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은 작가가 작품을 표현하는 방법만큼이나 다양하다. 이는 작가가 어떤 방법, 혹은 태도로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유추할 수 있어야 올바른 감상이 가능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창작자들 중 어느 누구도 관람자를 배제하고 제작하는 사람은 없지만, 작업 안에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는 작업의 형식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아트 스펙트럼’전 역시 초청 작업의 작가 10팀이 저마다 다른 ‘관객 개입’의 여지를 가지고 있기에 관람 태도의 유연성이 필수다.
옥인 콜렉티브 “불안정한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은 작업 자체가 관람객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미술관 1층의 전시장을 널찍하게 차지하며 짜인 마루에 관객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동행자와 담소를 나누거나 드러눕기도 한다. ‘언제 한 번 리움에 누워 보겠냐’는 한 관객의 후기처럼 발자국 소리조차 내면 안 될 것 같은 고고한 미술관에 드러누워 보는 기분은 왠지 모를 짜릿함을 준다. 하지만 몸이 편한 것만큼 작업을 만든 사람들은 그들의 의도까지 그리 쉽게 떠먹여 주지는 않는다.
이정민, 진시우, 김화용 세 작가로 구성된 옥인 콜렉티브는 미술계의 젊은 작가군 중에서도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작업으로 꽤 많이 회자되고 있는 그룹이다. 김화용이 살고 있던 옥인동의 아파트가 강제 철거되는 사건을 계기로 모인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항거 의미를 담은 이벤트성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옥인 아파트가 철거된 이후에도 활동을 지속한 그들이 주로 주목하는 것은 한국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조건들과 그것에 관련한 예술 혹은 예술가의 역할 같은 것들이었다. 젊은 세대의 불안정한 삶은 예술인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으며, 그들은 그것을 온전히 반영한 작업들을 선보이곤 한다.
아트 스펙트랄: 유령같은 예술
이번에 소개된 작업 ‘아트 스펙트랄’ 역시 사회 안에서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이 작업은 앞서 설명한 마루와 마루 한가운데 층층이 쌓인 책, 모션 그래픽 영상 작업 하나(‘무반주 운동’) 그리고 한 손으로 쥐고 들 수 있는 무게의 쌀자루와 전자레인지로 구성됐다.
그들이 제시한 작업 사용법대로 하면,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운 쌀 주머니(핫팩이나 쿠션 역할을 하는)를 끼고 마루에 앉거나, 베고 누워 책을 읽으면 된다. 책을 읽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모션 그래픽 영상의 두 점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눈 운동을 하면 된다.
그들은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이라고 했다. 책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관객의 독서 집중을 위한 장치들이란 것이다. 이번 작업의 전체 제목이기도 하고, 책 제목이기도 한 ‘아트 스펙트랄’은 전시 제목인 ‘아트 스펙트럼’을 반영했다. 젊은 작가들을 추천 방식으로 초청해 기획한 아트스펙트럼의 형식을 빌려온 ‘아트 스펙트랄’에서 옥인콜렉티브는 편집자가 되어 초대한 글들을 선보인다.
편집자인 옥인 콜렉티브와 영화 평론가 유운성, 큐레이터와 프로듀서 배은아, 한겨레 21의 편집장 안수찬, 큐레이터 안소현, 여성학자 김영옥, 비평 동인 ‘집단오찬’의 운영자 권시우, 큐레이터 리즈 박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들은 ‘사라지는’이라는 뜻의 제목 ‘스펙트랄’과 ‘유령’ ‘사라짐’ ‘불확실함’ ‘비가시성’ ‘예술가’ 등의 키워드와 함께 제시된다. 옥인 콜렉티브의 이정민의 설명에 의하면 이 글들은 예술가의 작품이 결과물로 제시되기까지의 생각과 과정이다. “미술관은 완벽한 결과물이 제시되는 공간으로서 관객들은 예술가의 작업과정이 생략된 결과물이 제시하는 환상적인 면만 보게 된다”는 그의 말은 관객을 예술가의 작업 과정으로 초대하려는 옥인 콜렉티브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이들은 “현실적으로 예술가로 작업만 해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사회 구조에서 경제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것이 현 시대 대부분을 차지하는 예술가들의 현실”이라고 전한다. 글과 제목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사라지는’ ‘유령’ 같은 핵심 키워드는 예술 작업을 할 때와 생계유지를 위한 일을 할 때 예술가의 정체성이 잠시 번갈아 가며 나타나는 현실을 은유한다.
“미술언어로 표현하는 예술가 그룹”
사실 마룻바닥은 거대한 스피커다. 책을 읽는 동안 들리는 소리는 아기를 재우는 백색 소음처럼 거의 신경이 쓰이지 않게 들리지만 어느 한 순간 귀를 자극하거나, 마루를 통해 진동을 전달한다. 한국 고전 공포 영화의 음향을 음악가 최태현과 협업해서 편집한 소리다. “농담처럼 집어넣었다”는 음향은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고, 쌀주머니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의 형상과 함께 일상 자체가 공포가 될 수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불안한 심리를 전달하는 듯하다.
옥인 콜렉티브는 “작업을 열어놓고 관객을 개입시키는 형식은 언제나 마음이 졸아드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이번 작업에서도 ‘관객들이 마루에 앉을 것인지’ ‘활자가 눈에 들어오는지’ 등의 걱정이 앞섰지만, 관객들이 생각보다 편하게 작품 안에 스며드는 모습이 좋았다고.
또한, “이번 작업을 통해 관객이 얼마나 깊숙이 예술가의 삶에 닿을 수 있는지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런 전달이 쉬웠으면 이런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관객과 예술가의 만남이 항상 부드럽진 않기에, 그런 아쉬움 때문에 다시 작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회에서의 예술가의 위치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환상의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밝히는 이들은, 작업의 주제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현실의 문제를 미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자신들이 하는 일이며, 강하고 직접적인 어조로 계몽하는 것은 자신들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별히 예술가로서가 아니더라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로서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들은 그 두려운 현실들을 날카롭지 않게 그들만의 언어로 정제해 알려주는 듯하다.
박경근, “즉물성 통해 찾아가는 한국 남성성의 원형”
미디어 아트 작가 박경근의 ‘군대: 60만의 초상’은 미술관의 벽면을 채우는 커다란 화면의 단 채널 영상작업이다. 17분 동안 재생되는 군대 안의 모습은 온전히 감독이 강하게 의도한 프레임으로 편집돼 관람자의 시선 또한 감독의 시선 안에 갇히는 느낌이 든다.
스토리는 없이 전개되는 영상은 △얼굴의 표정, 손, 발 등 신체의 일부를 클로즈업해 촬영한 화면 - 멀리 떨어져 찍은 집단의 모습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한 의장대의 모습 - 젊은 혈기를 숨기지 않는 청춘의 모습 △여성과 남성의 모습을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미동도 없이 도열한 의장단의 모습 속 개인을 찾아들어간 화면은 신기하게도 숨겨지지 않는 개인성을 가감 없이 나타낸다. 또르륵 굴러가는 눈동자와 움찔거리는 입술 등에서도 그들의 성격은 드러나고야 마는 것이다. 이 영상 중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교회 안의 군집 장면이다. 유일하게 감정 표현의 허가를 받은 단어인 듯, 통제됐던 장난기와 온 혈기를 한 데로 모아 손을 뻗으며 “할렐루야!”를 외치는 우리나라 청춘들의 모습이 흡사 광신도 집단을 연상시켜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론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이중적인 감정 상태가 된다.
뒤에 이어지는 걸그룹이 댄스를 하며 찬송가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이들의 혈기에 성적인 긴장감이 더해진다. “주님 사랑 어쩌구” 하며 걸그룹 섹시댄스에 맞춰 부르는 모습에 실소가 터지다가도 순식간에 연출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며, 이런 원초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감동은 신체로 느끼는 것”
박경근은 “어떤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간에 자기의 관점이나 자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라며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던 그는 6살 때부터 외국에서 자라 한국에서 남자로서의 자신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고 한다. 29세가 되어서야 군입대를 위해 귀국했고 한국의 제도권 교육을 3년 미만으로 받았다는 그에게 군대 문화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군대를 배경으로 한 이번 작업 이전의 작업에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한국인 남성의 시선이지만 한국 문화에 대해 모르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인의 특성을 유전자에 지니고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철의 꿈’ ‘청계천 메들리' 등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던 그의 전 작업들은 개인의 시선에 반영된 한국의 산업화 시대 측면에서 주로 해석됐다. 하지만 그가 담아낸 철의 이미지들은 그 이야기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번 작업 역시 개인성이 억압받는 집단인 군대라는 이성적 해석에 앞서, 혈기를 뿜고 있는 청춘들의 피부와 몸짓이 더 눈에 띄는 것은 기자만의 편협한 시선일까.
박경근은 미술 작업에 대해 “초등학생의 시선을 잡을 수 있다면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는 것보다 오해와 오독이 적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나 인문학자가 역사적인 담론 등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그는 “예술가의 장점은 잘 알아서 좋은 작업을 만든다기보다 의식적으로는 몰라도 직감적으로는 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감동은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며, 감각적인 체험이야말로 미술의 힘”이라고 전한다.
작가는 “찍는 대상의 표면에는 그것이 가진 모든 것들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프레임 안에 그런 즉물성을 담아내려 노력한다. 같은 대상을 찍더라도 찍는 주체에 따라 안에 담는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심은 대상이 아닌 찍는 주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가가 한국인이고 남자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의 주체는 한국 남자다. 그는 여태까지 해 왔던 작업을 “한국 남성성의 원형을 찾는 과정”으로 정리했다.
“한국남성의 원형적 모습에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들은 박경근의 작업 안에 포함된 소재에 대한 정의를 습관적으로 내리고 있는 듯 보인다. ‘산업화 시대가 나쁘다는 거야?’ ‘군대가 개인성을 말살시킨다는 거야?’와 같은. 하지만, 박경근이 집중하는 것은 프레임 안에 표면이 주는 압도감을 담아내려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대상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다. 군대 안에서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극단적인 프레임 연출로 담아내며 그 역시 감정의 흐름이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그가 감정선을 배제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담아낸 군대의 모습에서 발견한 것은 그 어느 것도 하나의 편에서 정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군대를 이루고 있는 집단과 개인의 관계 역시 개인 없이 집단이 이뤄질 수 없으며, 집단 없이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는다. 여성-남성이 모두 마찬가지다. 더불어 극단적인 한국 남성의 원형이다. 가장 남성적인 모습을 이끌어내야 하고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하며, 이 공간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서로의 환타지에 충족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박경근은 이런 현상에 대해, “서로의 모습이 그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서로 속고 속이는 공모관계”라는 농담으로 정의한다.
작가는 시종일관 편하게 작업 과정의 후일담을 섞어 수다떨 듯 이야기를 해줬다. 찍는 주체가 중심이 되는 프레임이 펼쳐지는 방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감정 전달이 우선이라는 그의 작업 지론에 어울리게도 많은 관객들이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남동생과 애인의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는 여성의 반응, 군대를 다시 가는 악몽을 꾼다는 남성들의 반응들과 함께 기자는 재작년 개봉해 볼 수 없었던 ‘철의 꿈’을 챙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경근이 이번에 선보인 17분짜리 영상은 현재 제작하고 있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의 맛보기 격이다. 의장대에 입대한 한 군인의 모습을 추적 촬영하고 있는 중이다. 촬영은 신병이 제대할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그의 연출 감각으로 펼쳐질 군대의 모습에 꽤 기대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