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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아트스펙트럼’전] ④ 이호인] 그림 보며 찾는 제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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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연수⁄ 2016.06.27 14:34:38

▲이호인, '미세먼지와 강남'. 캔버스에 오일, 53 x 65cm. 2016.


‘낯설게 하기’가 현대 예술을 특징지을 수 있는 하나의 기법이라고 했던가. 전시장 2층의 한편에 걸린 도시 풍경을 담은 그림들은 미술관의 전위적인 디자인과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연구의 결과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작업들 곁에서 어색할 정도로 고요하게 걸려 있었다. 만일 ‘낯설게 하기’가 하나의 작품을 현대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당위성이라면, 최소한 이 공간 안에서 이호인의 회화는 최신의 현대 미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호인, '너의섬'. 2016, 캔버스에 오일, 130.3 x 194.2cm. 2016.


익숙하지만 이상한


하늘로 치솟고 있는 롯데타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조명으로 빛나는 한강대교, 한강 건너 보이는 국회의사당 등 너무도 익숙한 서울의 랜드마크들이, 도시의 풍경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카메라의 프레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생생한 표현 중에도 달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거침없는 붓의 흐름이 눈에 띄었다.


작가 이호인은 달필일지언정 달변가는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열심히 생각하며 “이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지나치는 한강의 다리와 높이 치솟고 있는 건물들을 보며 ‘저 풍경이 자연스러운 것인가’라는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가 그려낸 풍경 안의 랜드마크들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쟁점의 중심에 있었거나 현재에도 쟁점이 되고 있는 것들이다.


한강대교는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국군에 의해 폭파돼 피난 중이던 민간인이 500여 넘게 폭사 또는 추락사한 상처가 있는 곳이다. 서울 잠실의 롯데 타워는 건축 허가서부터 안정성 문제까지 뉴스에 주기적으로 등장하던 곳이며, 국회 의사당은 그 자체로 한국의 근‧현대사이며 갖가지 소음이 끊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곳이다.


그런 랜드마크들은 쟁점과 함께 할 때면 한 없이 불편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점점 그런 감정은 상쇄되고 눈에 익숙한 풍경이 되고 만다. ‘그렇게 익숙해져버린 느낌 혹은 상쇄된 감정을 담아내려 한 건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니다. 그리는 것은 나에게 익숙해지지 않게끔 하는 행위에 가깝다”라고 답했다.


▲이호인, 'The Tower(더 타워)'. 캔버스에 오일, 227.5 x 162.2cm. 2015.


알아도 알지 못하는 그런 것


그는 그리는 행위를 통해 답을 찾는 듯 보였다. 그림을 그리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다. 답을 낼 수 없는, 그렇다고 온전히 감정은 아닌 무엇인가에 대한 의심과 느낌 같은 것들에서 출발하는 듯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림을 그리며 사람들과의 괴리를 좁힐 수 있도록 ‘날카롭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알아도 알지 못하는 그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느낌은 그가 그림에서 표현하는 시간과 공기로부터 그야말로 ‘느껴지는’ 듯하다. 그가 포착한 붉은 일몰의 시간대와, 최근의 미세 먼지로 인한 부연 공기는, 여명과 함께 대상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허무하고 불편한 감정에 가깝다.


전시장 안에는 도시의 풍경이란 점, 그리고 같은 사람이 그렸다는 것, 풍경화라는 공통점을 빼면 맥락이 조금 맞지 않아 보이는 풍경화 ‘헌화’와 숲속을 배경으로 한 자화상도 있다. 게다가 ‘헌화’는 나란히 걸려 있는 그림들의 열에서 삐죽이 튀어나와 더 높이 걸려 있기까지 했다. 전면에 무궁화 한 송이가 그려져 있고, 배경으로는 한반도 모양의 지형이 보인다. 안동의 천지갑산에는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포토 존이 있고 그곳에는 무궁화가 심어져 있단다. 그리고 한반도 지형 안엔 한국의 산업화를 짊어진 재료인 시멘트 고장이 있다고. 더 높이 올라간 그림의 위치 선정은 ‘헌화’라는 제목에 맞춘 단순한 이유다.


한편,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 자연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자연과 이질적인 존재라 생각했고, 인간과 자연의 접점을 찾기 위해 자연의 풍경과 인공적인 요소를 병치시켜 표현하곤 했다. 주로 아크릴판이나 아크릴 종이 위에 그렸다. 물감이 전혀 흡수되지 않기에 색을 겹쳐 올리거나 섬세한 표현이 힘들지만, 기질상 한 번에 표현하는 것을 선호하며 생동감도 더 많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번에 선보인 캔버스의 유화 작업에서도 왜 그리 과감한 붓 자국이 눈에 띄었고, 숲 속의 자화상이 느닷없이 등장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이호인, '파란천막', 아크릴 종이에 오일, 26 x 36cm. 2011.


인위적이지 않은


정리하자면, 그가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삶이, 세상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과정인 것 같다. 자연 안의 자신의 모습부터 현재 도시 풍경까지. 그의 관심 역시 좁혀졌다가보다는 정확해지고 뚜렷해지는 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그림의 선정과 나열도, 인위적이지 않은 그의 작업 태도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분명 ‘정통 회화’라는 프레임이 적당하지는 않다. 하지만 회화는 그런 것 같다. 알아달라고 소리 지르진 않지만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마음을 열고 기다리는 사람 같다. 가장 솔직하게 한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 삶의 한 순간을 담고 있으며, 그 순간을 공감한다는 것은 삶의 한 지점에서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인연을 만난 것과 같다.


심심치 않게 들려온 “이번 아트 스펙트럼 전에서 인상 깊은 작품 중 하나였다”는 소리들과 함께, 회화 장르의 현대미술에서 가치 및 위치 여부를 떠나 미술의 온전한 시각적 감상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감사한 작품들이었다.

 

▲이호인, '집안의 식물들', 아크릴 종이에 오일, 26 x 36cm. 2011.

▲이호인 작가.(사진=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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