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봄의 갤러리 전경. 사진 =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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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연수 기자) 창경궁 정문 맞은편에 위치한 와룡동엔 ‘아카이브 봄’이 있다. 빌딩의 계단을 올라 닫혀 있는 갤러리의 문을 열었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공간을 나눈 차고 문(셔터)과 여기저기 콘크리트가 노출 된 하얀 벽이 눈에 띄었다. 삼면으로 난 창에서 쏟아지는 자연광과 갤러리를 휩싼 차가운 공기가 대조적이었다. 아카이브 봄은 이달 말 건물 임대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아카이브 봄(이하 ‘봄’)의 이름을 듣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다. 2000년대 후반쯤 음악하고 미술 하는, 소위 예술을 한다는 애들끼리 몰려 노는 문화가 있었다. 특히 홍대 일대에서 작업하는 친구들끼리 술 마시며 놀다가, 또 다른 무리를 만나곤 했다. 성격만 좋다면 인맥 형성이 무한대로 확장 가능했다. 봄은 종로에서 노는 친구들이었다.
처음엔 그저 술 먹고 놀았다. 하지만 단순히 술 먹고 노는 데서 끝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는 데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더라도 콘셉트를 잡았고, 술집을 가더라도 어떤 안주가 맛있는지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기록을 남기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작업의 모티브가 될 수도 있다. 휘발성으로 날아갈 수 있었던 생각이나 시간의 기록을 공유한 것이 봄의 정체성을 유지시켰다.
봄은 2007년, 현재 국립 현대 미술관 들어가는 바로 옆 골목의 방 3개, 마당, 주방, 거실이 있는 예쁜 한옥에서 시작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집이었다. 당시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0만 원. 디자인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음악도 하는 친구들의 주거 공간이자 작업 공간이었다. 처마 아래 앉아 술도 마시고, 취한 날이면 모두들 자고 갔다.
미술관이 완공될 쯤 월세는 200만 원이 넘었다. 더 이상 그 곳에 있을 수 없었다. 또 언제까지 그곳에 다 같이 살 수도 없었다. 운영진 중 한 명인 석대범은 “그 시기가 성장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아름답고 즐거운 시기였지만 각자의 생계와 봄의 유지를 걱정해야 했다. 그래서 더 큰 공간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주거의 기능을 빼고, 더 실험적이고 더 넓은 스펙트럼의 작업을 선보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갤러리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게 된 곳이 와룡동이다.
▲봄이 삼청동에 있었을 때, 허수연이 담벼락에 그린 캘리그라피. 사진 = 허수연
그들은 어찌됐건 종로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종로 일대가 가진 정취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홍대에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거점이 있듯, 봄은 종로의 아티스트를 위한 거점이 되고 싶었다. 덧붙여, 자신들이 홍대에 있었더라면 매일 놀러나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그들이 처음 모여 살기 시작할 때 일원 중에는 21살도 있었다. 전반적인 연령이 매우 어렸다. 그때 만들어진 집단이 각자의 삶의 사이클에 맞춰 딱 그 세월만큼 발전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봄을 대안 공간, 복합 문화 공간, 신생 공간 등 여러 명칭으로 바꿔 불렀다. 봄이 생긴 지 이제 꽤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신생 공간이라는 이름이 붙는 아이러니가 재밌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사이클대로 발전해왔고, 그저 시대의 기류라고 생각하기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다시 신인이라 불리니 나쁜 기분은 아니”라고 한다.
현재까지 봄은 맘이 맞는 인원들끼리 모여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세로 사업 공모에 지원하거나, 각종 세미나 및 행사 등 수익을 내는 프로젝트를 수행해서 각각 퍼센티지를 나눠 갖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건물의 임대 종료를 앞 둔 현재, 봄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중심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건물 매입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건물을 매입하는 것이 그들이 마음 놓고 예술·문화적 공간을 꾸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항할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석대범은 “과도기가 올 때마다 더 세게 치고 나가는 것이 봄의 생존력”이라고 한다.
봄은 현재 서울의 15개 아트 플랫폼을 전시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울 바벨’전에 참여 중이다. 전시는 4월 5일까지 열린다.
석대범 “다니면서 들을 수 있는 사운드 아트 하고 싶어”
석대범은 사운드 아트를 한다. 그는 “언어나 1~2절로 이뤄진 노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현 시대에 음악은 리코딩을 통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친숙한 장르다. 이를 바탕으로 사운드 아트도 발전했다. 그는 그렇게 발전된 사운드 아트가 노이즈가 많아 난해하게 들리거나, 영상 작업과의 비중이 많이 차지하는 등 퍼포먼스 위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여주는 작업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도 들을 수 있고, 또 다시 찾아 들을 수 있는 사운드 아트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사운드 아트 작업인 신도시 연작 시리즈는 신도시의 ‘암묵적 합의’를 주제로 한다. ‘삐~’ 소리와 같은 단음(디지털 신호)의 반복이 컴퓨터의 2진법처럼 면적을 구성해 나가며 도시를 스케치한다. 그가 말하는 암묵적 합의란, 신도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침묵에 기반을 둔다.
구도시는 인간의 필요와 욕망에 의해 편의 시설, 주거 시설 등 다양한 형태의 시설들이 자연스럽게 집합돼 형성됐다. 이와 달리 신도시의 경우 계획된 도시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이 드러나는 공간들이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면, 교회 옆에 록 카페가 붙어 있어 성가와 록 음악이 같이 들리는 아이러니를 연출한다거나, 그 맞은편에는 섹시 바가 있다. 구도시에서 볼 수 없던, 눈에 설은 광경이다. 구도시라면 당장에라도 시위가 일어나거나 말이 나왔을 텐데, 이에 대해 아무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석대범은 그런 침묵이 서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라고 본다.
그의 소리 디자인은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들을 수 있다. ID: sbt_seokja
허수연 “캘리그라피에 대한 인식 확장 필요”
허수연은 캘리그라피를 한다. 최근 들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장르다. 그녀는 순간순간 생각나는 문구나 감정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전달됐을 때, 그가 공감을 하고, 또 다시 그 공감이 다른 공감으로 전달돼 새로운 작업을 만들 수 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을 하고 선보이는 과정 그리고 보는 사람들까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출간 예정인 허수연의 에세이 ‘아이 생각’ 삽입 이미지. 사진 = 허수연
보통 일상생활에서 아이디어나 영감을 많이 받는다. “요즘은 슬프고 고독해 보이는 글씨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한다. 그녀는 공감하는 문구에 따라 글씨 스타일도 달라지는데, 요즘 선택하는 글씨 스타일이 귀엽고 따뜻한 것과 거리가 먼 것을 보면 자신이 따듯한 상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허수연은 최근 기업에서 강연도 하면서 에세이집을 준비 중인데, 에세이의 내용도 차갑고 어둡다. 이에 관련, 캘리그라피는 따뜻하고 귀여운 문구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캘리그라피는 자유롭게 감정을 감아 쓰는 것이며, 사람마다 다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며 “사람들의 인식에 캘리그라피가 정형화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캘리그라피에 대한 개념이 좀 더 확장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최강희 “사운드 아트는 고정 관념 없이 감상해야 해”
최강희는 2010년 멀티미디어 퍼포먼스와 현대 음악 작곡 두 분야에서 데뷔했다. 최근에는 퍼포먼스보다 소리 부분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소리 작업에 대해 음악이나 사운드 아트라는 명칭으로 구분 짓기 모호한 작업이라고 소개한다. 소리의 특정한 형태로 인해 미술관이나 전시관에 들어가기는 어렵고, 조금 더 일상적인 음악에 가깝다고 한다.
최강희의 작업은 최면술에서의 암시 요법을 알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의 소리는 특정한 순간과 공간, 혹은 물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추상적 감정들을 표현한다. 결과물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작업이 눈앞에 없어도 길을 다니면서도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재료로 사용하고, 여러 다른 소리 요소들을 반복하거나 화성적인 불안을 더해 재조합한다. 그 결과물은 관객들의 입장에서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것들에 대한 기준을 모호하게 한다.
그에게 사운드 아트를 이해할 수 있는 팁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해하려는 태도가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운드 아트는 고정 관념 없이 감상해야 한다”며 관객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것이 연인 간에 ‘밀당’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최강희의 소리 작업은 그의 홈페이지(www.kangheechoi.com)에서 감상할 수 있다.
모즈 & 료니 “세상의 모든 스톰 트루퍼들을 위해”
모즈와 료니는 MR36이라는 그룹으로 같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아티스트 오디션 프로그램 ‘아트스타코리아’에서 만났다.
▲MR36, 스톰 트루퍼 이펙트. 혼합 매체. 2015. 사진 = MR36
그들이 작업에 사용하는 재료는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쓰레기로도 작업하고, 물감도 쓰고, 잡동사니 등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재료로 활용한다. 주제도 정해져 있지 않다.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다가도 주제가 정해질 수 있다. 주제와 재료, 그리고 방법 모두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들의 그룹 이름인 MR36은 모즈와 료니의 이니셜이기도 하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자들의 의견서)의 의미도 있다. 소수자의 의미를 물었더니 ‘버려지는 것들’이라고 답했다. 최근 베니스에서 선보인 그들 작업의 주제는 ‘스톰 트루퍼 이펙트’다. 스톰 트루퍼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당 편의 졸개 캐릭터다. 전문적인 군사 훈련 및 교육을 받았고, 중무장을 했으며, 뛰어난 화력을 지닌 무기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절대 주인공을 이길 수 없다.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는 이런 영화의 식상한 패턴을 ‘스톰 트루퍼 이펙트’라고 한다.
▲MR36의 '스톰 트루퍼 이펙트'의 한 장면. 사진 = MR36
료니와 모즈는 같은 것에 흥미를 느끼지만, 그것을 작업으로 풀어낼 때는 매우 다른 방식과 성향을 보인다. 모즈는 “사회적인 강자가 되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약자 쪽이라고 판단된다”고 한다. 료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그가 어렵게 생각하고 좋아하지 않는 단어는 ‘예술’이다. 그가 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방식과 언어로 표현할 뿐이다. “만약, 예술에 기준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예술을 할 생각도 없고 예술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좋은 작업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이 스톰 트루퍼인 것 같다”며 “작업하는 많은 작가들 중 주목 받는 작가들은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예술을 바라보는 조금 더 다양하고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연수 기자 hohma0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