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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아트스펙트럼 ② 옵티컬레이스-안동일] "아버지도 아들도 슬픈 한국 현대사"

개인은 산업화로 지워지고, 행복은 가족재산으로 결정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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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6호 김연수⁄ 2016.06.03 17:26:11

▲옵티컬레이스, '가족계획'. 혼합 재료, 가변 크기. 2016.(사진=리움미술관)

이번 전시는 기획전이 아니기에 출품작들이 내포하는 주제를 하나의 공통점으로 엮을 수 없고 작가-팀마다 각각의 의도에 맞춰 감상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올해 리움미술관 아트 스펙트럼 출품작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해석이다.


이런 분위기는 30대 작가들이 대부분인 초정 작가들의 세대 특성과도 맞물린다. 이 세대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전시 작품 중에서도 옵티컬레이스와 안동일의 작업은 각박한 경제상황에서 고민하는 젊은 세대의 고민과 더불어 이들의 고민이 단순히 개인 삶의 영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준다.


옵티컬레이스 “한국 가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2014년 각종 SNS에서 인포그래픽 하나가 화제가 됐다. 숫자가 적힌 원들이 나열된 사각형 그림이었다. 세로 축은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재산을, 가로 축은 자녀 본인의 소득을 나타낸다. 그 지표를 맞춰보면 자녀가 독립할 때 보유할 수 있는 자금의 액수를 알 수 있다. 원은 액수가 높을수록 무지갯빛 순서의 색으로 채워져 있고 가장 높은 액수는 검은색, 마이너스 자금은 회색의 원이다. 그래프는 절반가량이 회색으로 채워져 있다.


이 인포그래픽은 옵티컬레이스가 2014년도 아르코미술관에서 선보인 프로젝트 ‘확률가족’이다. 당시 전시 공간 바닥에 이 동그라미들을 가득 채우고 관객이 자신의 자금 상황에 맞는 원을 찾아 들어갔던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였다.


▲옵티컬레이스, '확률가족'. 2014. (사진=김형재)


옵티컬레이스는 그래픽 디자이너 김형재와 정보 시각화 연구자 박재현으로 이뤄진 팀이다. 그들은 주로 도시의 삶과 문화를 통계 자료의 시각화를 통해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확률가족’은 그들의 관심이 가족으로 옮겨진 다음 선보인 첫 작업이다.


박재현은 “일본에 자살하는 사람들의 유서를 모은 책이 있는데, 그들이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말은 대부분 ‘미안하다’는 것이다. 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 즉 가족 구성원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인들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아의 틀 즉 개인 삶의 주기와 정신 형성이 가족 구성체 안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확률가족'이 아르코미술관에 설치된 전경. 2014.(사진=김형재)


“내 짝이 보유한 자금은 얼마?”


이번 아트스펙트럼에서 선보이는 작품 ‘가족계획’은 ‘확률가족’이 확대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확률가족이 개인의 독립자금을 계산해 볼 수 있는 평면의 인포그래픽인 반면, 이번 작업은 결혼할 커플의 두 집안 자금 상황을 합친 통계를 그래픽으로 나타낸다. 나타내야 할 지표의 축이 늘어남에 따라 3차원의 입체 설치작업으로 표현됐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원들은 지난 작업과 같은 형식이지만, 축은 이제 개인과 가족의 돈이 아니라 결혼할 남녀와 그 가족의 돈이다. 공중에 설치된 피라미드형 조형물에는 바닥에서 찾아낸 남녀 소득의 조합에 양가 부모의 주택 소유를 기준으로 예비부부의 결혼 자금을 도출할 수 있는 지표가 드러난다.


▲'가족계획'의 바닥 설치 이미지.(사진=리움미술관)


확률가족 작업을 만났을 때, 자신들의 자금뿐 아니라 현재 연애 중인 상대의 자금까지 더해봤다는 관객들의 경험담에서 이번 작업의 힌트를 얻었다는 작가들은 “결국 결혼정보회사 운영자의, 혹은 관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며 냉소 섞인 농담을 던졌다.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상대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고, 결혼 자금 마련에 부모의 자금 능력이 동원되는 한국만의 특수한 결혼 문화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한편, 효과적인 정보전달을 위한 기존의 인포그래픽이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지표라면, 이들의 작업은 미술관 안으로 진입하며, 사회의 단면들이 모여 이뤄낸 하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든다. 이들은 “정보전달을 위해 쓰이는 그래프의 숫자들은 어느 특정 집단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숫자들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세대 즉, 결혼을 앞두고 있는 2~30대 이외의 세대가 이입‧공감 할 수 없는 숫자들이라면 그들에게 숫자들은 세대를 상징하는 기호로 작용하고, 이 작품은 현재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세대가 구성하는 가족 공동체의 풍경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아는 혼자 형성되지 않아” 


옵티컬레이스가 표현 재료로 사용하는 통계는 감정이 배제된 채 숫자와 그래프로만 현 사회의 단면을 나타내는 자료들이다. 이것들이 구축돼 보여주는 세상은 그래서 더 냉정하게 현실로 다가온다. “이곳에 데이트를 오는 커플들도 많을 텐데 싸움 나겠다”고 무심코 던진 농담에 그들은 “정말 그렇다. 커플들끼리 싸웠다는 반응을 꽤 들었다”고 답했다. 감정을 배제한 작업에서 더 자극적인 감정 문제가 촉발하는 아이러니다.


이들은 “감정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인 것 같다”며, “사실 이 작업을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작업을 통해 자아가 작동하는 방식이 개인 영역뿐 아니라 사회 영역이라는 점이 전달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안동일의 작업 '우리의 팔도강산'과 '우아한 세계' 설치 전경.(사진=리움미술관)


안동일 “아버지의 모습으로”


작가 안동일은 한국화와 사진을 매체로 작업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주제는 그를 둘러싼 상황에 맞춰 변했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가 사진이라는 매체로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했을 때였다. 1호선을 주로 이용했던 그는 적응을 위해 항상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의 시점에서 노출을 열어놓고 인천에서 소요산까지 한 컷으로 담아낸 것이 그 결과물이다. 그는 또한 그의 고향 대구와 서울 어디에나 있는 대형 마트의 주변 상권이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 대형마트 건물의 시점에서 바라본 맞은편 상권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그가 당시의 작업에서 내린 결론은, 신호의 형상처럼 보이는 죽죽 선이 그어진 모습도, 하나의 브랜드 마트가 지배하는 주변 상권의 모습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불어 유사하게 느껴지던 모습들이 교육 혹은 사회적 영향에 의한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단다.


흐르는 시간을 정지해 잡아내는 사진 매체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과 더불어 한 개체의 이해를 위해 그것의 시점이 되어보는 역지사지의 태도 역시 안동일 작업 방식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안동일은 우연치 않게도 옵티컬레이스가 주목했던 바로 그 세대에 딱 들어맞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올해 말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을 알아보고 있다는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을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결혼을 앞둔 작가는 최근 아버지의 부재를 절실히 느낀다. 작가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둘 사이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기억을 지우려 애썼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지금 아버지가 그런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해하려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희생 논리의 시대


작가 안동일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은 한국화를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 ‘우리의 팔도강산’과 우리나라 위인들의 동상 밑에 자리 잡은 '동상문'을 찍은 작업 ‘우아한 세계’다. 그의 작업만 설치된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니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해 전면에 배치된 회화 작업을 제외하고 양 벽에 걸린 작업들엔 시선을 잘 안 주게 된다. 사진 작업 앞으로 다가서면, '어떻게 이 동상문들을 다 들고 왔지? 다 직접 제작한 것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재질감이 살아있는 사진들이 프레임 안에 담겨있다.


'우리의 팔도강산'은 1960년대 말 진행된 민족 기록화 사업에 근간한다. 민족 기록화의 기본 사이즈인 300호 크기로 당시 발행된 기념우표에 그려진 도상들을 모아 그렸다. 그 도상들은 시멘트 공장, 경부고속도로, 수출 선박, 포항제철 등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급속하게 이뤄진 산업화의 결과물이다. 이 도상들은 비슷한 시기 국립영화제작소가 기획한 영화 ‘팔도강산’ 시리즈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국가 정책 홍보 영화의 규칙을 충실히 따른 노골적인 영화였다고 한다. '우리의 팔도강산'은 그 영화 연작의 다섯 번째 영화 제목과 동일하다.


▲안동일, ‘우리의 팔도강산’. 장지에 채색, 290 x 197cm. 2016.


'우아한 세계'는 애국선열 조상 건립 사업에 바탕을 둔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1956년 한일협정 이후 경제와 민족이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났고, 당시 세워진 동상들은 ‘애국선열’의 이름이 붙여진 장군 혹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위인의 모습이었다. 그 밑에 붙은 청동이나 돌로 제작된 동상문들은 동상 건립 사업을 금전적으로 지원한 대기업 창업주들이 주로 글을 썼다. 그 내용은 ‘개인의 목숨을 희생하여… 나라를 구하고…’와 같은 게 대부분이다. 


정리하면, 아버지 세대는 민족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논리의 시대를 살았다. 동상문은 나약한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지 않고 강인한 모습을 강조하는 리더의 신화만을 그려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은 이런 동상 비문을 사진으로 찍어 실물 사이즈로 인화했다.


▲안동일, ‘우아한 세계 - 신사임당’. 디지털 프린트, 505 x 750cm. 2016.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와 노동


안동일은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 세대의 노동을 되짚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동상문을 찾아 그 앞에서 며칠이고 몇 시간이고 완벽하게 사진에 담아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기념우표와 민족화, 영화 등에 담긴 도상을 모아 그려냈다. 하지만, 그에게 결국 각인된 것은 세월이 지나 노동의 결과물(사람이 직접 글씨를 판 흔적이 보이는 동상문) 위로, 혹은 아버지의 삶을 지탱하고 있던 이데올로기 위로 흐른 얼룩과 세월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애증의 감정이었다. 그는 산업화의 도상들을 모아 그린 '우리의 팔도강산'에서 너무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도상들을 다시 지워내는 행위를 통해 그런 감정을 표현한다.


더불어, 전시장 안을 어둡게 하고, 전면의 회화 작업에 포인트 조명을 비춰 액자 유리에 반사시킴으로써 동상문이 잘 보이지 않게 한다. 개인의 희생과 노동이 결과물에 가려짐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다.  

▲안동일이 모은 기초 자료들.(사진=안동일)


그의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연민은 현재의 젊은 세대와, 산업화 시대를 견뎌 낸 부모 세대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내가 속한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확실히 교육도 많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시대적 상황은 다르지 않다”며, “이번 작업은 답을 낼 수 없이 끝났고, 아버지란 단어만이 슬프고 그리운 상징으로 남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인상 깊었던 점은, 안동일의 작업 후 소감이 옵타컬레이스가 자신의 작업을 본 관객의 반응 예측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옵티컬레이스가 자신들의 작업을 이해한다고 해서 사회가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듯이 안동일 역시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 삶에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옵티컬레이스의 냉정하게 제시된 현실의 모습과 안동일의 세대 극복 노력은 다시 한 번 느끼는 젊은 세대의 암담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에서 현실을 느끼고 앞일을 예측하거나 절망에 그치는 것은 관객의 몫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작가 안동일.(사진=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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