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중에는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새롭게 고안해 자신만의 창조적 논리체계를 구축하는 작가가 있다. 특히 남태평양 바누아투 공화국 출신 작가 질 바비에(Gilles Barbier, 51세)는 자신만의 방법론으로 하나의 생태계(Echo System, 메아리 체계)를 만들어낸다.
항상 인공두뇌학(Cybernetic)과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았던 질 바비에는 1970년 고안된 존 콘웨이(John Conway)의 소프트웨어 '생명게임(Game of Life)'의 원리를 자신의 작업 체계에 적용했다. 세포 자동자(Cellular Automaton)의 대표적 예인 존 콘웨이의 생명게임은 임의적으로 배열된 세포들이 기본 법칙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 소멸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증식의 퍼즐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이다.
작가는 이를 자신이 고안한 동명의 작품(생명게임)에서 실현한다. 일종의 보드게임인 이 작품에는 '인간 주사위'가 등장해 일련의 형태와 사건을 연출한다. 이 인간 주사위는 유명한 소설가 루크 라인하르트를 모델로 했다. 주사위가 나타내는 결과에 따라 모든 결정을 한다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인간 주사위는 해당 메시지가 있는 체스 판 위의 네모 상자를 찾아 무작위로 작동된다. 길 위 바나나껍질, 지렁이, 뇌 등 미끄러운 것을 떨어뜨리고 갈 수도, 주사위 숫자 알고리즘에 맞춰 이동할 수도 있다. 도착한 장소엔 작가가 고안한 구체적이지 않은 문장이 나타나고 이 문장으로 인해 예술작품이 스스로 만들어진다.
질 바비에는 1992년, '생명 게임'의 첫 번째 버전을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상징적인 대형 기계 장치를 구상해,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모든 과정에 이 장치를 활용한다. 이 첫번째 '창의적인 기계 장치'를 통해 사전모사 연작이 탄생했다. 1992년 보자르 미술학교를 졸업한 직후 자기만의 작업방식(시스템)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문장에서 질 바비에는 “일요일에 일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일요일은 일반적으로 쉬는 날이기에 그는 창의적이지 않은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 사전모사 작업은 일러스트가 들어간 불어 사전을 2m x 2m 크기의 대형 도화지 위에 필사한 것이다.
또한 실수가 생길 때마다 대형 도화지 옆에 마련한 작은 실수 목록에 모든 실수를 별도로 기록했다. 1992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현재까지 알파벳 A부터 M 페이지까지 필사했다고 한다.
이렇게 질 바비에는 작품들이 스스로 발전하고 연장되는 것, 즉 자가생성되는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하는 데 집중했다. 이런 장치를 통해 메아리(에코, Echo)를 갖고 싶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에코 시스템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얼굴을 꼭 닮은 미니어쳐 작품들도 많이 눈에 띈다. 질 바비에는 이렇게 자신의 축소판을 만들어낸 이유를 "다양한 몸으로 다양한 곳에서 거주하고 싶다는 희망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체스의 졸(卒)인 폰(Pwan)이 된 작가의 미니어쳐는 실제로 턱시도, 공주 옷, 하와이 휴양지 셔츠, 기모노, 삐에로 등 다양한 옷을 입고 있다. 이 졸들을 이용해 전시장에 설치된 체스판 위에서 체스 게임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리쉬 라 벨 드 메가 공동주취한 이번 전시는 4월 13일~7월 3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