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본다 그리고 보인다. 시각을 토대로 했다는 점은 같지만 확연히 뜻이 다르다. 보는 행위는 주체적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지만, 보이는 것은 수동적 태도가 더 강하다. 말로는 이렇게 차이가 명확한 것 같지만 이지성 작가는 이 중간 지점에 서서 의문을 던진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을 과연 그렇게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자신은 본다고 느끼지만, 이미 내면에 자리 잡은 경험,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선입견 등을 통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현상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다.
예컨대 야구공 하나를 여러 사람이 함께 똑같은 시간 동안 뚫어지게 바라봤다고 치자. 야구공과 관련해 즐거운 추억이 있는 사람은 야구공을 즐겁게 볼 것이고, 야구공에 맞았거나 아픈 상처가 있는 사람은 야구공을 힘들게 바라볼 것이다. 즉, 야구공을 같이 보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해석으로 야구공은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각기 말하길 “야구공 예쁘네” “뭐가 예뻐? 이상하게 생겼구먼. 너 보는 눈이 이상하구나?”가 되고, ‘이런 견(見)이 있나!’가 된다.
“제 작품은 관념과 현실 사이에 있어요. 어떤 물건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물건 자체는 현실이고, 그 물건에 대해 아는 정보와 경험, 상식 등이 관념이라 할 수 있죠. 그 사이에서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양쪽의 이야기를 두루 살펴보고 싶었어요. 어떤 것이 옳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의 다양화를 시도하고 싶었거든요.”
작품을 보는 이에게 줄 ‘이런 식으로 감상하면 된다’는 조언은 따로 없다. 스스로 알아서 보고, 또 보일 것이기에.
▲이지성, ‘남산타운아파트’. 스티로폼, 핸디코트, 페인트, 510 x 270 x 11cm. 2014.
애초에 작가가 먼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청각이었다. 본격적인 시각 작업으로 넘어오기 전, 청각과 시각 사이의 연결고리 작업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소리저울’ 작품은 저울 위에 마이크를 단 그릇을 올렸다. 약한 바람이 살짝 불기만 해도 그 흔적이 저울에 측정되게끔. ‘소리거울Ⅱ’엔 카메라를 설치했다. 거울 같은 모양을 한 설치물 앞에 서면 사람의 몸에서 방출되는 파장에 따라 모니터에 여러 선이 나타나는 방식이다. 자연스레 선은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가진 각기 다른 파장을 각자가 지닌 고유의 소리로 해석하려 든 시도였다.
▲이지성, ‘소리저울’. 마이크, 모터, 저울, 20 x 28 x 33cm. 2012.
이렇게 소리에 대해 연구하던 작가가 현재의 시각 작업으로 넘어간 계기는 무엇일까. 작가에겐 사춘기를 앓는 듯 했던 작업의 방황 시기가 있었다. 대학 시절, 미술 하는 사람들의 큰 화두인 ‘뭐 먹고 살지?’에 휩쓸려 다른 일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전공에 집중하지 못했다.
‘부정적 치열함’에 대한 거부가 ‘적당히의 굴레’로…
세상 다시 돌아보는 시각 작업으로 극복
그리고 여기엔 ‘부정적인 치열함’에 대한 거부 의식도 자리했다. 작가는 “자신이 예술가라는 사실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표현력을 과시하거나 예술가 특유의 문법화 된 장치를 사용해 불편함을 주는 경우를 부정적인 치열함으로 여겼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친 치열함이 주는 거북함을 피하다 보니, 정작 자신이 ‘적당히’에 만족해버리는 굴레에 빠졌다.
▲이지성, ‘소리거울Ⅱ’. 웹캠, 모니터, 62 x 100 x 6cm. 2012.
그 결과 ‘적당히’가 용납 안 되고 일정 기준을 넘어야 하는 졸업 작품 심사에서 탈락을 경험했다. 예측치 못한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 이때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 열심히 하라”는 교수의 격려 채찍질을 맞봤다. 정말 자신이 즐거운 마음으로 열정을 다 쏟은 작업이 있었는지를 자성하며 카메라를 든 채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걷던 어느 날, 비행기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진짜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나섰던 날이었어요. 당시 목동 쪽에 살았는데 비행기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이었죠. 처음엔 소리가 들려 하늘을 쳐다봤고, 그제야 비행기를 봤죠. 처음엔 비행기만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늘에 비행기의 항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목동에서 김포공항까지 두 시간 정도 하늘을 촬영하며 걸었어요. 그런데 전혀 피곤하지 않고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비행기로만 인식했다가 느릿느릿 걸으며, 처음엔 보이지 않던 비행기의 항로가 점점 눈에 들어오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이 과정의 결과물이 ‘비행기가 있는 풍경’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무심코 쉽게 지나쳤던 풍경들을 다시 되돌아보는 일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정보가 넘쳐 흐르는 세상에 볼거리는 초 단위로 쏟아져 나온다. 이렇게 볼 것이 많은 세상에서 정말 제대로 보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 그 점 또한 궁금해졌다. 과연 자신이 눈으로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혹시 놓친 것은 없었는지, 자세히 봐야 할 것은 없는지 다시 눈을 굴리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지성, ‘비었음 - 건설하려면 클릭(스마트폰 게임 ‘메가폴리스’ 중에서)’. 인조잔디, 520 x 300 x 2cm. 2014.
‘남산타워’ 작업도 여기서 비롯됐다. 실물에 근접한, 역대 최대 크기로 제작한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심리적 고생과 실수는 가장 적었다.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아파트를 떠나 이사한 남산 인근의 아파트에서, 마주하는 풍경에는 늘 남산타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부시게 하얀 남산타워의 높고 거대한 원기둥 형태가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이 시각적 경험을 작품에 담았다. 멀리서 사진을 찍고, 레이저 측정기 등을 사용해 최대한 실물과 비슷한 크기로 제작한 스티로폼을 이어 붙였다. 늘 익숙한 남산타워 이미지였지만, 막상 작품을 통해 가까이에서 이 이미지를 본 사람들도 남산타워의 색다른 면을 발견하며 흥미를 보인 작업이었다.
이어서 선보인 ‘남산타운아파트’ 또한 실측한 크기를 적용해 시각적으로 비슷한 모양새를 재현했다. 스티로폼을 연결하고, 실제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 10동을 페인트로 칠했다. 실물 크기를 고집하는 건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작가가 다시 주목하는 건, 바로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 속 풍경이다. 그 현실에 대한 시각의 다각화를 추구하기에 이러한 작업 방식을 묵묵히 이어간다.
▲이지성, ‘남산타워 일부’. 스티로폼, 핸디코트, 페인트, 350 x 360 x 35cm. 2013.
그리고 이 현실 풍경이 포착되는 지점은 바로 자신의 일상이다. 작가는 먼 곳에서 소재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미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가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한다는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뭐든지 눈에 많이 담고 경험해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는 것.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긴 했지만 강박관념으로 꽂혀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자신이 가장 많이 알고, 보고 있다고 느끼지만, 1분 뒤 다시 돌아보면 새로운 점을 또 볼 수 있는 일상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느꼈다.
“일상 속 소재는 무궁무진, 이렇게 본 적은 있나요?”
“저는 작업을 할 때 먼 곳에서만 찾고 싶지 않았어요. 누구나 쉽게 경험했을 만한, 공감 요소가 큰 일상 속에 작업 소재가 많다고 느꼈거든요. 그 소재들을 눈앞에 가까이 보여주고 ‘이렇게 본 적은 있나요?’라고 말을 걸어보고 싶은 거예요. 세상을 단편적으로, 너무 쉽게 지나치지만 말고, 다시 돌아볼 수 있도록 그 계기만 마련해줄 뿐입니다. 거기서 ‘어떤 가치를 발견하세요’라며 강요하는 것도 아니에요. 다시 돌아본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죠.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양해질수록 흥미로운 작업도 많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릴 때 피아노를 쳤던 경험은 ‘연주하기’ 작업에 담았다. 작가는 엄마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학교 음악 시간엔 반주를 맡았으며, 대학에 와서는 피아노 동아리에 들어갔다. 실제 사용하던 악보를 펼쳐놓고 그 앞에 점토를 길게 깔았다. 그 점토를 피아노 치듯 연주했다. 다양한 손가락의 흔적은 점토 위에 고스란히 남았다. 음악의 선율을 시각화해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지성, ‘비행기가 있는 풍경’. 소니 PJ-580, 6채널 비디오, 40초 반복. 2012.
최근엔 길을 걷다가 발견한 까치집에 흥미를 느껴, 이를 작업으로 옮겨 올 생각을 구상 중이다. 까치집을 연구한 고등학생의 보고서도 찾아봤고, 레이저 거리 측정기로 실측도 할 예정이다. 피아노나 까치집이나 모두 일상에서 발견한 뒤 작업으로 옮겨졌고, 보여줄 풍경들이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 하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된 사실에 감사하다.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고, 시간을 어렵게 내야 하는 데다 그것마저 사치로 여기는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과 달리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내가 속한 이곳의 필수 덕목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작가가 세상의 풍경을 다시 보려 하는 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똑바로 바라보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또 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을 좋아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생일 아님을 축하하는, 그래서 1년 중 364일에 파티를 열고 즐거워하는 모자 장수, 토끼처럼, 무료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일상을 특별하게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그저 무료하게 지나버리는 일상, 그 속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꾸준히 발견해 보여주고 있는 작가가 앞으로는 어떤 세상을 보여줄지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