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만지는 작품] 스킨십 해달라는 미술에 놀라지 않기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미술 작품이 벽에 걸려 있거나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고 관람객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감상하는 모습은 가장 익숙한 전시장 풍경이다. 작품 주변에 가드 라인(guard line)이 설치되거나 전시 지킴이가 있을 경우 우리는 조금 더 조심하면서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는 완벽히 분리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존재한다. 이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작품 보호와 관람객의 안전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작품 파손’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 보면 정말 많은 수의 관련 사건들이 검색된다. 그 원인은 단순한 실수나 관람 규칙 무시에서부터 의도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물론 작품 파손 전부가 관람 중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천재지변을 비롯해 예기치 못한 상황은 늘 존재한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작품이 도난당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또한 작품이 쓰러지거나 부서지는 등의 사고가 일어날 경우 주변에 있는 관람객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미술에서는 만져도 되는 작품, 아니 반드시 만져야만 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는 미술의 달라진 모습 중 하나이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술가에 의해 완성되며 관람객은 관조하는 것이다’라는 전통적인 생각에 변화가 생기면서 고정된 형태로 영원히 존재하던 미술이 변하게 되었다. 관람객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관람객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적극적으로 나설수록 작품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게 된 것이다.
관람객이 자판기에서 뽑아내줘야만 완성되는 미술
일례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메이드 인 팝 랜드’(2010-2011)를 찾은 관람객들은 ‘당신도 예술을 싼 값에 소유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공성훈의 ‘예술 작품 자판기’(1992)에서 작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같은 전시에서 정연두는 관람객들이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타임캡슐 같은 구조물을 선보였다. 만약 누구도 ‘예술 작품 자판기’에서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작품들은 진정한 완성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정윤, ‘엄마의 외출’, 공기조형물(inflatable), 600 x 410 x 210cm, 2011. 사진 제공 = 이정윤 작가
작품을 만져야 하는 상황을 처음 접한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머뭇거리고 조심스러워하지만 이내 즐겁게 참여한다. 이정윤은 대형 코끼리 조형물을 미술관 실내뿐만 아니라 해수욕장 같은 야외 공간에도 설치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만지는 것이 허락된다. 관객들은 코끼리를 품에 안기도 하면서 즐거워한다. 물론 작품이 야외에 전시될 경우 파손이나 분실 등의 위험도가 높아지지만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요한 지향점으로 생각하기에 작가는 야외 설치를 꾸준히 선보인다. 이정윤은 올 여름에도 ‘트래블링 트렁크(Traveling Trunk) - 여행하는 코끼리’라는 제목으로 김해 공항에서 두 달간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코끼리는 공항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24시간 공개된다. 키네틱(kinetic) 아티스트인 노해율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무브리스 - 화이트 필드(Moveless - White Field)’(2010)는 자신의 무게중심을 완벽히 되찾는 풍선 구조물을 전시장 가득 세워놓아 관람객들이 만지면서 이동하도록 계획되었다. 전기 모터가 아니라 관객의 손길에 의해 움직이는 조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중과 소통하는 미술의 공공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미술 작품은 더 적극적으로 미술관 밖을 향하게 되었다.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작업은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 곰리는 일상의 공간에 자신의 인체 조각상을 설치한다. 도심 곳곳에 나타난 조각상 앞에서 사람들은 당황하지만 곧 편안하고 친근하게 작품을 대한다. 간혹 조각상에 모자를 씌어주거나 옷을 입히고 안경과 지팡이로 장식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런 경우, 원작의 외관이 달라졌다고 하여 작품 훼손이라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곰리의 작업들은 과거 예술에 별 관심이 없고 무덤덤했던 많은 대중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관람객이 집으로 가져가야 완성되는 미술도
만질 수 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관람객이 집으로 가져가도 되는 작품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가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일 것이다. 그의 다른 전시들이 그랬듯 플라토(Plateau) 미술관에서 열렸던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 더블’(2012)에는 ‘무제 - 플라시보(Untitled - Placebo)’(1991), ‘무제 - 로스모어 II(Untitled - Rossmore II)’(1991), ‘무제 - 환영(Untitled - Aparicion)’(1991)처럼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사탕 무더기와 포스터 더미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한편 작품을 가져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다시 작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이정윤은 고유의 일련번호를 가진 코끼리 봉제 인형을 제작하여 전 세계로 입양시키고 그 후의 기록을 수집, 공유하는 ‘왕복여행 프로젝트(Round Trip Project)’를 진행하기도 했다.
▲노해율, ‘Layered Stroke-01’, 와이어, 철, 전동 회전 장치, 100 x 15 x 45cm, 2016. 사진 제공=노해율 작가
이처럼 이전과는 달라진 관람 방식들은 다양한 전시 문화를 만들어낸다. 물론 눈으로만 관람해야 하는 작품과 만져야 하는 작품이 함께 전시될 때에 관람객들은 약간의 혼돈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품 주변에 적힌 안내 문구를 확인한 뒤 작가가 제시하는 방식대로 감상하면 된다. 눈으로 보기, 온 몸으로 경험하기, 모두 의미 있는 미술의 감상 방법이다. 또한 만지는 것이 허용된 작품이라 하여 거칠게 만지거나 작동시켜도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만져도 됩니다’가 ‘막 대해도 됩니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소통하기를 기다리는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은 누군가를 처음 소개받는 순간과 매우 닮아 있다. 약간은 서먹하고 쑥스럽지만 알아가는 과정을 지나면 즐거운 친근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