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뒷담 “술자리 미담(미술 담론) 너무 아까워”
‘미술 뒷담’은 “예술이 아름답기만 할까요? 예술가가 위대하기만 할까요? 예술을 주관적이고 사적인 대화로 풀어보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예술에 대해 겁 없는 뒷담화를 해보겠다는 취지가 바로 캐치된다.
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세 인물은, 예술을 사랑하는 ‘또치 아빠’, 예술을 하고 있는 ‘아트 마스터’, 예술을 잘하고 싶은 ‘샤샤’다.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하는 미술계와 작업 과정에 대해 솔직한 얘기들을 마구 털어놓는다.
작년 11월 ‘비판은 두렵지 않아’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작한 이 팟캐스트는, 최근 들어 순위가 급속도로 올라가는 상황이 되기까지 넉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눈으로 봐야 하는 미술을, 말로 얘기해야 한다는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반향이 일어나는 이유는 팟캐스트만이 갖는 ‘해적 방송 같은’ 분위기에다가 진행자들의 익명성이 더해지면서 청취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때문이 아닐까. 또한 제목에서 풍기는 막말의 기운도 한 몫 한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까지 공개된 23회분 팟캐스트에는 막말 또는 민감한 내용을 지우기 위한 “삐~” 소리가 난무한다.
진행자들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던 중 우연한 경로를 통해 그 중 한명이 기자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바로 인터뷰를 졸랐다. 망설이던 그들은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를 허락했다. 그래서 방송 녹음 현장까지 참관하는 기회를 얻었다. 현장에서의 느낌은, 팟캐스트를 들을 때보다 훨씬 진지했다. 각자가 가진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미술을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오해를 풀기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모습들이었다.
▲‘미술 뒷담’팀이 이용하는 ‘자마 레코드’의 녹음실. 사진 = 김연수 기자
방송 녹음 장소는 꽤 분위기 좋은 카페의 한 코너였다. 뮤지션들이 운영하는 까페여서 녹음실까지 있다. 격론으로 벌게진 얼굴들을 끌고나와 담배 한 대씩 물게 하면서 인터뷰를 속행했다.
주로 평면회화 작업을 하는 이들 세 진행자들의 첫 만남은 모 유명 화가의 어시스턴트를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형 작업을 주로 하는 그 작가의 어시스턴트들은 꽤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듯 했다. 작업 뒤 이들은 종종 술자리를 가졌고, 당시 나눴던 미술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이 공중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게 아까웠다. 작가로서 데뷔를 하고 나니, 그런 담론을 나눌 시간은 더 없어졌다. 그러던 중 정치 이슈와 인문학을 다루는 팟캐스트들의 붐을 바라보면서 “미술도 할 수 있는 것 아냐”라는 생각을 했다고.
샤샤는 “이런 반응은 기대도 안 했다. 내 생각과 작업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을 뿐인데”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 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동기를 만들어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미술에 대한 흥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유로 작업을 멈추고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므로, 그들이 이 팟캐스트를 들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각자 조금씩 다른 이유로 팟캐스트를 시작한 그들은 “팟캐스트 진행에 특별한 목적은 따로 없다. 그저 예전처럼 노는 시간, 그리고 작가로서 살아가며 생각을 환기할 시간을 갖고 싶었고, 해우소(‘근심을 푸는 장소’란 의미로, 화장실에 대한 높임말) 같은 곳도 필요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점차 반응들이 커짐에 따라 그들의 생각과 태도 또한 변하는 듯하다. 자신들은 미술 작가로서 솔직한 모습을 내보일 뿐이지만, 알게 모르게 전달자의 역할을 맡으면서 책임감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심각해지고 어려워지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또한, 전문 지식과 솔직한 표현 사이의 중간 지대를 찾는 일도 어렵다. 쉽게 얘기하면 “공부 좀 해라”는 악플이 달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려 들면 자신들은 공부가 돼 좋지만, 또 다시 ‘어려운 미술’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송 내용이, 미술 작가로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100% 주관적 내용이라고 못박는다. “우리가 큐레이터나 비평가는 아니죠. 만일 전문적 지식을 보완하려 했다면, 진작 큐레이터나 비평가를 섭외했을 거예요”라고 아트 마스터가 말하자, 또치 아빠가 웃으며 말을 더한다. “그러면 싸움이 더 심해질 걸?”
▲‘미술 뒷담’의 프로필 이미지. 사진 = 미술뒷담 팟캐스트
예상하지 못했던 인기에 대해 그들은 신기하고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정치 팟캐스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순위이긴 하지만 미술 분야에 관련 없는 청취자를 포함해 상당히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이런 반응들을 보며 사람들이 솔직한 미술 정보에 목말라 있음도 느낀다. 반면, 최근 들어 방송을 할 수 있는 소재가 고갈되고 있는 상태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질문을 받을 예정이라고.
막연한 계획이 있다면, 음악, 미술, 영화 등 예술 장르가 모두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녹음실도 뮤지션들의 협찬을 받고 있지만 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도 같이 하고, 그 결과를 보여줄 전시와 공개방송도 하고 싶다고 했다. 이 계획이 현실이 되면 자신들이 누군지도 정체를 밝힐 의향이 있단다. 물론 그건 그들이 앞으로 ‘미술 뒷담’을 어떻게 끌어갈지에 전적으로 달린 문제인 듯하다.
말하는 미술 “대중이 소비하는 게 아니라 대중에 필요한 게 대중성”
팟캐스트 ‘말하는 미술’은 앞서 소개한 ‘미술 뒷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 편 당 한 명의 작가 혹은 기획자의 작품세계나 생각을 들어보는 형식이라 더 진지하게 전문적인 미술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트스페이스 풀’이 제공한 공간에서 작가, 이론가, 기획자들이 함께 모여 녹음 및 제작을 진행한다.
국내·외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성공한 젊은 작가로 평가받는 설치미술가 양혜규가 제작총괄을 지휘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미술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지고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이론가, 기획자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술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다.
작년 4월 첫 방송을 시작으로 한 달에 한 번 꼴로 업로드 된다. 한 달 만큼의 준비 기간과 체계적인 역할 분담에 의한 제작 과정을 거친다. 진행자 김진주와 연구 모임의 일원인 예희정을 기자가 만난 것은, 다음 달 방송될 예정인 작가 백현진의 작업을 보고 연구하려 모인 장소에서였다. 연구모임은 일반 방송의 구성작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팟캐스트를 처음 들었을 때 든 첫 생각은 다소 엄숙하고 전문적인 분위기라 청취자가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자의 첫 질문은 “어려운 거 아네요?”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김진주는 이에 대해 “팟캐스트 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방송과는 다르다”고 답한다.
▲(왼쪽부터) ‘말하는 미술’의 프로필 이미지. ‘말하는 미술’의 ‘파트타임스위트’ 편 포스터. ‘말하는 미술’의 ‘최정화 편’ 포스터 이미지. 07 ‘말하는 미술’과 관련된 시각자료들. ‘말하는 미술’의 ‘주재환 편’ 포스터 이미지.
현재 미술계의 이슈들을 다룬다면 조금 더 편하게 접근할 수도, 문턱을 낮출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다루는 것은 작가론이다. 작가 개인의 생각에 접근하다보면 그 작가만이 쓰는 언어들, 때론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언어들이 나온다. 한 사람의 생각 속 언어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보통 언어로 옮길 때 ‘번역 상의 문제’가 일어나고, 이런 것들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녀는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이야기하려 노력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방송 중간 중간에 일어나는 진행자와 초대 손님과의 입장 차이는, 순수한 의견 차이라기보다는 초대 손님, 즉 그날 방송의 주인공에 대한 개념정리와 기억호출 과정에서 진행자가 일부러 반대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청취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도 있다. “단순한 정보 전달뿐 아니라 담론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의 목표는 물론 미술 담론의 저변 확대였다. 미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중에서도 실제로 미술 관련 직종에 몸을 담근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음을 알고 그들이 미술에 대한 끈을 놓지 않도록 들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재의 청취자들은 미술계에 좀 더 가까운 사람들로 보인다고도 했다.
‘말하는 미술’은 양혜규의 ‘컬렉티브한 팟캐스트’ 제작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여기서 ‘컬렉티브’란 각기 다른 개성의 사람들이 모여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결과물을 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당시 김진주는 양혜규를 인터뷰하면서 이런 생각을 들었고, 흥미를 느껴 합류했다. 그 뒤 현재 방송의 자문을 맡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풀의 이성희 디렉터 등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 컬렉티브하게 만든 것이 지금의 팟캐스트다.
진행자 김진주는 작가이자 기획자다. 예희정을 비롯한 다른 기획자와 작가, 이론가들이 경력-비경력을 가리지 않고 녹음-편집-연구 등의 제작 과정은 물론, 페이스북과 네이버 포스트 같은 곁가지 일의 정리 및 디자인에까지 일일이 참여한다. 딱히, 역할이 정해진 분업 체계라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으므로 역할을 나눠 맡았을 뿐이다.
김진주는 “제작진 구성에 아직 드나듦이 많은 편이지만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며 “제작진 개개인의 생업과 팟캐스트 제작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 일을 취미활동 정도로만은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다소 형식주의적이고, 격식을 따진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조금 딱딱하더라도 제대로 된 전달을 위해서는 줄기를 잡아주는 지지대 역할도 필요하다”고 응수한다. 또한, 미술을 어렵다고 느끼는 청취자에게 단순히 이해하기 쉽거나 흔히 통용되는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들과의 거리가 좁혀질 수 있다고도 판단하지 않는다.
▲‘말하는 미술’의 녹음 현장. 사진 = 아트스페이스 풀
이들이 대중성에 접근하는 방식은 쉽거나 잘 소비되는 차원이 아니다. 잘 소비되진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이들은 대중성으로 꼽는다. 예를 들면, ‘현대 사회에서 미술 작가가 왜 필요한가’ 같은 질문이다. 그들은 이에 대해, 작가의 모습 자체가 이 사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말하는 미술’은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해설자 역할을 떠맡는다.
어렵다고 느끼는 것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말하는 미술’ 제작진은 이런 어려움들을 “학식의 미천함 같은 계층적 사고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분야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방송의 색을 유지하며 진행해 갈 예정이다. 덧붙여 “이제 2년도 안 된 방송이라 질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부담 없는 피드백을 바란다”고도 했다.
이 두 팟캐스트는 현재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현저히 다른 색을 보인다. 아마도 이들이 해내가는 작업도 이와 비슷하게 성향이 다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두 팟캐스트에서 또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미술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고, 미술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여태까지 고고하게 미술관과 갤러리 안에 들어앉아 있었던 작가나 예술 생산자들이, 이제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현대 예술의 변화 현상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