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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스타 미술가] ‘골방 속 괴팍人’ 편견 깨고 레드카펫 사뿐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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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7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04.07 08:51:13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오늘날의 미술가들은 마치 스타들이 그런 것처럼 대중매체를 통해 빈번히 노출된다. 그들은 TV, 신문과 잡지를 비롯한 다양한 통로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고 작업 과정을 공개한다. 개인적인 삶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작가들 중 일부는 공식 석상에서 매우 세련된 쇼맨십을 보여주며 익숙한 포즈로 사진 촬영에 임한다. 

한편 전시의 부대행사로 열리는 강연, 관객과의 대화에는 많은 사람들이 미술가를 만나고 직접 소통하기 위해 참석한다. 몇몇 유명 미술가들의 사인회는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많은 팬을 보유한 미술가들은 대중스타 같은 인기를 누리고 그들의 이름과 작품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그 자체로 경제적 가치를 보유한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제프 쿤스(Jeff Koons), 요시토모 나라(Yoshitomo Nara) 등이 대표적 예일 것이다. 미술계의 슈퍼스타인 이들은 어디를 가든 관심과 환호를 받으며 모든 스타가 그렇듯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인터넷에는 이들의 파파라치 사진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거리나 음식점에서 이들을 알아본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연예인을 향한 것과 흡사하다. 

해골을 다이아몬드와 백금으로 꾸민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2007)와 나란히 찍힌 허스트의 얼굴 사진은 그의 작품만큼 유명하다. 레드 카펫에서 포즈를 취하는 쿤스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하다. 나라의 작품 속 아이는 그 어떤 스타보다 사랑받는다. 

장르 섞이는 혼종 시대에 미술가 달라질 밖에

사람들에게 ‘미술가 혹은 예술가는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이 아직도 ‘고독한 사람,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홀로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 자신을 이해 못하는 세상과 갈등하는 사람’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중매체가 발달한 오늘날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그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들이 유명해지고 사랑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과거에도 유명 미술가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소비되는 미술, 미술가의 이미지가 바뀐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권오상, ‘더 스컬프처 2(The Sculpture 2)’, 브론즈에 페인팅, 462 x 220 x 113cm, 2005. 사진 제공 = 아라리오 뮤지엄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 이전의 미술가들은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16세기에 들어서야 미술가는 신과도 같은 창조주, 무에서 유를 만드는 천재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이들의 사회적 위상도 높아졌다. 대가라 불리는 천재들은 부와 명성을 누렸고 라파엘로(Raffaello Sanzio)나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Elisabeth Vigee-Lebrun)처럼 사교계의 인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세기에는 새로운 조형 언어, 혁신적인 예술을 실험하고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구자로서의 예술가 상이 일반적이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더니즘(modernism) 미술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오늘날 같은 스타 이미지를 처음으로 보여준 진정한 미술가는 끝없이 스타를 꿈꾸고 명성을 갈망했던 앤디 워홀(Andy Warhol)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스타와 같은 미술가의 모습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대중매체의 발전, 미술시장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논리, 미술가의 정체성에 대한 미술가 자신과 대중들의 변화된 태도들도 이러한 변화에 기여했다. 요즘의 미술가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그리고 대중의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스타 같은 행보를 취한다. 

현재진행형인 우리나라의 미술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천으로 만든 아름다운 집들을 통해 작가 자신의 기억을 은유하고 노마디즘(Nomadism)과 같은 동시대적 이슈를 담아내는 서도호의 개인전 ‘집 속의 집’(2012)에는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다녀갔다. 전시 기간 중 문화예술을 다루는 대부분의 TV 프로그램, 뉴스에는 그를 소개하는 영상이 방영되었고, 잡지에는 그의 인터뷰가 실렸다. 

전시 ‘Atta Kim: on-Air’(2008)를 기념하여 열렸던 김아타의 강연회 ‘아용아법(我用我法) - 공기놀이’는 참가 신청이 조기에 마감되었으며 실제 강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김아타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나얼, ‘RRACE’, Collage & Mixed Media, 60 x 95cm, 2009. 사진제공 = 나얼 작가

‘디오더런트 타입(Deodorant Type)’, ‘더 플랫(The Flat)’, ‘더 스컬프처(The Sculpture)’, 그리고 최근의 ‘뉴 스트럭처(New Structure)’ 시리즈를 통해 조각의 개념과 영역을 탐구하는 권오상 역시 대중들과 미술 전공자 모두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스타 작가이다. 작업이 보여주는 예술성,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이들의 명성, 대중들의 관심과 호감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사실 ‘스타 미술가’라는 제목은 현재 진행형인 미술에서 발견되는 두 부류의 미술가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하나는 이 글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스타처럼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작가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로 활동하는 대중 스타이다. 후자의 경우 아트(art)와 엔터테이너(entertainer)를 결합해 ‘아트테이너’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현재 우리 문화의 트렌드가 되었다. 이 글에서 스타 미술가를 얘기한다고 했으니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후자의 이야기를 기대한 경우가 많았을 것 같다. 그런 독자를 위해 단어 그대로 스타와 미술가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나얼의 이야기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가수 나얼’보다 ‘작가 나얼’이 먼저인데…

미술을 전공한 나얼은 가수로 먼저 알려졌다. 그는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싱어송라이터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미술가 나얼 역시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드로잉, 치밀한 콜라주(collage)와 아상블라주(assemblage) 작업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미술과 음악을 넘나드는 나얼의 활동은 변화된 시대를 보여주는 한 예일 것이다. 

미술가가 스타가 되는 것, 스타가 미술가가 되는 것, 이 모두 현재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다. 미술가가 작품에 몰입하지 않고 스타로서의 유명세와 명성에만 집중한다거나, 스타가 유명세를 악용하는 것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그러나 편견과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계와 경계가 사라지고, 장르와 장르가 만나며, 다양한 가치와 의미들이 교차되는 혼종성의 시대에 미술가의 정체성과 행보도 변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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