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의 요즘미술 읽기] 전시장 밖으로 나온 미술 즐기는 법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미술을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가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대중매체가 발달한 오늘날의 관객들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미술을 만나고 감상한다. 비록 진품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인쇄물, TV, 인터넷 등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에서부터 잡지에 실린 전시 리뷰, 광고에 차용된 작품,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다양한 정보들에서 볼 수 있듯 미술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대중문화 속 미술
오늘날 우리가 미술을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미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 공연을 보는 것이다. 특히 영화와 공연에서 실존 미술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눈에 띤다. 물론 과거에도 예술가에 대한 전기, 작가 노트나 일기, 지인들에게 보냈던 편지 등을 묶은 출판물이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융복합 시대인 오늘날에는 영화와 공연을 비롯한 대중문화의 결과물들이 그러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이에 오늘은 요즘 미술 자체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을 향유하고 체험하는 새로운 형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올해 우리가 만났거나 만날 예정인 미술가 주인공의 공연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명동 로망스’, 연극 ‘레드(Red)’ 등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반 고흐와 그의 동생인 테오(Theo van Gogh)가 극을 이끌어가는 2인극이다. ‘명동 로망스’는 이중섭, ‘레드’에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등장하는데, 두 작품 모두 작품성이나 대중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중섭 관련해선 1991년부터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연극 ‘길 떠나는 가족’도 빼놓을 수 없다.
대중 스타 같은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미술가(예술가)들의 삶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술과 미술가에 대한 개념과 역할이 바뀌고 유일성이라는 아우라(aura), 신 같은 미술가라는 신화가 깨졌다고는 하지만 무언가를 창조하는 미술가라는 존재는 여전히 남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천재라 불리던 예술가의 삶은 특별할 것이라고 대중은 기대한다. 또한 예술 작품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특정한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사건들은 무엇이었으며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알고 싶어 한다.
▲전시 ‘이중섭은 죽었다’(2016)의 한 공간. 사진 제공 = 서울미술관
미술가의 작업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도 그들의 삶에 주목하게 한다. 특히 고야(Francisco Goya), 반 고흐, 피카소(Pablo Picasso)처럼 행복했든 불행했든 남다른 삶을 산 미술가들은 영화나 공연 예술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한국의 경우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이중섭 등이 대표적이다.
신 같은 창조자에서 대중스타로
시각예술인 미술을 다루는 만큼 이러한 영화와 공연들은 주인공인 미술가의 작품 이미지나 작품에 드러나는 시각적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고 감동을 배가시킨다. 예를 들어 영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2003)는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그림을 옮겨놓은 것 같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화 ‘미스터 터너(Mr. Turner)’(2014)는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낭만주의(Romanticism)적 풍경화를 대표하는 오묘한 대기와 빛의 표현을 영화에 담아냈다. ‘클림트(Klimt)’(2006)의 경우에는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을 대표하는 몽환적이고 아롱거리는 분위기를 영화 곳곳에서 보여준다. 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I Shot Andy Warhol)’(1996)와 ‘팩토리 걸(Factory Girl)’(2006)에서는 경쾌하고 발랄한 팝 아트(Pop Art)의 색채가 강조된다.
공연예술도 마찬가지여서 올해 초 많은 사랑을 받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극이 진행되는 동안 반 고흐의 작품 이미지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여주어 극의 이해를 돕고 감동을 배가시켰다. 따라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한 작가 혹은 그 작가가 속했던 미술 운동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영화의 진행 중에 작품 이미지가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실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유사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재밌게 만들기 위한 왜곡-첨삭 감안해야
그런데 영화나 공연이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해도 극적 재미와 완성도를 위해 그 내용이 변형되거나 첨삭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상업성을 생각하다보니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이야기를 강조하는 사례도 생긴다. 이러한 경우 의도치 않게 미술가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2008)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영화 ‘미인도’(2008)가 상영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신윤복이 여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 대표적 예다. 미술가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 예를 들어 미술가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다는 식의 전형이 만들어지고 굳어지는 것도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이다. 사극(史劇)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역사 왜곡 논란이 이와 유사한 형태다. 따라서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제작하는 사람이나 관람하는 사람 모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사진 = hj컬쳐
이처럼 영화와 공연을 통해 만나는 예술가의 삶과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은, 관객이 이후에 작품을 감상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일정 수준의 정보를 얻게 됨은 물론 감정 이입을 높여줘 작품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상상력을 발휘해 보다 깊이있게, 적극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영화나 연극의 성공은 특정 미술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 잊힌 미술가를 되살려내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미술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번 주말 미술관에 가기 어렵다면, 또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미술을 체험하고 싶다면 영화를 한 편 보거나 공연장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또 다른 즐거운 미술의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