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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아가씨’] 日문화 시각화해 판매 성공…조선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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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6호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2016.06.03 15:02:05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 넷. 한국과 일본, 서양 문화가 묘하게 섞였으나 '세일즈 포인트'가 되는 건, 일본 문화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여기 천한 조선인 하녀로 끼어들어갔는가?(사진= CJ E&M)


▲이상면 문화예술 편집위원/연극영화학 박사

칸 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작품 ‘아가씨’(제작 모호ㆍ용 필름, 144분)가 6월 1일 국내에 개봉돼 많은 관심을 모으며 상영 중이다. 근대 일본의 가옥과 서양식 귀족 저택을 연결한 특이한 공간에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인물들 간의 계략과 음모, 여배우의 동성애 등 장면들은 관객의 흥미를 끌 수도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은 매우 공허하다. 게다가 혼란스러운 몽타주 장면들 속에서 과도할 정도로 일본 근대 문화의 화려한 시각 연출에, 잔혹함이 더해진 기이한 연극(grotesque theatre)이 기괴하다. 

영화의 원작은 영국의 여류작가 사라 워터스(Sarah Waters, 1966~)의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 2002)다. 귀족의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주변 인물들의 모략과 동성애 관계를 다루는 작품으로, 2005년 BBC 방송사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된 적도 있다. 본래 사라 워터스는 영국의 19세기 역사 배경 속 사건들에서 여성 동성애를 즐겨 다룬다. 이런 내용이 박찬욱 감독의 흥미를 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박 감독은 ‘핑거스미스’의 유산 상속을 둘러싼 암투와 애정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되, 그 시대적 배경을 일제시대로 가져와 일본인과 조선인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영화에서 귀족은 일본인 이모부(코우즈키/조진웅 분)의 속박 속에서 자란 젊은 상속녀 히데코(김민희 분)다. 여기에 젊은 백작(하정우 분/조선인 역할도 수행)이 있고, 히데코의 하녀는 하층민 출신으로 소매치기를 하던 조선 여자 숙희(김태리 분)이다. 이 네 명이 영화의 주된 인물로, 외롭고 심약한 상속녀에게 다가가는 젊은 백작과 하녀(동성애 상대자), 그리고 그녀를 감시하고 이용하는 이모부 간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다. 

▲일본의 전통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영화 제작진. 일본의 자연과 건물, 설경 등을 이용하면 서양인들의 구미를 자극할 수는 있다. 장사에 도움이 되는 수단이다. (사진= CJ E&M)



일제감정기 택한 건 화려한 일본 배경만 이용하기 위해?

그런데, 감독은 시대적 배경을 왜 일제강점기로 택했을까? 영국의 위대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원작이, 한국의 영화에서는 일제강점기이자 개화기인 1920~40년대로 바뀌었다. 그러나 실제 영화의 배경 대부분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박 감독은 칸 영화제 개막 전에 “일제강점기 때 한일관계를 국제적인 상황에서 재조명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장면은 한 곳도 없다. 

사실, 영화는 한일합방 이후 한일관계나 당시 일본이 추구했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그에 이어 군국주의로 치닫게 된 역사 과정과는 전혀 무관하다. 근대 일본 문화는 화려하게 배경을 연출해줄 뿐이다. 그리고 네 인물간의 암투와 계략, 그리고 두 여자의 뜨거운 동성애 장면이 3부에 걸쳐 펼쳐질 뿐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일본-조선 관계도 네 인물 사이의 관계에선 전혀 읽혀지지 않는다. 일본인 귀족의 상속녀(히데코)와 조선인 하녀(숙희)와의 관계에서나, 히데코의 이모부(코우즈키)와 일본인/조선인을 오가며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관계 등 어디에서도 지배국 일본과 피지배국 조선의 관계는 일말의 상징성도 없어 보인다. 

‘아가씨’는 단지 근대 일본의 문화적 배경을 이용한 기이한 사건과 동성애를 보여주고자 했던 시각적 스펙터클 영화로 보인다. 이를 위해 영화는 특이한 공간적 배경을 이용한다. 상속녀의 성 같은 영국식 저택과 에도 시대 일본 가옥을 중심으로 엄청난 거목들이 있는 주변 풍경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실내에선 코우즈키의 거대한 일본식 서재가 그의 고서와 춘화 수집소이자 도서관이고, 독회를 하는 경매장이다. 그가 보호-감시하는 히데코가 음란소설을 독회하다가(이때 남녀 성기 이름을 그대로 발음함),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나타나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히데코의 소설 독회 때 뒤의 창호지 문에서 작은 창문이 열리며 눈발이 날리는 설경이 보이는 것도 일본식 미학의 극치를 보여준다. 가히 엽기적 상황 속의 탐미주의적 장면이라고 하겠다. 

▲영화가 펼쳐지는 건물. 서양식과 일본식이 결합된 이런 건물을, '일본 근대 양식'이라 부른다. 이 영화는 이런 장면을 볼거리로 이용하기 위해 일제강점기란 시기를 택했지만, 일제강점기의 정치적 식민-피식민성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사진= CJ E&M)


그러면, 이런 근대 일본(에도 시대)의 문화를 화려하게 시각화하는 이유와 그 효과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감독은 이런 일본 문화를 스펙터클화해 서양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근대 일본 문화를 피상적이고 눈요기 식으로, 또 종종 극단적이고 엽기적인 미학으로 포장해 제공함으로써 세계 관객을 향한 판매에서 재미를 본 것은 그동안 여러 일본 감독들이 해왔던 일이다. 이런 예는 심지어 오시마 나기사(大島渚)와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같은 명감독의 영화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아가씨’는 비동양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근대 일본 문화의 흥미로운 요소들을 화려하고 종종 기이한 장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서양인들의 시각을 자극해 판매에 성공한 작품이다. 게다가 작품 후반부에는 두 동양 여자의 노골적인 동성애 장면까지 곁들여지니 비동양권 관객들의 시선에 쾌락을 제공할만하다. 실지로, 칸 영화시장(film market)에서 ‘아가씨’는 무려 175개국에 판매됐다. 거의 전세계 국가에 판매된 셈이니 본선 진출의 득은 여기서 찾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지만, 세계 무대에 진출한 한국 영화가 그렇게 타국 문화를 스펙터클로 보여주고,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시대배경으로 한다면서 일본 문화를 그렇게 보여주고 있으니 감독의 역사관과 미학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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