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윤하나 기자) 첫인상은 첫인상일 뿐이었다.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구자명 작가는 경직된 첫 느낌과 다르게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점차 쾌활하고 자연스러운 속모습을 드러냈다. 장난스러운 발상과 산뜻한 색감을 지닌 그의 작업들을 먼저 봤음에도 진작 알아채지 못한 이유는 그가 표현한 언어들에 있었다. 남보다 조금 늦게, 그러나 진지하고 빠르게 자신을 찾으려 노력한 작가는 이 과정에서 여러 모호함을 발견했다. 그 모호함을 표현하려는 시도가, 경쾌한 작업이 결코 가볍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되는 듯하다.
단순히 무언가 만드는 것이 좋아 미대에 진학했다는 그는 오랜 기간 방황했다. 이제까지 여러 미대를 다녔지만 처음으로 2학년을 보낸 곳이 추계예대였고 결국 졸업도 마쳤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이를테면 ‘어떤 작업을 해야지’라거나 ‘작가가 돼야 해’ 식의 강박적인 고민은 없었다고 했다. 그저 자신이 가진 미술적 흥미와 궁합이 잘 맞는 학교를 만나지 못했을 뿐. 그런 그가 1학년 과정 동안 영상, 설치, 오브제 등의 다매체 수업이 많은 추계예대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학부 과정을 거치면서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뚜렷한 생각보다 그저 작업이 재밌기에 몰두하게 됐다는 그는 학부 과정에서 남성성이라는 자신만의 주제를 발견했다.
전쟁 뒤 흉스런 군인-남탕 통해
‘자기당착 판타지’ 만들어
작가가 말하는 남성성은 TV나 잡지에 등장하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남성상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아이에게 강요되는 특정 기질을 말한다. 누나가 많은 가정환경에서 어릴 적엔 여성스러운 성격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의 이런 기질은 초등학교 진학 뒤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됐고, 그때부터 그는 자신을 바꾸려 노력해왔다. 그 시절 그가 기울인 노력은 우선 ‘관찰’이다. 자신의 어떤 부분이 여성적으로 보일지, 내가 다른 남자아이들과 무엇이 다른지를 오랫동안 관찰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관찰하고 타인을 의식해 변모하는 과정을 겪어 온 그는 그 과정 속에 담긴 폭력성을 작업과 이론 공부를 통해 인식했다.
▲구자명, ‘War-ter(1)’. 162.2 x 390.0, 캔버스에 유화. 2015. 사진 = 구자명 작가
▲구자명, ‘War-ter(0)’. 93 x 216, 캔버스에 유화. 2015. 사진 = 구자명 작가
▲구자명 작가는 학부 기간 동안 수집한 미디어 이미지를 바탕으로 꾸준히 드로잉 작업을 진행해왔다. 사진 = 구자명 작가
이런 인식은 현재의 자기 모습이 진짜 자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옮겨갔다. 항상 남의 행동, 표정, 꾸밈새를 보고 채집하며 자신의 것으로 취득하는 과정을 거친 그는 결국 ‘내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이런 고민 속에서 발견한, 그에게 강요됐던 남성성은 역으로 그의 뿌리를 역추적 할 수 있는 단서가 됐다. 자신에게 덧입혀진 남성성의 가지를 하나하나 벗겨내다 보면 어느새 진짜 자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자각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 그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담고 있는 성적 코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여성성과 남성성 혹은 성적인 무언가는 욕망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에게 폭력의 수단이자 얼굴로 존재하던 이 성적 상징들의 경계를 그는 굳이 규정하지 않고 그저 모호한 맥락 속으로 이동시킨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모하던 그의 성장과정이 이제 그의 내면적 특성이 돼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정착하지도 경계짓지도 않는 모호함을 자신의 특성으로 받아들인 그는 자신이 경험한 폭력적 남성성의 이미지를 역추적 해나갔다.
아버지, 전쟁, 포경수술
포경수술, 군대, 아버지의 소중한 진열장 등은 그가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남성의 상징들이다. 특히 포경 문화는 한국 남성 대부분이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한 폭력일 것이다. 그는 ‘긔꽃’이란 작품을 통해 상처받은 남성을 장난기 넘치는 방식으로 위로한다. 포경 수술 후 상처 입은 채 세상에 노출된 피부 위에 생명력 넘치는 생물이 피어난다. 먼 길 돌아가지 않고 직구를 날리는 그의 표현 방식은, 그가 말하는 모호함과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3학년 때 한 작업이 ‘긔꽃’으로, 지금보다 훨씬 직설적이었다”고 했다.
▲구자명, ‘백호 기동대대’. 가변 설치, 목욕용품, 바구니, 철제 수납장, 군인 이름표. 2015. 사진 = 구자명 작가
그래서인지 긔꽃 외에 ‘구씨의 위안도구’ 같은 작업은 언뜻 보기에 쉬이 사물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 그의 아버지는 수석, 분재 혹은 알 수 없는 조각이나 기념품을 수집하는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은퇴 후 자신만의 컬렉션을 갖추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의 기억에 함부로 만질 수 없던 아버지의 수집품은 꽤나 무서운 존재로 각인됐다. 하지만 친구들 집에 놀러가기 시작하면서 각기 다른 아버지들의 각기 다른 수집품을 만나면서 자기 아버지만의 악취미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취향을 자신의 방식으로 채집하고 변형시켜 수집한 그의 시도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존재를 향한 도전 또는 이해의 시도라고 읽을 수 있다.
그는 실제 아버지의 컬렉션 중 기묘하게 성적 뉘앙스를 가진 수집품을 가벼운 소재와 색감으로 캐스팅(다른 물질로 복제)했다. 그가 선택한 아버지의 수집품은 동자승 조각상, 3단 나무 병풍, 뚜껑이 있는 도자기, 나무로 만들어진 키가 큰 술병으로, 이들의 복제품을 그의 진열장에 재배치했다. 아버지의 권위 또는 개인적 차원의 위로를 아들인 그가 극복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학부 시절부터 그는 인터넷, 스마트폰, TV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인스턴트 이미지를 수집하며 꾸준히 드로잉 해왔다. ‘워-터(War-ter)’ 시리즈는 그 드로잉의 연장선에서 그가 처음 시도한 페인팅 작업이다. 종전 이후 전쟁의 흉을 닦아내며 휴식 중인 군인들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남성성의 집합체인 전쟁, 군인, 남탕 등의 이미지를 한데 뒤섞어 ‘자기당착 판타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구자명, ‘구씨의 위안 도구’. 가변 크기, 우레탄, 유리 장식장. 2015. 사진 = 구자명 작가
제 군복무 시절의 회상을 담은 ‘백호 기동대대’도 흥미롭다. 보급품으로 충족되는 군대 생활 중 유일하게 취향을 허락받는 물건이 바로 목욕 바구니였다고 한다. 이 작품 속 바구니는 실제 그와 함께 생활한 내무반 전우들의 물품들로 재구성됐다. 천편일률적인 군대 생활에서 그들이 은밀히 자신의 개성을 노출할 수 있는 돌파구였다.
▲구자명, ‘액자 속 수채와 유화(Watercolor and oil on frame)’. 가변 설치, 종이 위에 수채와 유화. 2015. 사진 = 구자명 작가
작품 설명을 듣는 와중에 현재 작업이 궁금해졌다. 예대 졸업 작품으로 처음 페인팅을 다뤄봤다는 그는 앞으로 당분간 페인팅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오브제 작업은 아이디어를 대변하는 과정이었지만 페인팅에선 여과 없이 ‘나’가 드러난다고 느낀다”며 “여러 색을 섞어가는 과정이 신나면서도 무서웠다. 마치 물감 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며 처음 페인팅하며 느낀 감정을 술회했다. 그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앞으로도 붓질을 통해 자신이 묻어나는 작업을 더 많이 실험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최근 과학기술대학원의 조형예술학과에 입학한 그는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느라 아직 작업할 정신이 없다고 했다. 현재 그는 자기 자신을 향한 관찰보다 타인에게 시선을 두고 있다. “학부에서는 온전한 내 것이 없는 것 같아 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이젠 뭘 고민해도 내 것이 나온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새로운 환경을 만나 설레는 그의 모습에서 숨길 수 없는 낙천성을 발견했다. 심각한 ‘척’, 진지한 ‘척’하려 노력하지 않고 그가 이런 솔직한 긍정주의를 지속할 수 있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