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석·김일동이 말하는 기부의 의미
▲‘몸짱’ 소방관들이 저소득층 화상 환자 치료비 마련을 위해 방화복을 벗고 근육질 몸을 뽐내며 2016년도 달력 제작에 참여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말이야 쉽지만, 나 혼자 살아남기도 벅찬 이 세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가운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기부의 의미를 실천하는 작가들의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몸짱 소방관 달력’ 만든 오중석
오중석 사진작가는 현직 소방관 14명과 디자인기업 에이스그룹과 함께 재능 기부에 나섰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화상 환자들의 치료비 지원을 위해 ‘2016년도 몸짱 소방관 달력’을 제작했다. 지난 2014년에도 달력 2500부를 완판해 수익금 전액을 화상 어린이를 위한 치료비로 지원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달력 수익금의 지원을 받은 신 모 군의 경우, 넉넉하지 못한 가계 상황으로 치료비 마련이 어려워 고통에 시달렸었다. 하지만 달력 기부금을 통해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현재 건강을 많이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엔 특별히 오 작가도 참여해 뜻을 함께 모았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그는 조세현, 김상곤, 이건호 등 작가들의 어시스턴트로 견습했다. 2001년 코스모폴리탄을 통해 패션 매거진에 데뷔했고, 이후 ‘보그’ ‘엘르’ ‘지큐’ 등과 작업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2년엔 하퍼스바자 코리아 ‘올해의 컨트리뷰터 사진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중석 작가가 찍은 소방관들의 모습. 현직 소방관 14명이 모델로 나섰다. 사진 = 서울시
오 작가는 이번 재능 기부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자신의 SNS에 소방관들의 작업과 관련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재능 기부의 조건은 단 두 개. 소방관들을 웃기게 찍지 않겠다. 소방관들이 달력 볼 때마다 자부심이 느껴지게 찍을 테니 내 마음대로 찍게 해달라”며 작업 과정을 밝혔다. 그의 바람대로 소방관들의 강한 남성미가 담긴 달력이 화제를 모았다.
소방관들은 휴일을 반납하고 오 작가의 카메라 셔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모델로 변신했다. 헬멧과 방화복을 벗고, 근육질 몸매를 뽐낸 소방관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달력에 담겼다. 이번 달력 제작에 함께 한 중부소방서 장인덕 소방장은 “화재 등 재난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분들이 높은 치료비용으로 치료를 포기한 사연을 접했을 때 매우 안타까웠다”며 참여 이유를 밝혔다. 해당 달력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12월 6일까지 판매된다. 수익금은 같은 달 24일 저소득층 화상 환자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오중석 “소방관이 자부심 느끼도록 촬영”
- ‘몸짱 소방관 달력’이 많은 화제가 됐는데요.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작가로서 활동해 오며 다양한 형태로 재능 기부를 해봤어요. 직접 기부금을 내기도 하고, 영정 사진을 찍는 봉사 활동도 했습니다. 그런데 확실한 대상과 전달 방법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부금을 전달할 합법적인 재단이 부재한 상황도 있었고, 정작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힘든 생계에 폐지를 줍느라 재능 기부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죠.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정말 필요한 곳에 확실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던 찰나 달력 작업 제의를 받았고, 좋은 의도가 느껴져 참여하게 됐어요.”
- 재능 기부 조건으로 ‘웃기게 찍지 않겠다’ ‘자부심이 느껴지게 찍겠다’ 두 가지를 제시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화상 어린이를 위한 치료비를 마련한다는 취지 자체도 좋았지만, 또 생각한 것이 소방관들에 대한 이미지였어요.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는 소방관들의 이미지가 불쌍한 것처럼 비춰질 때가 많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훌륭한 일을 하는 소방관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길 바랐고, 그 이미지를 대중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소방관들에게 보내는 존경의 의미도 담고 싶었고요.”
▲‘몸짱 소방관 달력’ 작업에 참여한 오중석 작가. 사진 = 지니어스 스튜디오
- 소방관들과의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힘들진 않았나요?
“소방관들이 전문 모델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몰입도를 보여줬고, 적극적으로 열심히 참여해줘 수월하게 진행됐습니다. 저 또한 최대한 그들의 장점을 부각해 찍으려고 노력했고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사진을 찍었습니다.”
- 이번 작업을 진행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뜻 깊은 일에 참여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주어진 상황 아래서 저뿐 아니라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 작가들의 재능 기부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직접 기부금을 내는 등 다양한 형태로 기부 활동에 참여해 봤는데, 이런 기부 활동도 좋지만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제 재능 기부를 통해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했고 벅찬 보람도 느꼈어요. 다른 작가들 또한 재능 기부를 하면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라 생각돼요.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힘들기도 하고요. 그래도 작가들의 재능 기부가 좋은 의미 아래 좀 더 활발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차후 ‘몸짱 소방관 달력’과 같은 재능 기부 기회가 있다면 또 참여할 계획인가요?
“물론입니다. 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좋은 뜻을 함께 할 기회가 있으면 참여하고 싶습니다.”
▲코인맨 1L 카페를 방문한 고객이 카페에 설치된 도네이션 박스를 구경하고 있다. 김일동 작가의 대표 작업 중 하나로, 박스에 모아진 기금은 추후 도움이 필요한 단체에 전달될 예정이다.
별난 캐릭터로 기부 유도 김일동
김일동 작가의 대표 캐릭터인 코인맨을 모티브로 한 ‘코인맨 1L 카페’가 10월 말 서울 동교동 삼거리 부근에 문을 열었다. 동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코인맨은 달리는 듯한 모습을 취한 김 작가의 고유 캐릭터다. 이 코인맨은 피사의 사탑, 자유의 여신상 등 전 세계의 랜드 마크를 자유롭게 누비며 뛰어다닌다. 카페는 이런 코인맨의 활기와 역동성을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전 세계 곳곳에 기부의 의미를 실천하자는 취지 아래 탄생했다.
음료를 마시는 공간부터 이동하는 계단까지 카페 내부 곳곳엔 김 작가의 작품이 설치됐다. 작품 감상과 동시에 기부를 함께 실천하는 게 특징이다. 카페에서 음료가 판매될 때마다 물 부족 국가에 식수가 기부되는 형태다. 1L 한 컵에 담겨진 만큼의 물은 고객이 마시고, 잔량은 물 부족 국가로 기부된다.
▲서울 동교동 삼거리 부근에 자리 잡은 코인맨 1L 카페 외부 전경. 카페 내부엔 김일동 작가의 작품과 도네이션 박스가 설치됐다. 카페에서 음료가 판매될 때마다 물 부족 국가에 식수가 기부된다.
김 작가는 예술과 기부 활동을 결합한, 사회 환원 차원의 작품을 제작하는 ‘캠페인 아트’를 펼쳐온 작가로 유명하다. 2013년엔 한성수 펠릭스파버 디렉터와 함께 하는 ‘맛있는 세계 미술 여행’전에 참여했다. 여기서 선보인 도네이션 박스가 주목 받았다. 코인맨이 그려진 도네이션 박스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전시장에 설치됐다. 작품 안에 동전을 넣으면, 동전이 코인맨과 함께 달려가는 모습을 보이며 기부함에 동전이 쌓인다.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정성이 모였고, 모아진 기금은 월드비전에 전달됐다.
카페에도 이 도네이션 박스가 설치됐다. 박스에 모인 기부금 또한 추후 도움이 필요한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
김일동 “100원 동전이 모여 세상 바꿔요”
- 코인맨 1L 카페를 선보이게 된 계기는?
“4년 전쯤 상상 속에서 이 카페를 구상했어요. 이렇게 실제로 구현된 걸 보니 저도 신기합니다(웃음). 처음엔 단순히 코인맨과 관련된 이야기를 펼칠 장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두루뭉술한 생각이었죠. 좀 더 대중과 예술로서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생각을 노트에 글과 그림으로 적었는데, 주변에서 이것을 보고 좋은 의도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현실화 시키자고 뜻을 모았죠. 저도 작업을 병행하며 생각을 점점 구체화시켰고,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습니다. 카페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제가 잡았고, 인테리어 하는 분의 자문을 받은 뒤 주변에서 뜻을 함께 하는 분들이 힘을 모아 드디어 올해 카페를 열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이 운영을 맡았어요.”
- 현재까지 반응은 어떤가요?
“작업을 하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카페에 들르곤 했는데요. 일단 외관을 보고 카페가 예쁘다며 들어오는 분들이 많았어요. 녹색과 노란색이 전체 색상 콘셉트인데, 자칫하면 촌스러워질 수 있어 걱정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눈에 띄게, 잘 결과물이 나온 것 같습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올 때가 많고요. 우연히 들어왔다가 카페에서 함께 행해지는 기부의 의미를 안 뒤 흥미를 보이며 참여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 꾸준히 기부에 관심을 보이고 작업에 끌어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전 작업에서도 대중적이고, 함께 소통하며 즐기는 방향을 추구합니다. 기부도 그런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싶었어요. 무언가 억지로, 또는 인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형태로요. 작가의 위치에선 이것을 제 작업과 연결시켜 대중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작은 도움이 모여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끼칠 수 있다고 믿었고,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코인맨 1L 카페 외부 테라스에 설치된 코인맨 조각상 앞의 김일동 작가. 사진 = 김금영 기자
- ‘코인맨 도네이션 박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았는데요.
“단순 모금함은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그냥 지나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코인맨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도네이션 박스는 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어 사람들이 보다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또 거창한 기부금을 바라거나 억지로 요구한 것도 아니었어요. 10원, 100원, 500원 등의 동전이 도네이션 박스에 모아졌죠. 동전은 실상 생활에서는 하찮게 여겨지기도 해요. 대부분 카드나 지폐를 쓰는 데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이 작은 동전 하나하나의 힘이 모여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큰 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 또한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기부에 참여하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요.”
- 추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계속해서 예술과 기부가 결합된 아트 캠페인을 전개하고 싶어요. 도네이션 박스는 이 카페뿐 아니라 추후 이 박스를 원하는 곳에 설치해 캠페인을 확장시킬 생각이에요. 처음엔 하나 제작하기도 버거웠는데, 이 박스에 담긴 의미를 보고 많은 관심과 도움이 이어졌어요. 덕분에 보다 많은 도네이션 박스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인맨 카페도 많은 관심을 받아 더 많은 지점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직은 바람일 뿐이지만 또 실현될 날이 올지 알 수 없는 일이죠.”
김금영 기자 geumyou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