엔 하얀 무명용사비가 있는데 이것 또한 독특한 라오스 양식이다. 바깥으로 나오니 주차장 일꾼이 입은 조끼에 쓰인 한국어가 눈에 들어온다. 00 대학교, 00 노동조합 등의 글씨다. 아마도 라오스 봉사 활동을 다녀 간 한국인이 주고 갔을 것이다. 라오스의 명소답게 파탓루앙에는 중국인 단체, 태국인 단체 등 외국 관광객이 많다. 그 중 불심 깊은 태국 관광객은 정중하게 불교 의식을 올린다.
▲드넓은 메콩강. 가뭄으로 메마른 강변 풍경이 안타깝다. 사진 = 김현주
이어서 파투싸이(Patuxai)로 이동한다. 1957년 건축을 시작해 1968년에 완성한 승리 기념비로서 파리 개선문을 본땄지만, 라오스 양식을 독특하게 결합한 7층 높이의 랜드마크다. 파리 개선문에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 것에 비해 파투싸이는 네 개의 출입구가 있고, 내부 천장은 라오스 양식을 살린 독특한 문양으로 장식했다. 광장 옆에 있는 총리 공관 또한 멋진 공공건물이다.
시암의 침공과 도시 파괴
대통령궁 건너편 에메랄드 부처를 모시고 있는 호프라케오(Ho Pra Keo) 사원은 왕실 전용 사원이다. 1565년 건립했으나 1828년 시암의 침입으로 파괴된 것을 1936년 재건축했고, 1970년대 박물관으로 개조해 각종 불교 조각품과 불교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바로 옆 왓시사켓(Wat Sisaket) 사원은 1818년 아누봉 왕이 건립한 것으로, 시암의 침공과 도시 파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건축물이다. 비엔티안의 다른 많은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색이 화려해 사진을 잘 받는다. 사원 울타리 내부 벽면을 채운 6840개의 작은 불상 또한 숨 막히는 광경이다.
▲비엔티안의 상징물이자 라오스의 국가적 기념물인 파탓루앙. ‘위대한 불탑’이라는 뜻으로, 45m 높이를 자랑한다. 파란 하늘과 절묘하게 색의 조화를 이룬다. 사진 = 김현주
메마른 메콩강
비엔티안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 규모나 날씨, 평탄한 지형에 비춰 볼 때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 딱 좋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메콩강변으로 나가니 아누봉(Anouvong) 왕의 동상이 조국 해방의 못다 이룬 꿈을 품고 메콩강 남쪽 태국 땅을 가리키고 있다.
아무리 갈수기라지만 메콩강에 물이 말랐다. 메콩강에 의지해 살아온 인도차이나 여러 나라 7000만 명의 주민에게 위기가 불어 닥친 것이다. 메콩강 상류 운남성에 발전과 용수 공급을 위해 중국이 여러 개의 댐을 건설한 것도 중요한 이유다. 강변 여기저기엔 중국 자본이 투입된 개발이 한창이다. 강변을 따라 널찍한 산책로와 공원이 들어선 모습이 캄보디아 프놈펜과 비슷하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탓담(That Dam)이 도심 풍경에 한 몫 한다. 원래 금으로 전체를 뒤덮었으나 1828년 시암 침공 시 전부 벗겨져 나갔다.
이웃나라끼리 물고 물린 인도차이나
마지막으로 국립 박물관을 방문했다. 입구에 있는 라오스 지도가 내륙국 라오스의 지정학적 조건을 말해 준다. 서쪽으로는 미얀마, 북쪽엔 중국, 동쪽과 남쪽으로는 가장 긴 국경을 접한 베트남, 그리고 남쪽으로 태국이 라오스를 둘러싸고 있다. 어느 하나 만만한 이웃은 없다. 라오스만 빼놓고 인도차이나의 패권을 한번 이상 잡아 봤던 나라들이다.
▲파탓루앙을 구경하던 중 주차장 일꾼 조끼의 한국어가 눈길을 끌었다. 라오스 봉사 활동을 온 한국인이 주고 간 것 같다. 파탓루앙은 라오스의 명소답게 많은 외국 관광객이 방문한다. 사진 = 김현주
탈북 루트 라오스
메콩강의 경로를 자세히 살펴봤다. 북쪽 상류에서는 중국-미얀마-라오스가 국경을 접하면서 녹삼각(Green Triangle; 綠三角)을 이루는데 이곳은 바로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한 후 중국을 종단해 운남성에서 산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오는 지역이다. 험준한 산악 지역이고, 인구가 적으며, 공권력이 상대적으로 허술한 라오스가 중국과 태국 사이에 끼어 있기에 이곳이 주요 탈북 루트가 됐다. 라오스에서 메콩강만 건너면 태국이자 자유세계인 것이다.
골든 트라이앵글
메콩강 중상류에서는 미얀마-라오스-태국 국경이 만나면서 금삼각(Golden Triiangle; 金三角)을 이룬다. ‘금삼각’이라는 멋진 이름과는 달리 지금은 백기를 들었지만 한때 마약 킹핀 일당의 치외법권 지대로 악명을 떨친 곳이다. 이제 이곳은 경제 자유 구역이 돼 중국 자본의 도움으로 개발이 한창이다. 금삼각을 지난 메콩강은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을 거쳐 라오스 중부를 적시며 비엔티안을 지난다.
박물관은 선사시대 관으로 시작해 라오스 각 지역의 지형과 산물, 고고학 출토물을 소개한다. 특히 메콩강 중류 고고학 발굴 작업과 세계 각국 팀의 지원을 상세히 소개한다. 2층은 고대사, 민족과 풍습을 소개한다. 라오스엔 대분류로 50종, 소분류로는 150종의 민족이 분포한다. 중국계, 베트남계, 캄보디아계, 타이계 이외에도 인도·파키스탄계까지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만큼 그 다양성은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의 얼굴을 통해 잘 나타난다. 인구 650만의 소국이지만 아시아 어떤 나라보다 다양한 민족 구성을 가지고 있다.
▲1957년 건축을 시작해 1968년 완성한 승리 기념비 파투싸이. 파리 개선문을 본땄지만 라오스 양식을 살린 독특한 건축물임은 분명하다. 사진 = 김현주
역사의 틈바구니에 낀 소국 라오스
다음 전시실은 버마, 시암, 크메르 등 인도차이나 인접 국가들의 라오스 침략 역사를 소개했다. 근대 이후에는 프랑스와 영국, 태국이 라오스를 분할 소유하려고 시도한 사건, 시암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번에는 프랑스 보호령이 돼 시작된 프랑스 식민자의 학정과 라오스의 저항(1893~1953), 1954년 제네바 협정에 따른 인도차이나 3국(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의 독립 과정이 소개된다. 베트남 호치민시 호치민 기념관에서 봤던 내용, 즉 여기서는(베트남에서는) 그렇게 잔혹하고 거친 프랑스인이 파리에 가보니 우아하고 점잖더라고 기술한 호치민의 기록이 생각난다.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
프랑스가 물러간 후 민족운동과 공산주의가 태동한 끝에 라오스 내전(1964~1969)에 이은 1975년 공산정부 성립(라오 인민 민주공화국, Lao PDR, Lao People’s Democratic Republic)의 긴박한 역사가 소개됐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에 대한 반감이다. 프랑스의 통치에 대해서도 강한 톤으로 ‘폭정과 착취’로 표현했듯이 ‘미 제국주의’라는 표현이 박물관 전시물 곳곳에 등장한다.
▲왓시사켓 사원의 모습. 1828년 시암의 침공과 도시 파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건축물이다. 화려한 색이 특징으로, 6840개의 작은 불상이 사원 울타리 내부 벽면을 채웠다. 사진 = 김현주
국립박물관이라기보다는 국정홍보관
이어서 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의 역할, 외교관계 수립 치적 등을 기록했다. 당연히 한국 관련 기록도 있다. 1993년 한국이 라오스 시판동 총리에게 선물한 은제 장식물이 전시돼 있다. 녹슨 것이 이상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기서 ‘코리아(Korea)’는 북한인 것이다. 한국과는 1995년 수교했다. ASEAN과의 관계를 중시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사실 전시물은 국립박물관이라기보다는 국정 홍보관에 가깝다. 그러나 국가적 긍지라는 일관된 주장을 담고 있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박물관을 나온다.
루앙프라방행 침대버스
해가 지고 다시 시원해지니 영락없는 전원도시 풍경이다. 시내 중심부는 밤이 되면 열리는 야시장으로 다시 활기를 띠지만 불빛이 부족한 도시 변두리는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루앙프라방을 비롯해 북쪽 행선지로 가는 버스는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북부터미널에서 출발한다. 버스는 밤 8시 30분에 출발한다. 그럭저럭 편안한 잠을 자는 사이 버스는 메콩 중류의 산악 지대를 구불구불 넘어간다.
(정리 = 김금영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