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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 법률 칼럼] 만취여성 도와줬다 성범죄자 몰린男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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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79호 안창현⁄ 2016.04.14 14:50:32

(CNB저널=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변호사들은 모이면 사건 얘기를 합니다.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도 사건 얘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다뤘던 사건에 대해 동료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승소한 사건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좀 재미없을지 모르지만, 변호사들은 사건 이야기를 할 때 제일 눈이 초롱초롱해집니다. 그런데 변호사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간접 경험을 합니다. 다른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을 듣고 자신의 사건에 적용해보기도 하고, 나중에 유사한 사건을 다룰 경우 유사한 사건을 해봤던 변호사에게 묻기도 합니다.

본인이 직접 다뤄본 사건만으로 변호사가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 변호사들에게 “네가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선배들이 담배 피우는 자리에는 있어라’고 조언합니다. 담배 피우고 커피 마시는 자리는 정말 많은 정보가 공유되는 자리입니다. 이런 식으로 간접 경험을 한 변호사와 그렇지 않은 변호사는 3~4년 시간이 흐르면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제 나름의 경험입니다.

며칠 전 변호사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변호사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최근 안면이 있는 기자의 페이스북에서 본 ‘자기 친구’의 성범죄 사건에 대한 얘기가 오갔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그 기자의 친구는 술에 취해 계단에 엎드려 있는 한 여자를 혹시 다치거나 하지 않도록 조심히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안전을 위해 119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출동한 119 소방관들에게 여자가 “저 사람이 날 만졌다”고 한 것입니다. 졸지에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친구는 여자가 계단에 쭉 뻗어 있어 더 다칠까 싶어 위로 끌어올린 경우고, 자기는 추행범이 아니라고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경찰은 남자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현장의 CCTV가 발견됐습니다. CCTV 화면에는 여자가 만취해 장시간 쓰러져 있는 모습과 남자가 여자를 계단에서 끌어올리며 조심해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다행히 현장에 CCTV가 있어 누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식사 자리의 좌장이던 한 원로 변호사는 이 사건을 듣고는 자신의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탄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CCTV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두렵고, 어린아이랑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최대한 피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유인즉,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저 아저씨가 날 만졌어” 한 마디만 하면 자신의 인생이 파멸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가르친 것이 지하철에서 조심하는 법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려준 변호사는 이제 70을 바라보는 선배님입니다. 동석한 변호사들은 이 얘기에 이어 저마다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습니다. 모두 유사한 얘기였습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하고 있는 변호사들도 몇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성범죄 수사·재판 관행에 개선 필요

필자도 성범죄를 많이 다뤘습니다. 피고인 변호사의 입장에 선 경우도 있고,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다룬 경우도 있습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법원에서 피해자를 위해 선정하는 국선변호사를 말합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피해자의 심신을 안정시키고, 증언 과정이나 조사 과정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역할은 더욱 커집니다. 법정에서 진술하기 어려울 것을 대비해 조사 과정을 녹화하고,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아이 대신 법정에 출석해서 진술합니다.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한 장면. (사진=위키미디어)


현재 필자는 4년 정도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고인의 입장과 피해자의 입장을 모두 경험하게 됩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도 함부로 말하지 못합니다. 가해자가 무죄라는 생각이 들어도 공석에서는 쉽게 말하지 못합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들이 모이면 우리는 범죄 진실과 관계없는 ‘피해자를 위한’ 변호사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일단 성범죄의 가해자로 지목되면 설사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그 기간 엄청난 어려움을 겪습니다. 주위로부터 성범죄자로 낙인찍히고, 재판 과정도 고통스럽습니다. 무죄 판결이 나도 피해자를 무고죄로 처벌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고, 처벌되는 경우에도 처벌 수위가 낮습니다.

심지어 수사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받을 때 피해자에게 없는 사실을 진술하면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도 제대로 고지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수사기관이 ‘민원 제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피해자 말만을 믿고 수사한다는 느낌도 종종 받습니다. 수사나 재판 관행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점들이 쌓여가면서 우리나라는 불신의 사회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앞선 선배 변호사의 말처럼 아예 문제될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길 가다 싸움을 봐도,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봐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아니 신고조차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고했다가 잘못 엮일 경우 ‘참고인 조사’나 ‘증인’으로 수사기관과 법원에 불려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씁쓸한 얘기지만,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오해를 받을 행동도 하지 말아야겠지만, 일방적으로 피해자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영화 중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쉘위댄스’를 만들었던 감독의 영화인데, 한 청년이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려 누명을 벗기 위해 재판을 하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옵니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 원하는 바로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주시기를.”

(정리=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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