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간담회 후 수요일 다시 전시장을 찾았을 때도 이 점이 느껴졌다. 전시장의 한 공간에서 여전히 작업 중인 작가를 발견했다. 작업 도중 그는 쭈뼛쭈뼛하는 관람객들에게 먼저 “사진을 찍자”고 다가가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 모습을 최요한 예술 총감독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티에리와 호흡을 맞춰 ‘라이프 이즈 뷰티풀(Life is Beautiful)’전을 마련했다. 한국 관람객과 티에리 사이 소통의 장의 첫 시작을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티에리는 스트리트아트(street art: 공적으로 개방된 공간에서 이뤄지는 그림, 조각 등을 총칭. 거리 미술이라고도 함)의 거장 뱅크시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통해 알려졌다. 거리 미술의 본질을 보여주겠다는 취지 아래 스트리트아트를 펼치는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실제로 따라가는 내용이었다.
티에리는 2006년부터 붓, 스프레이를 들고 거리로 나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수많은 아이콘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표현했다. 레드핫칠리페퍼스, 마이클 잭슨, 마돈나의 앨범 디자인을 도맡아 하는 등 여러 뮤지션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으며 벤츠, 코카콜라 등 다양한 기업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예술 영역을 넓혔다. 그래피티아트(graffiti art: 벽 또는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와 팝아트(pop art: 대중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미술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한 미술의 한 경향)까지 아우르며 자유로운 작업을 펼쳤다. 그의 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열정이 영화에 담겼다.
최 감독도 이 영화를 2010년에 봤다. 이 아티스트가 어떻게 성장할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였다고 한다. 하지만 호기심이 끝이었지, 직접적인 만남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아라모던아트뮤지엄의 예술 총감독을 맡으면서 개관전 작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떠오른 아티스트는 뱅크시였다. 그만큼 그의 영화가 최 감독의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듯하다.
“뱅크시와 함께 전시를 하고 싶어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았어요. 뱅크시의 작업은 아주 자유롭지만 반사회적이고 거칠기도 하죠. 본인도 그런 태도를 지니고 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전시가 대부분 투자나 기업 후원으로 이뤄지는데, 뱅크시는 여기에 관여되는 걸 거부했어요.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쉽지만 포기했죠. 그때 그의 영화 속 티에리가 떠올랐어요. 어떻게 성장했을지 궁금해지면서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죠.”
한국 잘 몰랐던 티에리, 전시 제안에 첫 마디 “재미있겠네”
몇 년 새 티에리는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해 있었다. 팀을 꾸려 LA, 뉴욕, 마이애미, 런던 등지에서 전시를 활발하게 열었다.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 MOMA 뉴욕현대 미술관,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제2의 앤디워홀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 있고 늘 화제의 중심에 오르는 스타로 성장해 있었어요. 이름값 못지않게 작업도 풍부해 흥미로웠죠. 혹평도 호평도 많이 듣더군요. 그런데 혹평을 하는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구입하더라고요. 그 현상도 흥미로웠어요. 현대미술이 가진 상업주의가 그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첫 개관전으로는 재미있게 위트 있는 작업을 보여주면서도, 미술관의 운영 상황과도 잘 맞는 작가를 선정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티에리가 적격이라고 느꼈습니다.”
티에리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오로지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였다. 또한 스트리트아트를 기반으로 한 그는 미술관에서 전시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 대형 컨테이너나 거리가 그의 전시 무대였다. 그런데 전시 제안을 하자 “재미있겠다”며 흥미를 보였다고.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강조하기보다는 ‘한국 서울의 인사동이라는 곳에 이런 공간이 있는데, 당신과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펼치고 싶다. 한국 관객들을 위해 전시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어요. 이건 아라모던아트뮤지엄의 전시를 꾸리는 주요 콘셉트이기도 해요.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훤히 내려다보이는 뻥 뚫린 구조에 그저 작품을 걸기보다는 공간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티에리도 이에 적극 공감했어요.”
본래 전시 제목 후보는 ‘아트 올 낫(Art or Not)’이었다. 티에리가 하는 스트리트아트, 팝아트를 보며 ‘낙서가 무슨 예술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예술 장르 구분에 치우치기보다는 ‘이것은 아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취지 아래 그저 작품을 보는 그대로 느끼게 하고 싶은 취지로 생각했던 콘셉트였다.
그러다 티에리가 제안한 ‘라이프 이즈 뷰티풀(Life is Beautiful)’이 최종 전시 타이틀로 정해졌다. 티에리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유 노우?" 다음으로 많이 한 말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것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데 시간을 너무 보내는데, 우리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하루는 딱 한 번뿐이다. 그만큼 다이아몬드와 같은 인생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생각을 작업으로 표현한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이라는 말이었다. 최 감독도 고개를 끄덕였다.
“티에리의 취지에 공감했어요. 그를 보면서 또 감명 받았던 게 작업뿐 아니라 그의 인생이에요. 10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미국에 가서 구제 의류 장사부터 온갖 궂은일을 다하면서도 작업을 향한 꿈을 꿨죠. 그 결과 현재까지 오게 됐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아름답게 바라보려 한 그의 노력이 작업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그는 이 타이틀로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열어왔어요. 자신이 몸소 겪고 느낀 메시지를 작업을 통해 계속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거죠.”
넘쳐흐르는 작가의 아이디어는 최 감독을 춤추게 한다
티에리와 계속 적극적인 소통을 하며 전시의 전체적인 주요 콘셉트는 최 감독이 정했다. 전시장 지하 1층부터 아래 4층까지 양동이 속 페인트가 흘러 내려가 지하로 다 스며들어 전시장을 꾸리는 콘셉트다. 이 큰 콘셉트 아래 작가가 자유롭게 작업을 펼칠 수 있도록 풀어놓았다. 마이클 잭슨, 비틀즈, 밥 말리, 버락 오바마 등 유명 인사들의 모습을 깬 LP판으로 만들었고, 스타워즈의 유명 캐릭터 다스베이더 손에는 광선 검이 아닌 붓을 들려줬다. 미키마우스, 펠릭스 등 익숙한 만화 캐릭터도 보인다. 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듯한 장난감, 카메라 등 오브제들도 가득하다. 여기서 끝일 줄 알았다.
그런데 티에리는 일분일초마다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시장에서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월요일에 이어 이틀 후 수요일에 다시 전시장에 방문했는데, 그새 전시장 곳곳에 변화가 보였다. 페인트칠이 더 뿌려졌고, 전시장 안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안내요원들의 점프수트에도 페인트칠이 뿌려졌다. 최 감독은 “솔직히 벅차기도 했다”며 웃었다.
“아라모던아트뮤지엄의 한국 스태프와 티에리의 미국 스태프가 힘을 합쳐 전시를 꾸렸어요. 작은 소품 하나하나를 모두 미국에서 들여왔고요. 전시를 일주일 앞두고서는 또 새로운 작업을 들여놓고 싶다고 했어요. 그게 지하 1층부터 4층 벽면에 크게 설치된 페이퍼예요. 얼굴을 가린 티에리의 모습이죠. 처음엔 전시 기간에 맞출 수 있을까, 너무 벅찬 요구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그 작업이 이번 전시의 거의 메인이라고 할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냈죠. 티에리는 전시를 준비하는 내내 ‘나만 믿으라’고 했어요.”
티에리의 열정에 대해서는 혀를 내둘렀다. 전시 오프닝 전날까지 밤을 샌 것은 기본이다. 원래 페인트가 칠해져 있지 않던 점프수트에 페인트를 뿌리고 싶다고 해서 ‘10분이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무려 3시간이 걸렸다. 티에리의 작업은 매우 자유로운 것 같아 보이지만 페인트가 튀기는 부분까지 계산해서 튀길 정도로 철두철미하다고. 최 감독은 “티에리 팀이 작품을 설치하는 방식이 굉장히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이 호흡을 바탕으로 깔고 티에리가 모든 것을 다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그의 머릿속 세상을 전시장에 구현하는 데 끝이 없더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로 “이제는 전시장을 그냥 냅뒀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던지는 최 감독에게 티에리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 감독은 지난 몇 년 간 전시 기획을 맡으며 회의감에 빠졌었음을 털어놨다. 그는 국내의 굵직굵직한 전시를 기획해 왔다. 데이비드 라샤펠 한국 특별전, 아트토이 창시자 ‘마이클라우 아트토이 전’ 등의 총감독을 맡았고, 2015년에는 대형 전시 오드리 헵번 ‘뷰티 비욘드 뷰티’를 선보였다. 전시는 성공적이었고, 화제도 됐다. 하지만 거침없는 행보 속 최 감독은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논쟁 아닌 가십거리로 즐기는 전시가 좋아
“한국에서 대형 전시를 꾸리려면 정부 또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밀어줘야 하는데, 지금 환경은 사실 그런 부분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제작사는 대형 전시 기획 시 수익을 발생시키는 부분을 가장 먼저 고려하죠. 저는 전시 기획자의 입장에서 퀄리티 높은 전시도 선보이고 싶고, 이 가운데 흥행도 신경 써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어요. 거기서 오는 마찰이 있죠. 전시 퀄리티를 높이려면 비용이 필요한데, 제작사는 흥행이 보증되지 않으면 돈을 아끼죠. 그래서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이 정도면 됐지 않나’ 하는 식으로 저 스스로도 체념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티에리의 열정을 보고 반성했어요. 페인트 칠 하나까지 신경 쓰는 그를 보면서, 제가 전시 기획을 시작하며 가슴 설레던 순간들이 기억났죠.”
아라아트센터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주)리앤초이 이동규 대표가 그에게 아라모던아트뮤지엄 예술 총감독을 적극 권유했다. 최 감독은 “나를 믿어줘 고마운 사람”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이 대표와 함께 전시 작가가 열정을 불태울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가 이번 전시다.
전시장의 관람객 층도 다양하다. 전통적인 공간인 인사동에 해외의 독특한 아티스트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퍼진 듯했다. 가장 눈에 띈 풍경은 흰머리 할머니가 전시를 보며 즐거워했던 모습. 할머니는 비틀즈 바탕의 작업을 보고 “이 사람들 아는데”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옆의 어린아이는 미키마우스 작업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 즐거워했다. 최 감독은 “전시 오픈 뒤엔 항상 사람들 표정을 보는데 사람들이 깔깔거리고 웃더라. 전시를 보러 와 토론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가십거리로 즐기고 있더라”며 “그렇게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웃었다.
평소 티에리 작업을 좋아했다던 유명 인사들도 전시장을 방문했다. 특히 YG의 아티스트가 많이 방문했다. 양현석 대표가 이미 다녀갔다. 티에리는 YG 소속 아티스트인 빅뱅, 씨엘, 싸이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작업도 선보였다. 국내 아티스트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여러 유명인 및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 연계 강연도 열린다. 찰스장 작가, 이철호 감독, 조달환 배우 등이 강연자로 나선다.
“인사동에 안 맞는 전시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저는 이번 전시야말로 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사동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거야’가 아니라 ‘이런 재미있는 공간이 있는데, 더 재미있는 작업을 들여놓을 거야’라고 처음부터 생각했죠. 작가 선정 방식은 딱 두 가지였어요. 이슈를 주거나 재미있는 것, 그리고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티에리는 이 모든 것을 갖췄습니다. 자유로운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전하죠.”
이번 전시는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9월 25일까지 열린다. 이후엔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의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미국 유명 갤러리와 영국의 유명 사진작가와도 전시 조율 중이다. 내년과 내후년에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최 감독은 “아직은 확정 전이라 모든 걸 말할 수는 없지만 6명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이야기를 펼치는 모습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추후 또 선보이고 싶은 전시의 방향을 묻자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이번 전시와 연계된 강연을 마련했어요. 빵을 팔면서도 틈틈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이번에 영화 ‘날 보러와요’를 흥행시킨 이철호 감독의 이야기, 이젠 캘리그라피 작가로서도 유명한 조달환의 배우 인생 이야기 등 꿈을 향해 노력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죠. 이 이야기들을 현 시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포기하는 게 가장 쉬운 시대예요. 삶이 잔혹하다고들 이야기하죠. 저 또한 그랬어요. 사업하다가 망해서 좌절감을 맛봤었습니다. 하지만 힘을 내서 현재까지 왔어요. 단순하게 재수가 좋아서가 아니에요. 어마어마한 고통과 역경이 있었지만 꿈을 위해 노력했죠. 이렇게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전시로 꾸준히 보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