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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 추천작가 ③ 홍익대 박선영] 자살많은 그 다리에서 400원짜리 ‘복권’ 판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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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9-470호(설날) 김금영 기자⁄ 2016.02.11 11:25:24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한 박선영 작가.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현대인은 요즘 누구랑 가장 눈을 많이 맞출까. 흔히 “사람이니까 사람과 가장 눈을 많이 마주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대답에는 바로 삐~ 하며 오답 벨이 울린다. 요즘 인간과 가장 눈을 많이 마주치는 대상은, 바로 스마트폰 또는 노트북 또는 PC다. 출근길에는 핸드폰과 눈을 마주치기에 정신이 없고, 직장에서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심지어 식사 자리에서도 입으로는 밥을 먹고, 눈으로는 스마트폰과 눈길을 주고받느라 대화를 나눌 틈조차 없다. 예전 어른들은 “어디 눈을 똑바로 쳐다보냐”고 호통을 쳤지만, 앞으로는 “어디 눈을 안 쳐다보냐”로 바뀌어야 할 것만 같다. 

이런 시대에 박선영 작가는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는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작품에는 얼굴을 마주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할머니가 어린아이를 지긋이 바라보는가 하면, 스스로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인물도 보인다. 하나같이 마주한 대상과의 시선 교류를 피하지 않는다.

▲박선영, ‘그녀의 할머니(Her Grandmother)’. 광목에 건식 재료, 106 x 45 x 65.1cm. 2013.

그의 작품 시작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기 싫은 ‘자기방어적’ 성격이 강했다. “본래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세상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고 벽에 갇힌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해받지 못할 때 생기는 상처로부터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화면 안에 자신을 숨긴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를 방어하려는 과정에서 세상과의 단절, 고립과 모순의 상처가 또 발생함을 경험했다. 그래서 작가는 세상과의 시선 교류로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그림의 시작은 제 이야기에서 비롯됐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꼭 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죠.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 공감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이요. 다른 사람과는 물론, 자신의 모습도 잘 바라보지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먼저 자신의 내면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알아야 세상과의 소통에 적극 나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화면 안에서 시선 교환을 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평평한 평면을 꺾어서 눈을 서로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림이라는 평면에서 1차원적으로 시선을 마주치고 끝나는 방식에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화면을 꺾은 각도는 90도다. 꺾었을 때 위치에서 한쪽 화면 인물의 눈이 다른 쪽 화면의 눈과 정확히 마주하는 각도다. 평평한 화면이 아니어서 처음 전시 땐 설치에 애를 먹기도 했다. 번거로운 작업이었지만 지금은 작업을 할 때 이런 과정에서 오히려 큰 즐거움을 느낀다. 평범한 것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이뤄내는 성취감 덕분이다.

평면을 꺾어서라도 시선을 마주치게 한 인물들

“초창기엔 평면 캔버스에 작업을 했고, 지금은 패널로 옮겼어요. 캔버스에도 시도를 해봤는데, 천을 당겨서 고정시키기 때문에 화면을 꺾으면 천이 울더라고요. 시선 처리를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려면 예리한 각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패널을 사용했죠. 밀가루 풀을 패널에 바르고 천을 밀착시키듯 붙여 말린 후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요. 제 작업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이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게 하는 것이어서, 패널에 그림을 그리기 전, 컴퓨터에서 미리 드로잉을 하고, 인쇄한 드로잉을 바탕으로 그려요. 완성된 그림을 벽에 제대로 걸게 하는 장치도 3년 전 고안해서 만들었어요.”

▲박선영은 ‘ㄱ’ 자 모양의 화면에 그림을 그린다. ‘아트캠페인 바람난 미술’ 참여 당시 설치됐던 작품.

그녀는 “3D 요소를 화면에 집어넣고, 벽으로부터 공간을 형성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평소 성격은 소극적이고 경계를 하지만 작업할 때만큼은 스스로 ‘왜 이게 안 돼?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며 되뇌며 나서요”라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많은 시선 교류를 하다보니 저 또한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라는 경험담이다.

꺾인 화면이 흥미롭다는 반응이 많지만, 그만큼 또 많이 듣는 게 화면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와 닮았다고, 혹시 자화상을 그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화면의 주인공은 그녀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분명 실존 인물이다. 눈, 그리고 얼굴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뒤 인터넷에서 자료를 뒤지던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얼굴을 발견했다. 머리는 짧은데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호했고, 청년인지 소년인지도 애매모호한 게 매력적이었다. 어떤 한 인물이라고 딱 규정하지 않은 채, 전체적으로 다양한 존재를 보여줄 수 있는 포괄적인 모습이라 느꼈다.

“눈 이미지를 찾다가 한 포토그래퍼가 찍은 가족사진을 발견했는데, 특히 아이가 묘하더라고요. 혼혈이었는데 전문 모델이 아닌데도 끌리는 매력이 있었어요. 작품에 모델로 삼고 싶다고 연락하고 허락 받았어요. 최근엔 새로운 모델도 발견했어요. 한두 달 전에 전시를 보러 가는 도중에 외국인 가족을 지하철에서 만났는데 아이가 제 작품 속 모델 아이와 많이 닮았더라고요. 정말 용기를 내서 모델 제의를 했고, 흔쾌히 응해줘 15분간 사진을 찍었어요. 기존 모델 아이는 남자였는데, 새로 만난 아이는 여자 아이였어요. 아직 작업으로 공개하진 않았는데, 기존 작업과는 또 다른 시선 교류가 이뤄질 것 같습니다.”

이처럼 눈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계속 그리는 것은, 결국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주제는 또 다른 작업인 ‘로모또(Rrowmotto)’에서도 이어진다. 방식 자체는 회화와 많이 다르다. 로모또는 자살 방지의 의도를 담은 복권 작품이다. 복권에는 무엇에 당첨될지에 대한 안내가 없다. 그저 긁지 않은 채 가능한 오래 소지하고, 정말 절망적이고 무기력할 때, 사라지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 날 긁을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는 조건이 기재됐을 뿐이다. 비로소 드러나는 당첨 행운은 바로 내일, ‘투모로우(Tomorrow)’다. 로모또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내일이 올 거라고 말해주는 ‘로모또(Rrowmotto)’

자신이 아무 짝에 쓸모가 없는 것처럼 느끼는 사람에게, 더 이상 사는 게 의미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작가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처럼, “또 다시 밝아오는 내일이 있다”고 이야기해주며 소통하고 싶었다. 이건 작가 스스로에 대한 위로이자, 내면과의 또 다른 소통 방법이기도 하다. 눈 그림부터 로모또까지 각각 다른 매체로 전하고 있을 뿐,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근본은 같다. 그녀는 “로모또는 제게 많은 성취감을 준 작업이자, 큰 전환점이 됐어요”라며 “휴학하고 평면 작품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퍼포먼스 작가들을 만난 게 계기”라고 말했다.

▲한강에서 진행된 ‘로모또’ 퍼포먼스 현장.

“제가 접해보지 못한 퍼포먼스가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그때 그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내일을 원치 않는’ 힘들 때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정말 힘든 날을 경험하죠. 하지만 결국 내일은 찾아온다고, 내일은 오늘보다 괜찮을지 모른다고 저 자신,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곳이 마포대교라 하는데, 이곳에서 5개월 동안 퍼포먼스를 했어요. 새하얀 테이블과 복권방 간판을 설치하고 자리를 지켰죠. 처음엔 두려워서 집 옥상에서 먼저 퍼포먼스를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마포대교 밑, 나중엔 위까지 올라왔죠.”

10대에게는 무료로 배포하고, 성인에게는 400원에 팔았다. 이 방식 또한 관객과 주고받고 싶었던 취지다. 500원은 딱 떨어지는 가격이라 받으면 끝이다. 그런데 거스름돈을 건네주면서 한두 마디 더 하게 되고, 눈도 마주치는 짧은 순간이 작가에겐 소중했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관객들도 만났다.

아직도 로모또의 첫 번째 관객이 기억에 생생하다. 한 할아버지가 처음엔 장사를 하는 건지 궁금해 하며 다가와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부인 것과 자신 것까지 로모또 2장을 사겠다고 했다. 그 다음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거 안 긁을 거야. 안 힘들고 행복하게 살 거거든.” 

그 다음엔 한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힘든 날 긁으면 되는 복권이라고 하자 바로 그 자리에서 긁고는 ‘내일’이 당첨됐다며, 의미를 물었다. 작가는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했고,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리를 떠났다. 지금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 퍼포먼스는 군부대까지 이어졌는데, 그 계기가 있었다.

“휴가를 나온 한 군인이 복귀 길에 로모또를 사갔는데, 그 뒤 메일 한 통을 받았어요. 군부대에서의 퍼포먼스 의뢰였죠. 군부대도 자살 문제가 많다기에 하기로 결정했어요. 군부대로부터 사전 주문을 받아 우편으로 로모또를 발송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10명에게 보내드렸는데, 단순히 재미있어 한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힘들어 하거나, 탈영을 했던 군인도 있었습니다. 복권을 긁은 당첨 일자와 당첨 행운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메일로 받고 있어요. 이 기록 또한 작품이에요. 오늘만 버티면 내일이 있다는 마음을 담아 앞으로도 계속 소통하고 싶어요.”

▲박선영, ‘로모또(Rrowmottow)’. 설치, 퍼포먼스, (구)홍익여중 여고 건물, 가변 크기. 2015.

로모또의 취지가 알려지면서 2015년엔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전시를 가졌다. 이밖에 다른 작업의 의미가 주목 받아 서울문화재단의 ‘아트캠페인 바람난 미술’ ‘55’전 등에도 참여했다. 그녀는 “전시 하나하나가 다 기억나요. ‘바람난 미술’전은 졸업전시 기간이랑 겹쳐 정신이 없긴 했지만, 예술과 시민의 사이를 좁히는,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베스트 작품상 투표에서 운좋게 수상도 했어요. 많은 교류를 했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가기전’ 전시에서는 첫 작품 판매가 이뤄지기도 했다. 새내기 작가로서의 발걸음을 천천히 조금씩 떼는 과정이다. 처음엔 단순히 눈의 이미지를 쫓아 시작했던 작업이 소통 이야기로 확장됐고, 또 여기서 회화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매체로의 접근을 시도하면서 전시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특히 입체나 설치에 대한 열망도 있어요. 물성을 연구하는 과정도 흥미롭고요. 최근엔 물레를 공부하고 있고, 도예에도 관심이 많아요. 앞으로 어떤 방식의 작업이 등장할지 저 자신도 궁금하고, 두렵기도 해요. 어디까지 시도할 수 있을지, 한계를 두지 않고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내고 싶습니다. 이 설렘을 가능한 오래 갖고 싶어요. 기대해도 좋아요.” 

김찬일 홍익대 미대 교수의 추천사 

“보통 평면에 그림을 많이 그립니다. 그런데 박선영 작가는 ‘ㄱ’자 모양의 캔버스를 새롭게 만들어, 그곳에 그림을 그리고 설치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평범한 것을 넘어 늘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정신과 더불어, 작업을 할 때 몰입도가 굉장히 뛰어납니다. 그 과정에서 늘 새로운 형태를 갖춘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에 주목해볼 만합니다.”


박선영의 전시들

2015 ‘언더 더 써큘러(Under the Circular)’ / 구 홍익여중-여고 건물 / 홍익대학교 / 서울
‘55’ / 옛 국세청 남문관 별관 부지 / 서울문화재단 / 서울
‘다리 위 문방구 a.k.a 복권장 a.k.a 약국’ / 서교예술실험센터 / 서울
‘아트캠페인 바람난 미술’ / 서울도서관 / 서울문화재단 / 서울
2014 ‘2014 아시아프’ / 문화역서울284 / 서울
‘코드 16’ / 팔레 드 서울 / 서울
2013 ‘가기전’ / 모던도쿄 / 인천아트플랫폼 / 인천
‘제15회 단원미술제’ / 단원미술관 / 안산
‘홍익미술전’ /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 서울
2012 ‘꽃마을 국제 자연예술제’ / 예술창작공간 아트 인 네이처 / 부산
‘통과이래, 통과저래’전 / 대안공간 통/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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