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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이 동성애 뮤지컬이라고?

외로움과 공허함부터 마약·임신 등 청춘들의 방황 녹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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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기자⁄ 2016.07.15 14:06:04

▲지난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 '베어 더 뮤지컬'이 재연으로 돌아왔다. 청춘들의 동성애, 마약, 임신 등 방황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드러낸다.(사진=쇼플레이)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베어 더 뮤지컬’이 지난해 국내에 첫선을 보였을 때 가장 많이 따라붙은 타이틀이 ‘동성애 뮤지컬’이었다. 객석에는 멋진 남자 배우들의 호흡을 지켜보는 젊은 여성층 관객이 많았다.


이런 현상은 ‘베어 더 뮤지컬’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꾸준히 사랑 받으며 재공연 돼 오는 ‘쓰릴 미’를 비롯해 ‘풍월주’도 여성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멋지고 잘생긴 남자 배우들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 공연들을 단순히 ‘동성애 뮤지컬’로만 소개하기엔 공연 자체가 담고 있는 깊이와 내용이 다양하다.


‘베어 더 뮤지컬’은 보수적인 카톨릭계 고등학교가 배경이다. 여기에 각자 개성과 성격이 분명한 여러 아이들이 등장한다. 학교의 킹카인 제이슨, 그리고 제이슨과 한 방을 쓰는 피터가 있다. 이 두 명을 중심으로 제이슨의 쌍둥이 남매 나디아, 제이슨에게 늘 밀리는 맷, 그리고 예쁜 외모의 아이비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평범해 보이는 이 아이들에게는 각자 고민이 한 가지씩 있다. 제이슨과 피터는 동성애 커플이다. 이 사실을 제이슨은 숨기고 싶어 하고, 피터는 그런 제이슨에게 늘 서운하다. 그렇게 당당하고 싶지만, 피터 또한 늘 걱정에 휩싸여 악몽을 꾼다. 맷은 제이슨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나디아는 예쁘지 않은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느낀다. 화려해 보이는 아이비는 실상은 여리고, 나중엔 제이슨과의 충동적인 하룻밤 관계로 임신을 해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극음 보수적인 카톨릭계 고등학교가 배경이다. 여기에 각자 개성과 성격이 분명한 여러 아이들이, 각자의 고민을 안고 등장한다.(사진=쇼플레이)

청춘들의 동성애뿐 아니라 성 관계, 임신, 마약 등 다소 한국에서는 파격적이고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들을 ‘베어 더 뮤지컬’은 수면 위로 끌어냈다. 제이슨과 피터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긴 하지만, 이들만이 주인공이 아니다. 청소년 시기에 가질 법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 방황, 불안한 심리 등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폭넓게 다룬다. 이와 관련해 이재준 연출은 “초연 때와 비교해 이번 재연에서는 각 캐릭터들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몇 군데 장면을 더 추가하고 동선도 보완했다. 보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캐릭터 해석도 눈길을 끈다. 피터 역의 정원영, 손승원, 박강현 그리고 제이슨 역의 김승대, 성두섭, 서경수는 성적 정체성의 방황과 성적 소수자의 입장을 생각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정원영은 “이 작품의 소재가 어려웠고 함부로 접근하기 민감했다. 극 중 피터는 동성애에 죄의식을 갖고 ‘왜 하필 나야’라는 식으로 어쩔 수 없는 본능에 대한 악몽에 시달린다. 그런데 나는 피터의 이야기가 소재는 동성애이지만 누구나 겪는 사랑에 대한 고민과 아픔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다”고 말했다.


손승원 또한 “간접 경험으로도 겪어본 적이 없는 감정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똑같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밝혔고, 박강현은 “극 중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 ‘브로큰백 마운틴’ 등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찾아봤다. 그리고 동성이든, 이성이든 사랑에서 오는 아픔은 똑같다는 걸 느꼈다”고 짚었다.


청춘은 아름답기만 하다?
어두운 방황을 다양한 캐릭터로 거침없이 끄집어내


▲청춘들의 성 관계와 임신에 관한 이야기도 극은 다룬다. 아이비(왼쪽, 최서연 분)는 룸메이트인 나디아(지우림 분)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사진=쇼플레이)

고충이 없었던 건 아니다. 김승대는 “나는 철저한 이성애자라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작품을 통해 편견에서 벗어났다”고도 밝혔다. 그는 “성 소수자 두 명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굉장히 여성스럽게 싸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굉장히 격하게 사랑싸움을 하더라. 동성애라 해서 표현 방법이 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 사랑의 아픔을 표현하는 데 호기심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제이슨을 연기하는 성두섭은 “초연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제이슨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하겠지’ 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포인트를 밝혔다. 결국은 특별하게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는 게 이 배우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서경수는 “접근 방식 자체를 어렵게 가지 않았다. 성적 소수자들이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하는 대상만 다를 뿐이지, 사랑을 느끼는 감정의 본질 자체는 같다고 생각했다”고 정리했다.


동성애뿐 아니라 청춘의 다른 방황에도 접근한다. 겉으로는 예쁘고 도도해 보이지만,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꿈을 포기해야 하는 아이비가 극 중에서 부르는 ‘올 그로운 업(All Grown Up)’은 극을 통틀어 굉장히 처절한 노래다. 아이를 가진 것을 깨달은 아이비가 “이제는 어른이 됐다”며, 자신의 꿈들이 모두 산산이 조각나서 더 이상 꿈 꿀 수도, 잡을 수도 없다고, 누구라도 자신을 좀 도와달라고 울면서 외치는 곡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책임감을 짊어져야 하는 학생 미혼모나 청소년 부부의 이야기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많이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비의 이야기도 많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아이비를 연기하는 최서연과 민경아는 “아이비가 단순히 예쁜 캐릭터가 아니라, 상처를 많이 가진 아이라 생각했다. 극 중 화려해 보이는 아이비의 외면만 보고 사람들은 헤픈 아이라는 식으로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우리 눈에 아이비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이 소녀의 아픔을 함께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피터(왼쪽, 손승원 분)는 엄마(백주희 분)에게 자신이 성적 소수자임을 고백하려 하지만, 엄마는 그 고백을 듣는 걸 피한다. 서로 이해의 간극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이 안타까운 장면이다.(사진=쇼플레이)

그리고 남의 눈을 신경 쓰는 맷 역할도 눈에 띈다. 우수한 성적에 준수한 외모를 지녔지만, 늘 1등인 제이슨에게 밀린다. 2등은 잘 해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1등보다 못하다는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이 또한 청소년 시기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1등 우상주의, 그리고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맷에게도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맷을 연기하는 주민진은 “맷은 매우 모범적이고 정직하지만, 주변에 굉장히 신경 쓰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어를 할 수밖에 없는 아이”라고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나디아가 있다. 나디아는 겉으로는 털털해 보이지만 질투심이 많다. 예쁜 외모의 아이비도 눈엣가시다. 맷의 캐릭터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렇듯 극 속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프고, 처절하다. 하지만 극은 이 아픔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나디아 역의 지우림은 공연에 임하는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 공연 속 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고민과 아픔이 있다. 장면이 지날수록 그 아픔이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 더욱 잘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도 각자의 삶이 있다. 엄마와 아들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친구들 사이, 또는 자매나 형제 사이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공연은 그 다양한 이야기들에 접근하며, 고민으로 힘든 삶 속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이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조금이나마 자신의 이야기라 공감하며, 힘든 감정을 해소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베어 더 뮤지컬'은 청소년 시기에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방황, 불안한 심리 등을 다양한 캐릭터로 보여준다.(사진=쇼플레이)

이밖에 성세실리아 기숙학교의 보수적인 교장과 피터의 어머니 등을 통해 청춘의 방황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또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선과 반대로 피터에게 용기를 주는 샨텔수녀 등 어른의 캐릭터들을 통해 세상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도 짚는다. 마약, 성 관계 등의 문제에 대해 차가운 시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시선이 대부분일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 문제들을 함께 헤쳐 나가려는, 세상의 따뜻한 시선도 있음을 극은 잊지 않고 보여준다.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청소년 시기는 밝게 빛나는 동시에 가장 어두운 시기이기도 하다. ‘베어 더 뮤지컬’은 그 청춘의 시기를 아름답게만 보여주진 않는다. 오히려 어두운 면을 거침없이 끄집어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을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시도다. 공연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9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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