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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展 ⑦ 고양레지던시] 거꾸로 매달린 청춘부터 자기계발서 풍자까지

2016 입주작가 소개전 ‘Intro' 5월 31일~6월 12일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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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6호 윤하나⁄ 2016.06.03 17:26:23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 소개전 '인트로(Intro)' 입구. 유화수의 조각(우측)과 윤지영의 조각이 전시됐다. (사진 = 고양레지던시)


고양레지던시는 서울에서 파주 가는 길 옆 고양시 고골마을에 위치했다. 조용한 이 마을에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이 자리한 지 벌써 12년이 흘렀다. 고양레지던시는 국내 초창기 레지던시들 중 하나로, 각종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을 선행 실험하며 다수의 후발주자들에게 벤치마킹 모델이 되어 왔다. 최근 2016년 새로 입주한 젊은 작가들의 소개전시가 열리고 있어 그곳을 찾았다.

 

국내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원천지

 

고양레지던시(2004년 개관)는 창동레지던시(2002년 개관, 이하 창동)와 함께 국내 유일한 국립 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통칭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창작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가장 오래된 국내 레지던시 중 하나다. 더욱이 국립 미술관이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기 때문에 그 독특한 입지를 다져왔다.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들의 운영기관이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데 있다. 2014~15 ‘인트로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교육동에서 열리는 등 국립현대미술관 공간을 활용하거나, 최근 신설한 작가연구세미나를 통해 입주작가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인력과 직접 만나 세미나를 갖기도 한다.


고양레지던시는 작업 공간 마련이 어려운 미술 작가들에게 창작 여건을 제공함은 물론, 예술가로서의 자기 계발을 위한 역량강화 프로그램 운영 및 해외 진출 기회 제공을 위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갖췄다. 올해도 호주, 캐나다, 독일, 일본, 대만의 기관과 작가를 맞교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

  

▲고양레지던시의 건물들. 넓은 부지와 쾌적한 시설 등 창작 환경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사진 = 고양레지던시)

 

[인터뷰] 최승현 매니저

“레지던시의 장기 비전 제시할 때”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레지던시가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양적 포화가 질적 만족을 보장하진 않는다. 최근 몇몇 사설 레지던시들의 부실한 프로그램과 시설, 무책임한 운영, 비합리적 계약 등으로 작가 지원보다 입주 작가 활용에만 주력하는 등 폐해가 대두되고 있다. 작가들 또한 레지던시를 창작 기회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이력 수집을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거나, 레지던시가 작가를 위한 서비스 기관이라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서로를 향한 잘못된 이해와 바람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과 오해로 얼룩지고 있는 가운데 그간 한국 레지던시의 큰 물결을 지켜봐온 고양레지던시의 최승현 매니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고양레지던시가 작가들을 위해 가장 주력하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작가연구 세미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문 학예인력과 함께 만나 작가의 작업을 전문적으로 확장하는 자리다고양레지던시는 초창기에 한국 최초로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는 입주작가들이 미술관 학예팀을 만남으로써 미술관 내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게 보다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 고양레지던시를 거쳐 간 작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고양레지던시는 젊은 청년작가들이 주로 입주한다. 올해 최연소 입주 작가는 90년생이다. 레지던시는 장기적인 사업인 만큼, 지난 10여 년간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를 거쳐간 젊은 작가들의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맺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최근 젊은 작가들이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열린 만큼 고양레지던시 출신 작가들도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작년 '올해의 작가상' 4명 후보가 모두 국립미술창작스튜디오 출신이었다."



▲목공과 철공 작업이 가능한 공동 작업실. (사진 = 고양레지던시)


레지던시를 운영하며 힘든 점은?

"레지던시는 작가 지원 사업인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만 급급한 경우가 있다. 성과 위주로, 특히 단기 성과에만 집중하면, 결과적으로 작가와 기관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몇몇 작가들은 레지던시를 잠시 지나쳐가는 서비스 기관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레지던시는 작가들을 위해 존재하지만 기관의 장기적 목표에도 부합해야 한다. 작가 지원 프로그램은 당연하지만, 장기적으로 작가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고양레지던시의 장기 비전은?

"고양레지던시는 국립기관으로서, 다른 레지던시에 모범이 되고자 늘 노력해왔다. 역사가 오랜 만큼 타 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돼왔다. 비평가 1:1 매칭이나작가들의 국제 맞교환 입주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고, 현재까지 많은 기관들이 이를 차용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특성화도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도 중심을 잡으며 새로운 발판을 만드는 곳이 되고 싶다."

 

- 고양레지던시를 꿈꾸는 작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작가 본인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레지던시는 작가의 에너지로 운영되는 곳이다. 레지던시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여길 찾아오고, 기회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윤지영, '적당한선에서'. 가변크기, 조각+퍼포먼스(영상),스판덱스 천, 액상라텍스, 철, 솜, 실리콘. 2015. (사진 = 고양레지던시)


인트로(Intro)'

고양레지던시가 매년 열어온 입주작가 소개전 인트로(Intro)'531~612일 열린다. 20163월 이후 입주 작가들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자리로, 앞으로 한 해 동안의 작품 활동을 기대해볼 좋은 기회다.


참여 작가는 고재욱, 곽이브, 김남현, 김라연, 김신영, 김잔디, 김준, 심승욱, 연기백, 유화수, 윤지영, 이지양, 장서영, 최태훈, 최형욱, 황문정 총 16인이다. 매해 특정 장르를 구분 지을 수 없는 국공립 기관의 특성상 회화, 영상,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의 활용 작가가 선발됐지만, 올해는 특히 설치작업의 비중이 눈에 띈다.

 

중앙홀에 설치된 윤지영 작가의 적당한 선에서는 어느 공간에나 가변적으로 설치 가능한 오브제와 줄을 사용해 공간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어떤 구조에서 늘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타협점을 만드는 현실을 표현했다. 작가가 천으로 직접 짠 줄을 통해 각 오브제들은 긴장을 유지하며 서로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 긍정적 공존을 위해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들, 그 안의 저항과 타협, 그리고 회의감에 초점을 맞춰 긴장관계를 이끌어낸다

 

윤지영 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영상 작품도 함께 공개됐다. 공포감을 자아내는 높이의 철봉에 매달린 작가는, 긴 머리카락도 천장에 묶여 있는 상태로 몹시 힘겨워 보인다. 그런 작가의 주변에 키큰 사다리 두 대가 양옆에 서고 두 사람이 올라 작가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다. 철봉에 의지해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천장에 고정된 자신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상황은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지양, '무제 #12'. 152.8 x 115.2cm, 라이트젯 프린트. 2013. (사진 = 고양레지던시)


이지양 작가의 사진은 가까이 대면할수록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실제로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거꾸로 매달린 상태로 촬영됐다. 거꾸로 있을지언정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인물 사진은 어쩐지 이쪽으로 기묘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방향을 비틀어 보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지양 작가는 이 독특한 사진 작업을 통해 중력을 거스르며 살아내는 인간을 표현한다.


최형욱 작가의 '셀프 맴매 컨트롤러'도 흥미롭다. 학생들을 위한 필수품이란 설명서도 첨부한 이 조각은 스스로를 체벌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생 스스로 잘못했다고 느끼는 만큼 매의 대수를 다이얼을 통해 설정하고(1~60대 중 선택 가능) 버튼을 두 번 누르기만 하면 '셀프 체벌'이 가능하다. 체벌기 막대가 90도 각도로 움직이면 그 아래 손을 대고 잘못을 뉘우치라는 메시지가 익살스런 풍자로 다가온다.



▲황문정, '개입, 위장, 동화'. 248 x 182 x 80cm, 나무, 채소, 흙. 2016. (사진 = 고양레지던시)


황문정 작가는 고양레지던시 바로 옆 텃밭을 흥미롭게 보고, 텃밭 옆 레지던시의 시멘트 마당 위에 미니 텃밭을 만들었다. 이웃 텃밭 너머 레지던시 담장에 설치된 이 테라스식 미니 텃밭은 마치 옆 텃밭을 모방해 위장 중인 스파이처럼 보인다. 작가는 주변 환경과 자연 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특정 장소의 맥락을 연구한다.


최태훈 작가는 여러 점의 자기계발서 표지를 겹쳐 재편집한 이미지를 활용한다. 최근 유행하는 '성인을 위한 색칠공부'를 연상시키는 이 자기계발서 표지 작품은 책의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스트레스를 흘러넘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들과 닮았다. 표지의 제목들을 모아 작품 제목을 만든 점도 흥미롭다. '미친 여자가 몸과 사랑에 빠지는 하루 1% 집중력'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소통과 인맥의 기술이라는 악당의 명언' '말싸움에도 약해지지 않는 마음, 열정 리더에겐 지름길이 있다' 등 부조리한 말의 향연이 풍자의 통쾌함을 전한다.


이외에도 국제교환 입주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 중이거나, 입주 예정인 독일, 대만, 일본, 호주, 캐나다 등 5개국 6개 기관의 해외 작가 포트폴리오도 전시장 한편에 자리했다. 전시는 6월 12일까지.



▲최태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소통과 인맥의 기술이라는 악당의 명언'. 29.7 x 21cm, 종이위에 색연필. 2016. (사진 = 고양레지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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