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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작가 - 이재욱] 새의 눈으로 세상 보며 한 자리 모인 예술가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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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96호 김연수⁄ 2016.08.13 10:39:04

▲'리듬, 색, 새소리 연구'전 1층 전시장 풍경.(사진=이재욱)


화가 칸딘스키와 시인 랭보는 공감각자였다고 한다. 첼로 연주자이기도 했던 칸딘스키는 음가마다 다른 색채가 보이고, 랭보 역시 알파벳마다 다른 색이 보였다고 전해진다. 공감각자의 비범한 능력은 뇌 과학이 발달돼 거론될수록 증명된 유전적인 천재성 같아 굳이 창의적인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부럽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성북동의 스페이스 오뉴월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리듬, 색, 새소리 연구’에서 작가 이재욱이 펼치는 이야기는 공감각과 연관돼있다.


부엉이 여인과 자연의 색


일층엔 살구색과 짙은 녹색 두 가지 색으로 깔끔하게 면 분할 해 색칠된 공간을 배경으로 영상과 설치작업이 있다. 영상은 붉은색의 협곡에서 부엉이 가면을 쓰고 플룻을 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플룻의 선율과 리듬에 따라 기하학적인 도형의 형태로 잘린 회화의 이미지 또는 색면이 부엉이 가면 여인의 형상을 덮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도형 안의 이미지는 스페인 화가 ‘레메디오스 바로(Remedios Varo, 1908~1963)가 그린 'The Flautist(플룻 연주자)'의 플룻을 부는 사람이다. 또한 바로가 그린 머리가 부엉이인 여인의 이미지 역시 교차편집 돼 보여진다. 머리가 부엉이인 여인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인 옆에 있는 물감을 짜는 기계(?)에서 나온 물감은 마술 물감인지 그녀가 그린 새는 살아 움직여 날아간다.


▲이재욱, '리듬, 색, 새소리 연구'. 영상 및 혼합매체, 설치, 가변크기. 2016. (영상 부분 이미지 캡쳐)

▲이재욱, '리듬, 색, 새소리 연구'. 영상 및 혼합매체, 설치, 가변크기. 2016. (영상 부분 이미지 캡쳐)


브라이스 협곡, 새소리, 색


이재욱은 화가인 바로와 함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n, 1908~1992)을 그의 전시에 등장시킨다. 이재욱과 바로와 메시앙의 만남은 미국 유타 주의 브라이스 협곡(Bryce Canyon)에서 시작됐다. 먼 옛날 깊은 바다였던 그곳에서 물의 힘이 깎아 낸 첨탑모양의 협곡과 새소리, 폭포 소리가 던져 준 감동에서 아직 빠져 나오지 않았을 때, 그는 메시앙을 주제로 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접했다. 이재욱은 메시앙의 새소리에 관련한 두 시간짜리 오케스트라가 자신이 방문했던 브라이스의 계곡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메시앙은 환경과 색과 새소리에 영감을 받아, 평생 새소리 연구를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고, 브라이스 협곡도 그 중 하나였다. 스페인의 화가 바로 역시 색과 새 그리고 소리의 표현이 그림에 등장한다. 이재욱은 “마치 메시앙이 선율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바로가 시각화 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그들이 태어난 20세기 초(그 둘은 같은 달, 즉 1908년 12월, 매우 근접한 시기에 태어났다)에 이미 예술과 학제간의 융‧복합 시도는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프로이트 등의 영향으로 내부적 심리 문제에 천착해 있을 때, 바로는 자연과학 등의 밝혀지지 않은 신비한 현상들에 관심을 뒀고, 메시앙 역시 그의 음악과 시간의 개념 안에서 색과 새소리 같은 자연적인 요소들을 혁신적으로 사용했다.

▲이재욱, '리듬, 색, 새소리 연구'. 영상 및 혼합매체, 설치, 가변크기. 2016. (설치 부분 이미지, 사진= 이재욱)



세상을 넘는 시각

 
자연의 소리와 색, 덧붙여 새와 협곡이라는 특정한 소재까지 시간을 뛰어넘어 공존하는 그들의 인연은 이재욱의 전시장에서 펼쳐졌다. 바로의 그림 ‘The Flautist'가 실린 화집은 긴 시간을 압축한 협곡 모양의 테라코타에 둘러싸여 있고, 이 세 작가의 자연 원리에 대한 탐구의 흔적인 듯 손자국이 남은 기하학 도형의 흙덩이들이 흩어져 있다. 그 옆에는 작가가 브라이스 계곡에서 직접 캐 온 화석들도 놓여있다.


메시앙은 공감각자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 사실은 이재욱이 선호하는 자연과학적인 접근 방법과 세상을 일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창작자의 시점이 중첩되는 부분이다. 2층의 전시장에는 작가가 바로와 메시앙의 창조 과정과 호흡을 함께 한 결과 혹은 그것을 연구한 드로잉이 전시돼 있다. 작가가 표현한 음가의 색, 새소리를 시각화 한 것, 그리고 뇌의 작용을 표현한 그림 등이다.


오뉴월의 큐레이터 송고은은 “작가는 새로운 예술 작품의 창조적 주체로 자신을 위치시키기보다 두 예술가를 과거로부터 되살려 협업을 주선하는 매개자 혹은 기획자로 역할했다”고 설명한다. 이와 더불어 이재욱은 “새로운 예술의 형태와 예술가 상을 찾고 싶었다”고 밝힌다.


▲'리듬, 색, 새소리 연구'전 2층 전시장.(사진=이재욱)


사실 전시를 직접 보기 전에는 메시앙이 남겼다는 이 전시와 동명의 이론서 ‘리듬, 색, 소리 연구’처럼 두꺼운 책들이 아카이빙 된 자료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로 전시장에 펼쳐진 풍경은 물론 작가의 감정이 최대한 배제되긴 했지만, 깔끔하고 착실한 그의 감각이 충분히 느껴진다. 억지로 공감각과 자연과학적인 접근을 이해하지 않더라도, 시간의 장중함을 뛰어넘는 바로와 메시앙 그리고 이재욱의 운명적인 인연마저 상상할 수 있는 꽤 감성적인 전시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이 전시를 위해 큐레이터 사라 데뮈제(Sarah Demeuse)가 쓴 서정적인 서문 ‘오늘의 음다(飮茶)’는 이 전시에 등장한 예술가들의 사고 과정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한다.

▲이재욱, '뇌신경 경로'. 종이에 수채, 545 x 394mm. 2016.



전시는 9월 3일까지. 전시의 마지막 날 스페이스 오뉴월의 2층에서 최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철학자 에런 슈스터(Aaron Schuster)와의 대담 ‘들뢰즈(Deleuze)가 본 메시앙’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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